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S대출신 대기업 과장 정훈(3)
날씨만큼이나 회사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플라시보*랑 별 차이가 없었대.”
“이번 임상*에만 들어간 돈이 100억이 넘었다며?”
*플라시보: 실제로 약효가 없는 가짜 약을 진짜 약으로 속여 복용하게 했을 때 병세가 실제로 호전되는 효과
*임상: 후보약물을 사람에게 투여하는 시험
혹시나 했던 ADC001*는 역시나였다.
*ADC001: 항암제 신약 코드
임상결과는 ‘효력 없음’.
정훈은 팀장에게 수차례 말해왔다.
식약처에 제출하는 자료에 약물의 효과가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고.
'과장'이라는 단어를 골라 쓰긴 했지만, 정훈이 보기엔 사기에 가까웠다.
“굳이 이 데이터를 메인에 넣을 필요가 있을까? 일단 임상 가서 확인하면 되잖아.”
“문제 될 소지가 있으면 식약처에서 추가자료를 요청하겠지.”
정훈의 기대했던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물론 실험결과라는 게 해석하기 나름일 때가 있다. 같은 숫자를 두고도 누구는 가능성을 보고, 누구는 실패를 본다.
하지만 명백하게 기준에서 벗어난 결과를 감추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제약사에게 트렌디한 파이프라인은 필수다. 정훈도 이 사실에는 동의했다. 신약 개발 회사에서 소위 (말로) 약을 팔지 않고 어떻게 투자를 받겠는가.
하지만 아무리 매력적인 약이라도 거짓이 섞이는 순간 쓸모가 없어진다.
시간낭비, 돈낭비. 거기에 업계에서 개망신까지 덤으로.
이렇게 뻔한 결말을 일개 회사원인 정훈도 아는데.
회사는 모르는 걸까? 아니면 조급함에 눈이 가려진 걸까?
임상 진입에 쏟은 돈을 투자로 메우려는 건지, 몇 달 전부터 임원진들은 각종 언론사들에 부지런히 로비를 해왔다.
그 노력에 보답하듯 언론은 로또 당첨 발표를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임상 결과 카운트다운을 하기 시작했다.
입사한 뒤로 정훈은 말쟁이들을 더욱 혐오하게 됐다. 헤드라인 한 줄에 아무렇지 않게 끄적여놓은 '허가'. 그 두 글자가 얼마나 먼 곳에 있는지 일반인들을 알 리가 없다.
10분의 1?
아니다.
100분의 1 이상의 확률이다.
그것도 제품 품질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전제 하에. 하지만 ADC001는 이미 품질부터 찝찝했다. 허가는커녕 그 문턱을 꿈꾸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회사에 대한 불만이 서서히 분노로 바뀌고 있던 참에, 수다쟁이 최선임이 정훈의 자리로 다가왔다.
“바카라임님도 들으셨죠? 이미 윗선에서는 풀매도 중이래요 바카라임님도 자사주 있으시면 얼른 정리하세요.“
“저는 자사주가 없어요. 딱히 사고 싶지가 않아서..”
“오~ 바카라임님 역시 똑똑하시다. 이미 ADC001 과제 빠그라질걸 아셨구나.“
빠그라진다.
그래, 그 표현이 딱 맞았다.
정훈이 새벽까지 야근해 가며 만들어온 약물이 납작하게 찌그러진 맥주캔처럼 쓰레기통으로 처박히는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정훈이 길게 한숨을 내쉬던 찰나, 바카라상 위 휴대폰 화면이 환해졌다.
아빠.
“여보세요.”
“아들, 느그 회사에서 신약 개발한 게 그렇게 임상 결과가 좋다대?”
“어디서 들으셨어요?”
“이미 포털마다 뉴스에 난리다야. 당장 내일 결과 나온다면서~ 아부지 주식 많이 사놨는데 더 살까?“
정훈은 입을 다물었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다.
“아부지, 일단 그 주식들 다 팔아요 당장.”
“아니 왜~ 뭐 결과가 안 좋대나? “
“어디 말하진 말고 일단 다 팔어요. 그냥. 바쁘니까 끊어요.”
정훈답지 않게 버럭 짜증을 내며 통화를 끊었다.
은퇴 후 귀농한 아버지에게까지 회사 욕을 늘어놓고 싶지 않았다. 안 그래도 공허할 마음에 아들 걱정까지 얹어주고 싶지 않았다.
이 회사에 입사했던 이유,
처음 연구를 하면서 감동했던 순간,
실험 하나에 온전히 몰입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삼시 세 끼를 걸렀던 시절.
지나고 보니 참 행복했던 나날들..
그 모든 게 아주 오래전 일처럼 느껴졌다.
정훈은 문자로 팀장에게 짧게 통보했다.
‘내일부터 2주 동안 연차입니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버렸다.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좋아하던 락발라드를 연속재생을 틀었다. 침대에 몸을 던지자 기다렸다는 듯 질문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언제부터 인생이 꼬인 거지?‘
‘내가 지금껏 바라왔던 건 뭐지?‘
‘이직을 하면 다를까?’
‘버티면 나는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온갖 철학적 질문을 혼자 던지고, 혼자 대답하다가 어느 순간 잠이 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저녁이 느지막이 내려앉은 뒤였다.
머리가 한결 가벼웠다.
2주짜리 연차 때문일까. 적어도 내일 아침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묘한 해방감을 줬다.
정훈은 잠시 망설이다가 핸드폰을 다시 켰다.
띵동.
쌓인 알림들 사이로 문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발신자는 팀장이 아니었다.
교수님이었다.
“정훈이 잘 지내지? 별일 아니고 괜찮은 포닥* 자리가 나서 한 번 보라고. 자세한 건 메일로 보내주마.“
*포닥(Postdoctoral researcher): 박사학위 취득 후 대학이나 연구기관에서 연구 경력을 쌓는 연구원
정훈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연애 한 번 못해본 정훈이지만, 연애를 한다면 이런 기분일까 싶었다.
절망 끝에는, 정말 희망 같은 게 떠오르는 걸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서둘러 노트북을 켰다.
메일함 맨 위에 교수님의 이름이 떠 있었다.
정훈은 잠시 숨을 고르고, 메일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