방 한구석에 놓여 있던 작은 변기, 요강

by크눌프

요강이라는 말을 들으면 이제는 조금 낯설다. 나이 든 사람들에게는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남아 있을지 모르지만, 요즘 사람들에게 요강은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옛날 물건이다. 둥글고 작은 그릇 하나가 방 한쪽에 놓여 있다가 밤이면 사용되고, 아침이면 누군가의 손에 들려 밖으로 나갔다. 지금 생각하면 불편하기 짝이 없는 물건이지만, 요강은 오랫동안 우리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었다.


요강이 필요했던 가장 큰 이유는 화장실이 집 안에 없었기 때문이다. 예전의 뒷간은 대개 집 밖에 있었다. 밤에 용변을 보려면 잠자리에서 일어나 어두운 마당을 지나 뒷간까지 가야 했다. 겨울밤에는 추위를 견뎌야 했고, 어린아이에게는 무섭기도 했을 것이다. 몸이 불편한 사람이나 밤중에 밖으로 나가기 어려운 사람에게는 더욱 곤란한 일이었다. 요강은 이런 불편을 덜어 주는 생활용품이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 방 한구석에 요강을 마련해 두면 굳이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되었다.


요강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되었다. 앞서 살펴본 백제의 호자(虎子)가 대표적이다. 호랑이 모양을 한 이 작은 용기는 남성의 배뇨에 사용된 것으로 해석된다. 고대에도 집 안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이동식 배뇨용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유물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요강의 형태와 재료도 달라졌지만, 집 안에서 용변을 해결한다는 기본적인 기능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조선시대에 이르면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하는 요강의 모습에 가까워진다. 도기와 자기로 만든 요강이 있었고, 놋쇠나 유기로 만든 것도 있었다. 나무에 옻칠을 한 요강도 사용되었다. 같은 요강이라도 어떤 재료를 썼느냐에 따라 모양과 값이 달랐다. 요강이라고 해서 아무 그릇이나 대신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용도에 맞는 형태와 재료를 갖춘 생활용품이었으며, 집안의 살림살이를 구성하는 물건 가운데 하나였다.


흥미로운 것은 요강이 혼수품으로도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조선시대 생활경제를 다룬 『산림경제』에는 여성의 혼수품 가운데 놋요강과 놋대야가 언급되어 있다. 혼인은 두 사람이 부부가 되는 일이면서 새로운 살림을 꾸리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니 일상에서 필요한 그릇과 도구를 마련하는 일도 혼수의 일부였다. 오늘날 결혼 선물로 요강을 주고받는 모습을 상상하기는 어렵지만, 당시에는 요강 역시 집안에 갖추어야 할 살림살이였다.


요강의 재료를 살펴보면 당시 사람들의 생활 형편도 엿볼 수 있다. 놋으로 만든 요강을 마련하는 집이 있었고, 질그릇으로 만든 요강을 사용하는 집도 있었다. 밥그릇이나 술잔처럼 손님에게 내놓는 물건은 아니었지만, 요강 역시 집안의 경제적 형편과 생활문화를 보여 주는 단서가 된다. 늘 사용하는 물건일수록 사람들의 생활에 깊이 들어와 있고, 그래서 그 시대의 살림살이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준다.


요강은 방 한구석에 놓여 있기만 한 물건도 아니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조선시대 여성이 가마를 타고 여행할 때 요강을 휴대했을 가능성을 소개하고 있다. 지금처럼 길을 가다가 쉽게 화장실을 찾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으니, 먼 길을 떠나는 사람에게 용변 문제는 현실적인 고민이었을 것이다. 가마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사용할 요강을 따로 준비했다는 이야기는 옛사람들의 여행이 오늘날과 얼마나 달랐는지 생각하게 한다. 요강은 잠자리에서뿐 아니라 집을 떠난 공간에서도 필요한 물건이었다.


이렇게 보면 요강은 단순히 방 안에 놓아두는 작은 변기가 아니었다. 밤을 보내는 사람에게는 화장실을 대신했고, 여행하는 사람에게는 이동 중의 불편을 덜어 주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과 상황에 맞추어 요강도 함께 움직였다. 화장실이 지금처럼 집 안에 고정된 시설로 자리 잡지 못했던 시대에, 요강은 사람의 생활을 따라다니며 필요한 역할을 했다.


