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Y 갈 성적이면 재수하지 그랬어

1화. S대출신 대기업 과장 정훈(1)

by비니스

"3백?"


정훈은 순간 말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소개팅 몇 번 하는데 한 달 월급을 내라는 거지?


"고객님은 가입비 총 3백만원이세요."


상담실장은 미소를 유지한 채,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어갔다.


"저.. 제 친구는 무료로 가입했다고 들었는데.."

"아 그러셨구나. 친구분 성함이 어떻게 되실까요?"

"정민기요."


잠깐 자리를 비웠던 실장이 돌아왔을 때, 웃음의 온도가 미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고객님, 정민기 회원님은 전문직이셔서 가입비를 따로 받지 않으셨어요."

"아..."


말문이 막혔다. 정훈은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지금 얼굴이 얼마나 빨개졌는지.


"그럼... 고민해 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의자에서 일어나자마자 뛰다시피 상담실을 빠져나왔다.


민기는 대학 동기이자 유일한 친구다. 쑥맥인 성격부터 공돌이상 외모까지. 둘이 닮았다는 얘기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하지만 지금 둘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다. 생명공학도가 꿈이었던 정훈은 S대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아 박사 학위를 땄다. 반면 꿈이 딱히 없던 민기는 성적에 맞춰 의학전문대학원으로 편입해 의사면허를 땄다.


이렇게 둘의 '급'은 달라지고 있었다.


"과장님~ 식사는 하셨어요?"

"아 아직.. 어디 좀 다녀오느라요."

"어디요? 은행?"

"아.. 아니 그런데는 아니고 있어요."


최선임.

이 팀 저 팀 가리지 않고 사람들의 사생활을 수집하는 회사 공식 오지라퍼. 싹싹하지만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는 친구. 그래서 정훈은 항상 적당히 거리를 두고 있었다.


"어? 과장님 혹시 듀오 다녀오셨어요?"


툭.

명함 하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상담실장이 준 명함이다. 큼지막하게 박혀있는 회사 이름을 보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과장님, 여기 좀 앉아봐요. 제 주변에 듀오에서 결혼한 친구들 수두로 빽빽해요. 얼른얼른!"


결정사에서 제대로 긁힌 탓일까. 누군가 나의 대나무숲이 되어주길 바랐다. 게다가 회사 사람이라면 같이 흥분해서 그 실장을 욕해줄 것만 같았다.


우리 회사가 말이야 대한민국 1등 회사인데 어디 돈을 내고 결정사에 들어가나!


"그래서 3백이래요."


말을 꺼내자마자 속은 조금 시원해졌다. 그런데.. 최선임의 눈빛이 묘하게 변했다. 마치 아까 봤던 그 상담실장 눈처럼.


"과장님, S대 출신이죠?"

"그렇죠."

"과장님~ 그 성적이면 재수해서 의대를 가지 그랬어요. 지방의대면 붙었을 것 같은데.“

“네?”

“게다가 과장님 과탑이었다면서요? 그럼 의전원도 쌉합격이었을텐데.. 왜 여길 오셨지?"


말투는 가벼워지만 내용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결정사는 회사원이면 무조건 돈 내고 들어가야 돼요. 아니면 금수저 집안에 자산이 50억은 되던가. 대신 전문직들은 프리패스! 저도 결정사 등급표 보면 빡치긴 하는데.. 그게 현실인걸 어떡해요?"

"제가 민기보다 학점은 더 높았는데.."

"그니까 더 아깝죠.

과장님은 의느님이 될 수 있었는데 회사원이 된 거잖아요. 못된 게 아니라 안된 건데."


또 말문이 막혔다.

의전원.. 물론 정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동기들의 절반이 그 길을 갔으니까. 그래도 한 번도 지원하지 않았다. 집안의 지원이 부족해서? 빨리 취업을 하고 싶어서? 아니다.


이유는 단순했다. 의사가 아니라 생명공학도가 되고 싶었으니까.


'난 그저 내가 좋아서 선택을 했을 뿐인데. 최선임, 네가 뭔데 내 인생을 안타까워하니?' 목까지 올라온 이 말을 꺼내려는데


"과장님, 그럼 제가 소개팅 시켜드릴까요?"


고객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한 질문이었다. 이럴 때 보면 무례해도 경우는 있는 친구 같았다.


"소개팅이요?"

"네. 오늘 저한테 비밀 하나 털어놓으셨잖아요."


최선임이 웃었다.


"보답으로 소개팅 하나 물어올게요~"

"좋죠.."


대답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과장님 사진 한 장 저한테 보내주세요. 잘 나온 걸로."

"아, 네..."

"혹시 이상형은..?"

"무슨 이상형... 여자면 됩니다. 귀여우면 더 좋고요. 아이유 같은?"

"하하하, 과장님 아이유 좋아하시는구나. 알겠어요~"


최선임이 바로 핸드폰을 들었다.


"제가 한번 친구들한테 싹 다 연락 돌려볼게요~"


방금까지 더러웠던 기분이 순식간에 맑아졌다. 그래, 굳이 돈까지 내면서 연애할 필요는 없잖아. 마당발 최선임이 바로 나의 담당 매니저다 이거야. 심지어 꽁짜!


고객의 자존심이나 긁어대는 결정사따윈 다시 얼씬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해 본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고 연락은 없었다.


소개팅 잘 알아보고 계시죠? 매일 메신저 창을 열었다 닫았다 반복했다. 일곱 번쯤 망설이던 끝에 결국 메세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선임님, 잘 지내시죠?"


잘 지내고말고. 최선임 목소리가 오피스 저 끝까지 들려온다.


"네 과장님~ 무슨 일이세요?"


... 싸하다.


"저번에 말씀하셨던 소개팅.. 혹시 어떻게 되고 있나 해서요."


상대방이 메세지를 입력 중이다.

"아 과장님~ 안 그래도 연락드리려고 했었는데요. 제가 한 명 물어왔었는데 글쎄 그 친구가 다음 주부터 장기출장을 간다고 해서요. 더 알아보고 있는데 쉽지가 않네요ㅠㅠ."


정훈은 한동안 화면을 바라봤다. 그리고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결정사 실장이 떠올랐다. 이어서 통장 잔고를 확인한다.


3백만원..

모쏠인 나도 연애할 수 있다면 그리 큰 금액이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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