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 보면 화가 나

by썬이


마르크와 레틸이 외출하고 집안에는 사용인들과 두 딸만 남았다. 요즘 들어 부쩍 두 사람만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레틸은 사교계를 앞둔 딸을 위해 귀족들의 다과회에 꼭 참석 하는 편이었다. 특히 오늘은 사교계에서 유명한 공작부인의 다과회라 레틸이 일찍이 나섰다.

줄리아는 방안에서 하얀 종이에 비행기 모양 그림을 그리며 놀고 있던 때였다. 노크 없이 문이 열렸다. 꽤 거칠게 열린 소리에 줄리아의 시선이 방문으로 향했다. 멜리아가 짝다리를 짚고서 방문 앞에 서 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꽤 단호했다. 아니 화가나 보였다. 그림을 그리던 줄리아의 손이 멈추었다. 그녀가 마른침을 삼켰다. 언니의 표정을 보니 불길한 징조가 느껴졌다.


“무슨일이야?”

“방안이 왜 이런 거야?”

“왜? 내 방안이 어때서.”

“더럽잖아. 마리가 청소해주지 않았어?”

“해줬어. 지금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라 그래.”

“그림? 지금 한가하게 그림이나 그릴 때니? 저번에 보니 자수도 엉망이던데 자수 연습이나 하지?”


줄리아의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자수는 그녀의 성격에 맞지 않았다. 아니 따분했다. 바늘로 작은 구멍을 찾아 끼울 때마다 줄리아의 머릿속에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기분이었다. 실이고 천이고 다 불태우고 싶어졌다. 그러니 차라리 대충이라도 제 멋대로 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는 방법이 좋았다.

줄리아가 입을 쭉 내밀며 말했다.


“자수는 싫어.”

“뭐?”

“싫다고! 피아노도 싫고! 자수도 싫어! 나한테 강요하지 마!”


멜리아는 대답 없이 곧장 걸어와 줄리아의 머리 위를 내려쳤다.

그녀의 손바닥이 닿고 떠난 자리에 강한 통증이 일은 줄리아가 바닥으로 쓰러지며 바닥에 한 번 더 부딪혔다. 두 번 강타한 고통에 줄리아의 눈에 눈물이 잔뜩 고였다.

자신보다 두 뺨은 큰 멜리아는 부모님이 없을 때 유독 난폭해졌다. 이유라도 알려줬으면 좋겠는데 말도 해주지 않고 난폭해지니 줄리아가 억울해서 더욱 눈물이 났다.


“부모님 오시면 다 이를 거야!”

“일러. 더 일어봐. 더 때려줄 테니!”

“왜 그래! 그만 좀 때려!”

“싫어! 너만 보면 짜증이나. 화가 난다고!”


차라리 이유라도 말해주면 고칠 의향이 다분했던 줄리아는 매번 억울했다. 왜이리 미워하는 걸까. 동생을 예뻐해 주면 안 되는 건가. 멜리아는 화풀이가 끝났는지 방을 나갔고 그날 밤 내내 베개에 얼굴을 묻은 줄리아가 밤새 흐느끼다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두 부부가 잠에서 깨기 전 줄리아가 침실을 찾았다. 언니가 어제 얼마나 괴롭혔는지 두 눈이 잔뜩 부었다며 고자질을 하기 위해서였다. 레틸은 한숨을 내쉬었고 마르크는 손을 내저었다. 오늘은 황제가 부대로 찾는 날이었다. 잠에 푹 들지 않으면 컨디션 난조가 예상될 터. 잠이 덜 깬 레틸이 칭얼거리는 줄리아를 데리고 이 층으로 올라갔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만 울어. 언니 혼내줄게. 됐니? 도대체 왜 말썽이야.”

“말썽이 아니고 그냥 언니가 때린 거야! 진짜로.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어제 한 거라곤 그림그리기가 전부란 말이야.”

“아휴. 미쳐. 진짜. 마리는 뭐 했니?”

“마리가 언니를 이길 수가 있다고 생각해?”

“휴…. 알았다. 가보자꾸나.”


결국 레틸은 자는 멜리아를 깨워 동생 좀 아끼라고 신신당부했다. 언니가 되어서 왜 그러냐며 거칠게 혼을 내니 그제야 줄리아가 웃었다. 이제 언니가 혼났으니 안 그러겠지? 하며 줄리아는 방안에서 아직 덜 푼 피로를 풀었고 멜리아는 혼자 남은 방안에서 씩씩거리며 두 주먹을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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