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발걸음은 계단 바로 앞에 있는 줄리아의 방으로 향했다. 역시나 노크 없이 문을 열었다. 당황한 얼굴이 잔뜩 구겨진 줄리아가 자동반사적으로 손을 들었다. 얼굴을 보호하는 자세였다. 언니는 화풀이대상으로 본인을 결정하는 것같다는 생각한 줄리아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또 뭔데!”
줄리아가 입을 다물기 전 멜리아의 손이 날아들었다.
짝.
그간 줄리아의 머리맡이나 등허리 팔뚝 등 온몸을 때렸으나 멜리아가 뺨을 때린 것은 처음이었다. 쩌렁쩌렁한 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웠다. 차마 닫지 못한 줄리아의 입이 바들바들 떨렸다. 왜 저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지. 억울함에 눈물이 솟구쳤다. 팔뚝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던 그녀가 멜리아를 힘껏 밀었다. 처음 한 반항에 더욱 화가 난 그녀가 이젠 주변에 있는 물건을 집어 던졌다. 우당탕. 거칠고 둔탁한 소리에 아래층에 있던 사용인들이 주인을 불렀다. 레틸과 마르크가 이 층으로 올라왔다. 얼굴에 상처가 듬성듬성 난 줄리아의 모습을 보고 레틸이 먼저 다가와 그녀를 안았다.
“너는 뭐 하는 짓이야! 왜 동생을 이렇게 때리고 그래! 어!”
마르크가 멜리아에게 다가가 손을 들었다. 순식간이었다. 두꺼운 손이 멜리아의 얼굴에 자국을 남겼다. 손바닥 자국이 선명했다. 꽤 강하게 내려쳤다는 뜻이었다. 멜리아를 혼내던 레틸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릴 정도였으니.
줄리아가 마른침을 삼켰다.
저렇게 혼내 달라는 뜻은 아니었다. 아빠와 언니의 힘은 새삼 차이가 났으니 언니가 더 충격이 클 거로 생각했다. 가만히 서 있던 멜리아는 그대로 뒤돌아서 집 밖을 나갔다.
그녀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레틸이 한숨을 내쉬며 독하다고 혀를 찼다.
“너희 언니는 성격이 별나 정말. 누굴 닮은 거니 대체.”
“그, 그러게…. 왜 저러는 거야.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라니까.”
“또 괴롭히거든 바로 말해. 알았니?”
줄리아는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멜리아가 나간 문을 덩그러니 바라보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 * *
집나간 멜리아를 찾아 나선 줄리아의 눈에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몸이 기사처럼 다부졌고 얼굴은 한번도 보지못한 황자 같이 잘생겼다. 가히 누가 보아도 그보다 잘생긴 사람을 찾지 못 할 거라 자부했다. 게다가 시장에서 가장 인기도 좋았다. 누구라도 한 번 더 보고 싶어 그를 힐끗거리니 줄리아가 먹잇감이라도 된 듯 그에게 다가갔다.
“내 이름은 줄리아 오하라에요. 당신은요?”
“엔드류. 가문은 없어.”
“오호…. 그런데 왜 이렇게 인기가 많아요.”
“그 인기 필요 없는데. 당신 가질래?”
“나도 인기 필요 없어요. 당신만 있다면 모를까?”
엔드류와 줄리아의 눈빛이 뒤섞였다. 마치 버터와 설탕처럼 달콤하고 끈적인 것이 조화롭기까지 했다.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시장에서 만나 시간을 보냈고 종국엔 귀족들의 놀이터까지 활동 범위를 넓혔다.
줄리아는 엔드류가 귀족이 아님에도 그를 동등한 사람처럼 대했다. 가끔 귀족들의 부조리에 진저리쳤는데 이보다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 귀족 중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해서 엔드류가 누구보다 좋았다. 봐도 봐도 보고 싶다는 말을 이제야 알 정도로.
만남이 잦다 보니 추문은 강물보다 빨랐다.
오하라 가문의 여식이 시정잡배들을 만난다던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고 그 소문은 사교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