그런데 요강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궁금한 것이 생긴다. 요강은 누가 비웠을까? 밤새 방 한쪽에서 사람의 용변을 받아낸 요강은 아침이 되면 비워야 했다.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편리한 물건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매일 처리해야 하는 일이었다. 요강이 집 안에 있었다는 것은 배설물을 집 밖으로 옮기는 노동도 필요했다는 뜻이다. 우리가 요강의 편리함을 이야기할 때 함께 떠올려야 할 것은 그 뒤에 있었던 수고다.


더구나 요강에 담긴 것이 언제나 버려야 할 쓰레기였던 것은 아니다. 농촌에서는 사람의 분뇨를 거름으로 이용했다. 몸에서 나온 배설물이 농사를 위한 자원으로 쓰인 것이다. 사람이 먹은 것이 몸을 거쳐 다시 땅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요강도 한몫을 했다. 요강을 비우는 일은 단순한 청소가 아니라, 당시의 농업과 자원 이용 방식에 연결된 일이기도 했다.


도시에서는 사정이 조금 달랐다. 사람이 많이 모여 살수록 배설물을 처리하는 일은 한 집안의 문제를 넘어 도시 전체의 과제가 되었다. 어디에 버릴 것인지, 누가 치울 것인지, 악취와 위생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중요해졌다. 특히 근대 도시가 성장하면서 분뇨 처리는 개인의 생활 습관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도시 위생의 문제로 떠올랐다. 방 한구석의 작은 요강은 이처럼 집안의 살림에서 농업과 도시의 위생 문제까지 이어지는 물건이었다.


요강을 둘러싼 생활은 화장실 시설이 달라지면서 서서히 변했다. 상하수도 시설이 정비되고 집 안에 화장실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방 한구석에 요강을 둘 필요가 줄어들었다. 수세식 변기가 보급되자 용변을 본 뒤 요강을 비우고 씻어야 했던 수고도 점차 사라졌다. 집 안에서 용변을 해결한다는 목적은 같았지만, 그 일을 가능하게 하는 방식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렇게 요강은 우리 생활에서 조금씩 사라졌다. 한때는 혼수품으로 마련했고, 밤이면 방 한쪽에 놓아 두었으며, 먼 길을 떠날 때는 짐 속에 챙겨야 했던 물건이었다. 하지만 화장실이 집 안으로 들어오면서 요강이 맡았던 역할은 새로운 시설에 자리를 내주었다. 지금은 일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거나 박물관의 전시품으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박물관에서 요강을 만나면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작은 그릇 하나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안에 꽤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화장실이 집 밖에 있던 시대의 생활, 추운 겨울밤의 불편함, 가마를 타고 길을 떠났던 사람들의 여행, 혼수품으로 요강을 마련했던 집안의 살림살이, 그리고 아침마다 그것을 비워야 했던 누군가의 노동까지. 요강은 특별한 사건을 기록하지 않지만, 사람들이 매일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 준다.


요강이 사라졌다는 것은 오래된 생활용품 하나가 자취를 감췄다는 뜻만은 아니다. 사람들이 집을 사용하는 방식과 밤을 보내는 방식, 배설물을 처리하는 방식이 함께 달라졌다는 뜻이다. 한때 당연했던 생활의 불편이 새로운 시설과 기술을 통해 해결되면서, 요강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 되었다. 그 작은 그릇의 역사는 집과 도시, 위생과 노동의 변화가 어떻게 일상 속에 스며드는지를 보여 준다.


요강은 왕의 명령을 기록한 문서도 아니고, 전쟁의 승패를 결정한 무기도 아니다. 그저 사람이 밤에 용변을 보기 위해 사용했던 작은 그릇이다. 하지만 그 물건을 따라가다 보면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집과 여행, 살림과 노동이 보인다. 어쩌면 생활사의 재미는 바로 이런 데 있는지도 모른다. 너무 흔하고 사소해서 평소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물건 하나가 우리가 몰랐던 옛사람들의 삶을 조용히 들려주는 것. 요강은 그렇게 오랫동안 사람들의 방 한구석을 지켰고, 이제는 박물관 한구석에서 우리에게 그 시절의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요강(목포시민신문).png다양한 요강들(출처: 목포시민신문)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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