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8천에 하이닉스 사기

8화. K대출신 개발자 한수(3)

by비니스

이번에도 공부는 배신하지 않았다.


출처: 동아일보

한수가 한땀한땀 선별했던 종목들은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수익을 보게 되었다.


잠시 푸르렀던 계좌는 금방 붉은빛으로 물들어갔다. 붉은 악마.. 아니 천사가 찾아왔다.


투자 60일째.

영끌해서 모았던 원금 4억은, 4억 4천이 되었다.


예금으로 치면 연 60%짜리 투자다.

예금 금리를 비교하겠다고 은행 앱을 세 개나 깔았던 시간들이 조금 아까워졌다.


한수는 증권계좌 화면을 캡처했다.

주가가 오르기 전까지는 아내가 잠든 뒤에만 몰래 열어보던 계좌였다.


하지만 지금은,

캡처한 사진을 프로필에 올리고 싶을 정도로 관심이 고팠다.


주말 저녁.

한수는 식탁 위에 휴대폰을 슬며시 올려놓았다.


“요즘 수익이 좀 났어.”


아내가 젓가락질을 멈췄다.


“얼마나?”

“합쳐서 사천 정도.”


평소보다 무게감 있게 낮은 목소리로 들뜬 마음을 숨겼다.


“사천만 원?”


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가 화면을 한 번, 한수의 얼굴을 한 번 보더니 웃었다.


“오빠는 잘 해낼 줄 알았어.”

“아직 초기라 장담하긴 어렵겠지만… 느낌이 나쁘진 않아.”

“오빠는 신중하고 똑똑한 사람이니까. 잘할 거야.”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른 응원이었다.


이더리움이 5%만 더 오르면,

그때는 아내를 데리고 다시 백화점 1층으로 가리라.


이번에는 가격표가 아닌 아내의 표정에 집중하며 쇼핑해야지. 그럼 언젠가는.. 지원이처럼 백화점 VIP가 되어 있을 거다.


지금처럼만 쭉쭉 올라준다면 10년 안에 은퇴도 가능하겠지?


은퇴하면 어디 가서 살까.. 반포? 잠실?


기름때 묻은 프라이팬을 닦으면서도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엔비디아가 쏘아 올린 AI 열풍,

HBM 넘어 D램 반도체까지, 슈퍼사이클 진입”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한수는 반대였다.

노를 젓고 있었는데 큰 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물이 어디서 오는지, 얼마나 높이 차오를지 살펴보는 동안 옆 배들이 먼저 떠올랐다.


“삼전닉스 아직도 안산 사람이 있어?“

“하이닉스 이번에 미국에도 상장한대잖어. 지금이 제일 쌀 때야.”


점심 메뉴를 고르던 대화가 어느새 또 반도체로 넘어갔다.


사무실, 엘리베이터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삼전닉스 빼고는 대화가 안 됐다.


“난 어제 좀 뺐는데.”

“벌써?”

“너무 올라서 무섭더라고. 하이닉스는 벌써 100만원이 넘었어.“

“돈 버는 게 무서우면 어떻게 부자 될래.”


웃음이 터졌다. 한수도 입꼬리를 올렸다.


한수의 포트폴리오엔 반도체 종목이 없었다.


AI가 세상을 바꿀 거라는 시나리오는 알고 있었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겼을 때부터 언젠가는 AI에게 내 일자리도 뺏기겠구나 상상했었다.


다만 그 뿌리에 반도체,

그것도 ‘우리나라’ 반도체가 있다는 것까지는 알지 못했다.


식사를 마치고 행여나 더 올랐을까 불안한 마음에 주식어플을 들락날락하는데. 재수 없게 옆자리 선배 눈에 포착됐다.


“한수, 요새 주식 좀 하나 봐.”

“아, 네. 소소하게요. “

“주식을 소소하게 해서 언제 돈 버냐. 할 거면 화끈하게 해버려야지.”


거들먹거리던 선배는 명함마냥 자신의 증권계좌를 자신 있게 보여줬다.


삼성전자 +322%

하이닉스 +125%


코인이 아니라 코스피었다.


“국장이 미장에 비하면 시시했었는데, 이번에는 달라. 내 친구가 증권사 애널리스트거든? 앞으로 삼전닉스 두 배는 더 오른댄다.”


지금이라도 방향을 꺾을까?


아니다.

한수는 분위기에 휩쓸려 방향을 바꾸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기엔.. 나만 빼고 모두가 돈 버는 것 같은데?


한수는 자신이 만든 엑셀 파일을 열었다.


기업별 실적, 적정 매수가, 목표 비중. 밤마다 채워 넣은 칸들이 빼곡했다.


파일 맨 위에는 투자 원칙 세 가지를 적어두었다.


1. 모르는 종목은 사지 않는다.

2. 한 종목에 투자금을 몰지 않는다.

3. 가격이 올랐다는 이유로 따라 사지 않는다.


마지막 문장을 한 번 더 읽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서야 한수는 파일을 닫았다. 그리고 하이닉스의 주가를 한 번 더 확인했다.


150만원.


역시 비싸다. 지금은 아니다.


그날 이후.

한수는 사지도 않은 주식으로 하루에 몇백만 원씩 잃었다. 이런 걸 벼락거지라고 하던가.


아내가 보낸 메시지 위로 속보가 떴다.


