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Y대출신 신입 마케터 주영(2)
서른에게 입시가 있다면,
결혼은 마치 ‘수시전형’과 같았다.
한날한시에 같은 시험을 보고 오로지 ‘점수’만으로 등급이 결정되는 수능과는 달리, 수시는 각자가 가진 무기에 따라 결과가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는 전형이다.
‘걔가 거길 붙었다고?‘
혹은
‘걔는 당연히 붙을줄 알았는데.’
누군가에게는 기적이, 또 누군가에게는 무력감이 드리우는 그런 전형이었다.
게다가 가장 잔인한 점은, 불합격의 이유를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른에게 결혼도 마찬가지다.
최저 기준은 있는데 정해진 합격 스펙은 없다. 고학력, 고연봉일수록 혼인 성사률은 높아지지만, 동시에 미혼률도 적지 않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좋은 점수를 받으면 됐지만, 좋은 결혼을 하기 위해 몇 점을 받아야 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이 애매한 확률들의 사각지대에 주영이 있었다.
명문대 Y대 졸업에 강남8학군 출신, 게다가 이쁘장한 외모. 결혼시장에서 꽤 매력있는 조건들을 다 갖춘 주영은 아직 미혼이다. 입시였다면 진작 합격증 하나쯤 손에 쥐었어야 할 스펙이었다.
늦어도 서른다섯에 출산을 하려면 적어도 지금쯤 결혼을 약속한 애인이라도 있어야만 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더 늦기전에 결단할 수밖에 없었다. 정훈이가 차마 걷지 못했던 길을, 주영이는 기어코 걸어가기로 했다.
하얏트 라운지 1층.
주영의 첫 선자리 장소이다.
서른이 되고 열 번이 넘는 소개팅을 했지만, 이렇게 럭셔리한 곳에서의 첫만남은 처음이다. 강남역 11번 출구나 합정역 사거리가 아닌, 언덕 위 호텔이라니.
주영은 벌써부터 자신의 위치가 달라진 것을 느낀다.
“혹시 김주영씨?”
맞선남은 다행히 실물이 더 나았다.
이름은 이수영. 부산 출신, S대 졸업, 김앤장 소속 변호사. 똑똑하고 연봉도 높은데 시댁까지 멀다니. 더할 나위없이 완벽한 신랑감이었다.
딱 하나.
키와 외모가 걸릴 뿐이었다.
170센치는 겨우 넘는듯 했고, 외모는 얼핏보면 지적이지만 자세히 보면 유재석을 닮았다. 유재석은 50대지만 맞선남은 30대 초반이라는게 중요하다.
사진보다 실물이 났다는 것이지 그는 주영의 스타일과는 여전히 거리가 많이 멀었다.
같은 미혼끼리 이런말 하긴 좀 그렇지만..
화려한 스펙에도 이 나이까지 짝이 없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물론 주영은 그 문장을 자기 자신에게까지 적용해볼 생각은 없었다.
“주영씨는 주말에 보통 뭐하세요?”
“하루종일 릴스랑 쇼츠 보다가 엄마가 차려준 밥 먹습니다.”
라고 솔직하게 대답할 수는 없었다. 초면이니만큼 취미에도 모략이 필요했다.
“저는 영화 보거나 카페 가서 바카라읽곤 해요, 수영씨는요?”
“저도 바카라보는걸 좋아해요. 근데 취업후에는 주말 없이 일만 계속 해왔네요.“
김앤장 변호사들은 자는 시간 빼고는 전부 일만 한다고 하던데. 정말 그런듯 했다.
“주영씨는 어떤 음식 좋아해요? 혹시 못드시는 음식은 있어요?“
그는 이런 저런 질문을 끊임없이 하며 어색할 틈을 주지 않았다.
나름 말을 하는 직업이라 그런가 싶다가도, 발그스름한 그의 얼굴빛과 살짝 떨리는 목소리가 알려주고 있었다.
그가 주영에게 반했다는 것을.
주영은 이런 순간을 싫어하지 않았다.
내가 상대를 고를 수 있다는 확신이 드는 순간.
‘주말마저 바쁜 사람이라면 자주 만나지 못할텐데.. 어차피 내 스타일도 아니니 더이상 사람 헷갈리게 하지말고 정리하자’
그렇게 결론을 내리려던 찰나, 한 문장이 주영의 머릿속을 빠르게 스쳤다.
‘어차피 결혼하면 대화도 잘 안해~ 자식 낳고부터는 그저 룸메이트야.‘
주영의 엄마가 했던 말이다.
딸은 엄마 팔자를 닮는다는게 이런걸까. 아무리 엄마의 사상이 싫었어도 결국엔 자식에게 스며들어 인생의 가치관으로 자리 잡는다.
‘그래, 언제 내가 불타는 사랑을 바래왔다고. 안정적이고 든든한 배우자감을 찾아왔었잖아. 자주 못 보면 오히려 잘됐지. 주말부부다 치고 각자의 삶을 잘 살아가면 되는 거 아니겠어?‘
주영은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남들보다 더 똑똑하다고 느껴졌다. 철없이 '사랑하니까 결혼한다'는 커플들이 한심해보였고, 그와 함께 한층 더 어른스러운 결혼을 준비할 수 있겠다는 미래가 그려졌다.
사랑에 빠져 결혼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조건을 따져가며 사랑할 사람을 정하는 건 합리적인 어른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주영은 믿었다.
게다가 이 남자 정도면.. 신라호텔에서 결혼할 수도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와인에 살짝 도는 취기 때문인지...
갑자기 그가 유재석이 아닌 이석훈으로 보였다.
오각형이었던 그가, 마침내 육각형이 되었다.
저녁 8시.
헤어지기엔 다소 이르고, 데이트는 더 무르익을 수 있는 시간대였다. 여전히 발그스름한 얼굴로 2차 제안을 망설이는듯한 그에게 주영이 먼저 용기내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