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기로 사교계의 꽃이라 불렸던 오하라 영애들을 끌어내리기에는 이유가 충분할 터였다. 외출을 나섰다 돌아온 레틸의 얼굴에 열이 잔뜩 받은 듯 붉어 있었다. 곧 터질 것만 같아 부풀어 있어 멜리아가 수를 놓다 손을 찌를 뻔하였다. 하지만 바늘은 구멍을 잘 찾아가며 아름다운 꽃잎의 잎사귀를 만들었다.
“아휴. 무슨 이상한 소릴 하고 그러는지. 수준 낮아서 원.”
“왜요. 무슨 일인데요.”
“우리 오하라 가문이 시정잡배들과 어울린단 소리를 하잖아. 절대 그럴 일 없는데. 우리 오하라 가문이 어떤 가문이니. 대 귀족 가문이 아니니? 왕립원 출신에 너희 아버지는 공군 참모 출신이야. 그런데 뭐? 시정잡배? 하…. 가당치도 않지.”
“무시하세요. 어머니.”
“무시할 수가 없어서 그래. 정말 너무 열을 받잖니. 나 원 참!”
천 너머로 씩씩대는 레틸을 바라보던 멜리아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놓던 수를 테이블 위로 내려놓고선 이층으로 올라갔다. 그녀가 이동한 곳은 줄리아의 방.
이야기 도중 떠나는 첫째의 행동에 놀란 레틸은 고개를 학처럼 내밀다 말고 손으로 얼굴을 부채질했다.
“어휴 정말. 이게 무슨일이야. 나 참 부끄러워서 진짜.”
줄리아의 방에 들어선 멜리아는 그녀의 방을 샅샅이 살폈다. 그리고 시든 꽃이라던지 낡은 편지지 같은 것들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 그날 엔드류를 만나고 돌아온 줄리아는 그대로 짐을 싸서 집을 나가버렸다. 오하라 가문 따위는 없어도 잘 산다는 말을 남겨 레틸과 마르크의 가슴에 대못 박는 것도 잊지 않은 채.
* * *
멜리아는 비에른과 결혼했다는 소문이 들렸다.
줄리아 또한 작은 성당에서 엔드류와 결혼식을 마쳤고 뱃속엔 곧 태어날 쌍둥이 아기가 자라고 있었다. 결혼 전에 가진 아기가 조금은 부끄러워 외출을 꺼리던 그녀가 결혼식 후엔 당당히 두 아이를 데리고 외출도 나섰다.
시장 상인들은 그녀를 영웅이라 칭했다. 귀족 집안의 아가씨가 가문을 버리고 시장을 지키고 사람들을 위해 나서주기도 했다. 엔드류는 어디서 이런 아가씨를 얻었냐며 칭찬받기 일색이었다. 하지만 결혼 전에는 그 칭찬이 오롯이 엔드류를 향했으나 날이 갈수록 칭찬의 방향이 줄리아를 향했다.
엔드류는 자신의 아이를 낳아준 줄리아가 퍽 미웠다. 아가씨 때처럼 몸이 날렵한 것도 아닌데 시장 상인들의 칭찬을 마를 새 없었다. 되려 그가 무슨 외모를 하든 않든 더욱 신뢰도가 쌓이니 이젠 아이까지 미운 지경에 이르렀다.
한날은 엔드류가 아끼는 옷에 주스를 부은 첫째 쌍둥이 로나에게 손찌검을 했을 때였다.
화들짝 놀란 줄리아가 엔드류를 밀어내며 소리쳤다.
“뭐야. 지금 로나 때린 거야?”
“그래. 이 옷을 구하기 위해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넌 알잖아. 마담 차르 옷이라는 거 몰라?”
“마담 차르인지 치르인지! 딸이 그럴 수도 있지. 너 왜 그래?”
“너라고 했냐? 남편한테 너라는 말이 맞아? 너 아직도 네가 오하라 가문의 공주라고 생각하냐?”
“뭐? 갑자기 이야기가 왜 그렇게 빠지는 건데!”
“하. 이제 보니 날 무시하고 있었네. 그렇지?”
“아니야! 엔드류! 대화의 논점을 흐리지 마.”
“됐어. 넌 날 가르치지 말라고.”
엔드류의 눈은 더는 맑고 온화하지 않았다. 육식을 즐겨 하는 짐승 같기도 했고 신화에만 나오던 괴물 같기도 했다. 줄리아는 두 쌍둥이를 끌어안고 화가 잔뜩 난 엔드류에게서 지켜내기를 며칠간 반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