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은 언제부터 오물이 되었을까?

by크눌프

우리는 똥을 보면 당연히 치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화장실에 볼일을 보고 물을 내리면 끝이다. 거리나 집 주변에 똥이 쌓여 있다면 더럽다고 생각하고, 누군가 그것을 치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조선시대 사람들에게도 똥이 지금처럼 ‘버려야 할 것’이었을까?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꼭 그렇지는 않았다. 조선시대 농부들에게 똥은 더러운 것이면서 동시에 꽤 귀한 물건이었다. 농사를 지을 때 필요한 거름이었고, 한양에서는 똥을 치우는 사람이 그것을 모아 돈을 벌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똥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똥은 언제부터 ‘오물’이 되었을까?


변화가 시작된 것은 19세기 말이었다. 개항 이후 서양의 위생학과 새로운 질병관이 들어오면서 조선 사람들은 도시의 더러움을 이전과는 조금 다른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길에 똥이 널려 있다는 것은 단순히 보기 싫은 문제가 아니었다. 분뇨와 오물이 사람들의 건강을 해치고 전염병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생각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서울의 길과 하천, 집 주변에 쌓여 있는 분뇨는 이제 농사에 필요한 거름인 동시에 도시가 해결해야 할 위생 문제가 되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갑자기 “똥은 쓸모없으니 모두 버리자”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개화파 인사들은 분뇨를 제대로 수거해 비료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똥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아무 데나 버려지는 것이 문제라는 생각이었다. 잘 모아서 농사에 이용하면 여전히 쓸모 있는 자원이었다. 그러니까 이때까지도 똥의 운명은 완전히 달라지지 않았다. 똥은 여전히 거름이었지만, 이제는 함부로 내버려두어서는 안 되는 거름이 된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변화는 더욱 뚜렷해졌다. 서울의 분뇨를 누가 치울 것인지가 개인이나 농민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 행정의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1904년부터 유상수거와 유상처분 방식이 시작되었고, 1907년에는 한성위생회가 설립되었다. 이제 똥을 치우는 일도 누군가 알아서 하는 일이 아니었다. 도시의 위생을 위해 누가, 어디서, 어떻게 분뇨를 수거하고 처리할 것인지를 정해야 했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나온다. 한성위생회가 수거한 똥도 그냥 버린 것은 아니었다. 근교의 농민들에게 팔았다. 농민들에게는 여전히 필요한 거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근대적인 위생제도가 만들어졌다고 해서 똥의 쓰임이 갑자기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의 집에서 나온 똥은 수거되었고, 도시 밖으로 이동했고, 농민들은 그것을 다시 밭에 뿌렸다. 조선시대의 똥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순환이었다. 달라진 것은 똥 자체가 아니라 똥을 다루는 방식이었다.


예전에는 엄행수 같은 사람이 똥을 치웠다. 농민이 필요하면 가져갔고, 똥을 치우는 사람은 그것을 모아 생계를 이어갔다. 이제는 도시의 위생조직이 나서서 분뇨를 수거하고, 비용을 받고, 처리하는 체계를 만들었다. 똥이 처음으로 본격적인 행정의 대상이 된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제도가 생긴다고 모든 일이 순조롭게 돌아간 것은 아니다. 한성위생회가 주도한 분뇨 수거 체계는 한국인들의 요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채 빠르게 추진되었고, 위생비를 부담해야 했던 사람들의 반발도 나타났다. 똥을 치우는 일 하나에도 돈이 필요했고, 누가 그 비용을 부담할 것인지를 둘러싼 문제가 생겨났다. 결국 1914년 한성위생회가 해체되고 경성부가 분뇨 수거를 맡으면서 이 일은 더욱 본격적인 도시 행정의 영역으로 들어갔다.


생각해 보면 꽤 재미있는 변화다. 조선시대에는 똥이 농사의 문제였다. 좋은 거름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가 중요했다. 한양의 똥을 치우는 사람에게는 생계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근대 도시가 만들어지면서 여기에 새로운 질문이 하나 더해졌다. “이 많은 똥을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해가 되지 않게 처리할 것인가?” 질문의 방향이 달라진 것이다.


그렇다면 처음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똥은 언제부터 오물이 되었을까? 생각보다 답은 간단하지 않다. 조선시대에도 똥은 분명 더러웠다. 그렇지만 동시에 귀한 거름이었다. 근대가 시작된 뒤에도 한동안 똥은 여전히 농업에 필요한 비료였다. 다만 사람들의 건강과 도시의 청결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새로운 기준이 생기면서, 똥은 “그냥 내버려두어서는 안 되는 것”이 되었다. 그러니 똥이 어느 날 갑자기 오물이 된 것은 아니다. 똥의 성질이 어느 날 달라진 것도 아니다. 똥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과 그것을 관리하는 슬롯의 방식이 달라진 것이다.


그리고 이 변화는 우리가 오늘날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똥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일이 아니라 도시가 처리해야 한다.” 조선시대의 똥은 밭으로 돌아갔다. 누군가는 그것을 모아 돈을 벌었고, 농부들은 그것을 거름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근대 도시에서는 똥을 어떻게 수거하고, 어디로 옮기고, 누가 비용을 부담하며,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까지 행정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똥 하나를 따라가다 보니 도시의 모습까지 달라진다. 농부에게는 거름이었던 똥이 도시에서는 위생 문제가 되고, 개인의 일이었던 분뇨 처리가 행정의 일이 된다. 똥의 역사는 결국 사람들이 무엇을 더럽다고 생각했는가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도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화장실에서 물을 내리는 순간은 생각보다 역사적인 행동인지도 모르겠다.

똥을 물에 흘려보내면 그것으로 끝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뒤에는 수거하고, 운반하고, 처리하는 거대한 도시의 시스템이 움직이고 있으니까.


분뇨 뿌라는 장면(동아일보).jpg2016.4.28일자 <동아일보>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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