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을 치우는 사람을 ‘선생님’이라고 부른다면 어떨까? 아마 대부분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실제로 똥을 치우는 사람에게 ‘선생’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이 있었다. 연암 박지원이다. 그는 한양에서 똥을 치우며 살아가던 한 사람을 가리켜 ‘예덕선생(穢德先生)’이라고 불렀다. 예(穢)는 ‘더럽다’는 뜻이고, 덕(德)은 말 그대로 ‘덕’을 뜻한다. 풀이하면 ‘더러운 일을 하는 덕 있는 선생’쯤 된다. 도대체 박지원은 왜 똥을 치우는 사람을 선생이라고 불렀을까?
그 주인공은 앞에서 살펴본 엄행수다. 엄행수는 한양에서 사람들이 내놓은 똥을 치우는 일을 생업으로 삼았다. 새벽부터 나가 자신이 맡은 일을 하고, 그 대가로 받은 돈으로 생활했다. 당시 사람들의 눈에는 결코 좋은 직업으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똥을 치우는 일은 더럽고 천한 일로 여겨졌고, 양반처럼 신분이 높은 사람이라면 굳이 직접 노동을 하지 않는 것이 체면처럼 여겨지던 시대였다. 그런데 박지원은 오히려 이런 엄행수의 삶을 눈여겨보았다.
《예덕선생전》을 보면 그 이유를 조금씩 알 수 있다. 엄행수는 자신의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남에게 기대거나 빌붙지도 않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성실하게 하면서 자기 노동으로 살아갔다. 욕심을 부리지 않았고,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자신의 처지를 꾸미지도 않았다. 박지원이 높이 평가한 것은 바로 이런 삶의 태도였다.
이 대목에서 박지원의 질문이 드러난다. 사람의 귀천은 정말 직업이나 신분으로 결정되는 것일까? 당시 양반 슬롯에서는 양반이라는 신분 자체가 사람의 가치를 보장해주는 것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박지원이 보기에는 꼭 그렇지 않았다. 양반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으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과, 사람들이 천하게 여기는 일을 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바카라임지는 사람 가운데 누가 더 훌륭한가. 박지원은 엄행수라는 인물을 통해 이 질문을 던지고 있었던 것이다.
《예덕선생전》에는 이 문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양반인 선귤자는 엄행수를 존경하지만, 그의 친구 자목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떻게 똥을 치우는 사람을 선생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자목에게 중요한 것은 신분과 직업이었다. 그러나 선귤자가 바라보는 엄행수의 모습은 달랐다. 그는 남들이 꺼리는 일을 하면서도 자기 힘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누구에게 기대어 살지도 않았고, 자신의 일을 게을리하지도 않았다. 박지원은 바로 이 대비를 통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을 뒤집어 놓는다.
그렇다고 이 이야기를 단순히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라는 교훈으로 끝내면 조금 아쉽다. 엄행수가 특별했던 것은 그가 똥을 치우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 일이 당시 슬롯에서 실제로 필요한 일이었다는 데에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똥을 눈다. 누군가는 그것을 치워야 한다.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는 그 분뇨가 다시 필요한 거름이 된다. 엄행수는 그 사이를 연결하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이 더럽다고 외면하는 일을 대신하면서 도시의 분뇨를 치우고, 그것을 농업에 필요한 자원으로 보내고, 그 대가로 자신의 생계를 이어갔다. 그의 노동은 더러웠을지 몰라도 쓸모없는 것은 아니었다.
여기서 ‘선생’이라는 말의 의미도 조금 달라진다. 선생은 반드시 바카라을 많이 읽은 사람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몸으로 보여주는 사람도 누군가에게는 선생이 될 수 있다. 박지원에게 엄행수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남들이 천하게 여기는 일을 하면서도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남에게 기대지 않으며, 자기 노동으로 자신의 삶을 바카라임지는 모습 자체가 다른 사람에게 배울 만한 것이었다. 그래서 박지원은 그를 ‘예덕선생’이라고 불렀다.
생각해 보면 재미있다. 처음에는 그저 똥 하나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똥을 거름으로 사용했고, 한양에서 나온 똥은 농촌의 밭으로 흘러갔다. 그리고 그 길 한가운데 엄행수가 있었다. 사람들에게는 버려야 할 것이었던 똥을 그는 모았고, 농부들에게는 그것이 필요한 거름이었다. 엄행수에게는 그것이 자신의 삶을 이어가기 위한 노동이었다. 작은 똥 하나를 따라갔을 뿐인데 어느새 우리는 농업과 도시, 노동과 신분, 그리고 사람을 무엇으로 평가해야 하는가라는 문제까지 만나게 된 것이다.
그러니 처음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왜 박지원은 똥을 치우는 사람을 ‘선생’이라고 불렀을까? 엄행수가 똥을 치우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사람들이 천하게 여기는 일을 하면서도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남에게 기대지 않고 자신의 노동으로 묵묵히 살아갔기 때문이다. 박지원이 보기에 그런 삶에는 양반의 신분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덕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엄행수에게 ‘예덕선생’이라는 조금은 장난스럽고, 동시에 꽤 날카로운 이름을 붙였다.
참 이상한 선생이다. 바카라을 가르친 것도 아니고, 글을 가르친 것도 아니다. 똥을 치우면서 사람들에게 삶을 가르친 선생. 어쩌면 박지원이 우리에게 던진 질문은 이것인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사람을 무엇으로 평가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