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죽는 꼴 봐야 해

by썬이


그렇게 오하라 가문은 오 년 동안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흘러갔다.

볕이 좋은 오전.

햇살 한 줌이 구름을 뚫고 남자의 짧은 머리칼에 닿았다.

깔끔하게 머리를 정돈한 그는 자기 활약을 보여주듯 한 치렁치렁한 배지를 단 각진 정복을 차려입고 절도 있게 이동했다.

오늘따라 비행 훈련 소리마저 없는 고요한 하늘이었다.

유달리 그의 구둣발 소리가 또각또각 시가지거리를 울려댔다.

슈릴제국의 공군 참모인 바에른 록튼 사령관.

그가 오하라 가문의 여식과 혼사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방문을 하기로 한 날이었으니.

그의 절도에 따라 대문의 손잡이가 일정한 소리를 내어 움직였다.

오하라 가문의 사람들은 일제히 숨을 멈췄다.

이윽고 눈빛만 주고받던 그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들이 알고, 곧 당도할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오하라 가문의 가장 기민한 감각을 가진 사람, 줄리아와 멜리아의 엄마인 레틸은 검지를 들어 입술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록튼 사령관은 무조건 우리 사람이야. 너희 돌중 한 사람은 꼭 결혼 해야 한다. 아니면 엄마 죽는 꼴 봐야 해. 알았니? 죽을힘을 다해 따낸 기회라는 거 잊지 마. 알았어?”


멜리아는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고 줄리아는 콧방귀를 꼈다.

레틸은 긴장감에 숨을 길게 내쉬었다.

좋은 기회인데도 그저 맛있는 음식에만 눈독을 들이고 있는 신랑인 마르크가 답답하기만 한 레틸은 어금니를 짓씹었다.


“여보오. 자기네 사람이잖아요. 먼저 맞이해주세요. 여보가 잘하시는 일이잖아요. 그렇죠?”

“허허. 그렇고말고. 자 가지. 바에른이 참으로 똑똑해. 우리 가족이 된다면 참으로 좋을 걸세.”

“역시 여보는 최고예요.”


엄마의 처세술에 줄리아는 입을 떡 하니 벌렸다.

남자는 저렇게 어르고 달래야 하는 종족인가.

진절머리가 나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줄리아와 다르게 옷의 맵시를 확인하는 멜리아는 다소곳이 손을 모았다.

식사 자리는 다행히 순탄했다.

멜리아가 사전에 줄리아의 허벅지를 강하게 꼬집으며 한 말 때문이었다.


“여기서 무슨일이 있으면 알아서 해. 죽을 줄 알아.”


줄리아는 이젠 대놓고 협박하는 언니를 가자미 눈으로 바라봤다. 언니는 한평생 자신을 미워한다며 속으로 되뇌던 그녀가 어금니에 힘을 잔뜩 주며 식사 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렸었다.

온 가족이 응접실에 앉아 바에른과 결혼할 사람에 대해 토론했다. 두 부부의 의견이 달랐다. 레틸은 아무래도 사령관은 장녀가 만나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했고 마르크는 비행기를 좋아하는 줄리아가 만나길 원했다.

하지만 줄리아는 재빨리 거절 의사를 밝혔다.


“저는 싫어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 만날 거예요.”


줄리아의 반항적인 얼굴과 거친 말투에 레틸이 서둘러 말을 보탰다.


“마리가 그러던데 시장에 자주 드나든다는 말이 있어. 줄리아 시정잡배는 안돼. 알지?”


레틸의 말에 줄리아가 묵묵부답했다. 팔꿈치로 멜리아가 툭 치기 전까지.

팔뚝에 통증이 이른 줄리아가 아픈 부위를 문지르며 말했다.


“그만 좀 때려! 아프다고. 나 이제 어린이 아니야. 그리고 엄마. 시정잡배도 제 국민이에요. 우린 그들을 보호해야 할 귀족이잖아요?”

“하…. 줄리아!”

“맞잖아요. 그들도 존중해주세요!”


줄리아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고 레틸이 이마에 손을 올렸다.

멜리아는 줄리아가 남긴 잔상을 바라보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천천히 내쉬며 일어섰다.


“엄마 저도 올라가 볼게요.”

“하…. 그래라. 머리가 아프다. 네 동생 왜 그러니. 걱정되어 죽겠어.”

“제 앞길이니 잘하겠죠.”


멜리아는 레틸 몰래 어금니를 씹었다. 그리고 서둘러 표정을 지운 뒤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곧이어 멜리아가 이층계단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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