‘코스피, 사상 첫 8천 돌파.’


한수는 뉴스부터 눌렀다.

사실이었다. 곧장 환희와 좌절로 엇갈린 반응들로 댓글창이 도배됐다.


‘이제 고점이다, 저는 먹튀요~‘

‘랠리는 이제 시작이다’

‘80만원에 판 호구 여깄어요’


이때 사토시(유투버)가 라방을 켰다.

한수가 몇 안되게 신뢰하는 투자 유투버다. 불안한 마음에 종교라도 찾는 심정으로 라방에 입장하는데


“공부 많이 하신 분들이 오히려 이럴 때 힘들어하세요. 자기가 계산해 놓은 가격이 있으니까. 그 가격이 올 때까지 계속 기다리거든요.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세요. 지금 신중해서 안 사시는 겁니까, 아니면


내 첫 판단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기 싫으신 겁니까?”


한수의 체한 듯 꽉 막혔던 속이 뻥 뚫렸다.


어쩌면 그간 이렇게 한수의 소신을 꺾어줄 누군가를 기다렸는지 모른다.


한수는 엑셀 파일을 다시 열었다.


반도체 업종의 예상 실적을 고치고 목표 비중을 추가했다. 그동안 투자하지 않았던 이유 아래에 새로운 문장을 적었다.


‘시장 환경 변화에 따른 전략 수정.’


결코 따라 사는 게 아니었다. 전략을 바꾼 것뿐이다.


남들보다 늦었다는 사실도 계산에 넣어야 했다.


하이닉스 종목명을 검색하자 비슷한 이름의 상품들이 함께 떴다. 그중 하나에 ‘단일종목’, ‘레버리지’, ‘2X’가 붙어 있었다.


늦게 출발했으면 속도를 조금 높이면 되는 것 아닐까? 꽤 매력적인 상품이었다. 적어도 한수와 같은 슬로우 스타터에게는.


매매 신청 화면에서 사전교육 이수번호를 요구했다.


한수는 안내된 교육을 신청했고, 유의사항 안내를 받았다. 하지만 한수에게 지금 당장 유의해야 할 것은, 나만 빼고 돈을 버는 이 현실뿐이었다.


공부가 제일 쉬운 한수는 확인 확인문제들에 정답을 선택하고 다음 화면으로 넘어갔다.


수료증이 뜨자 파일을 내려받고, 매매 신청 화면으로 돌아와 이수번호를 입력했다.


막혀 있던 버튼이 활성화됐고 한수의 가슴도 웅장해졌다.


그간 수익이 났던 종목들을 다 매도했다.

그리고 반도체로 거대한 총알을 장전했다.


이미 한수의 투자원칙이 다 박살이 나고 있었지만, 한수의 가슴은 말했다. 이런 게 스노볼링 효과*라고.

*스노볼링 효과: 복리효과의 다른 말, 초기자본이 투자를 거듭하면서 커지는 현상


투자의 대가들도 말했었다.

‘기회가 보인다면 몰빵하라!’


자체 설득을 마친 한수의 눈앞에 매수 확인 창이 떴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300주,

매수하시겠습니까?’


‘확인’


체결 알림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한수는 십 분마다 휴대폰을 뒤집었다 켜보고를 반복했다.


결과는 화끈하게 +7% 양봉이었다.


계좌에 찍힌 붉은 숫자가 정답 표시처럼 느껴졌다. 이번에도 한수는 답을 맞혔다.


출처: 매일경제

-40%


한수의 성적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음의’ 숫자였다. 게다가 절댓값이 결코 작지 않았다.


매입금액 3억 5천.

평가금액 2억 4천.


손실 1억 1천.


처음이었다.

한수는 살면서 잠시 넘어지긴 했어도 이렇게까지 소위 ‘망’한 적이 없었다.


이런 위기 상황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공부를 하다가 성적이 떨어진 적은 있었다. 원하는 학교에 가지 못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대체로 알았다.


그러나 지금은..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손절, 강제 장투, 아님.. 물타기?

어떤 선택지도 정답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증권어플에 ‘수익률 랭킹’이 보였다.


L바이오. 30%

임상 1상 결과 관련 기사.


이미 +20%에서 매초마다 수익률이 5%씩 왔다 갔다 했다.


그래,

여기 잠깐 들어갔다 나오면 5% 정도는 만회가 될 것 같았다.


살짝 양봉이 주춤해졌을 때 살짝 발을 들였다.


매수.

매수.

매도.

매수.

매도.


이미 한수의 손가락의 주도권은 한수가 아니었다. 불안과 초조함에 미쳐버린 제2의 자아였다.


오후 5시.

한수는 멍하니 자신의 계좌를 바라봤다.


2억 3천.


30분만에 천만원이 더 날라갔다.


휴대폰에 메시지가 왔다.


‘오빠 오늘 일찍 와? 같이 밥 먹으려고.’


아내였다.


한수는 답장을 쓰지 못했다. 대화창을 조금 위로 올리자 주말에 자신이 보냈던 계좌 사진이 나왔다.


4억 4천.


그 아래 아내가 보낸 하트가 있었다.


한수는 대화창을 맨 아래로 내렸다.


‘오늘은 조금 늦을 것 같아.’


전송을 누르자 곧 답이 왔다.


‘응. 너무 무리하지 마.’


한수는 휴대폰을 뒤집어놓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공부가 배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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