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Y대출신 신입 마케터 주영(1)
청첩장 가장 아래에 적혀있던 문구에 주영의 시선이 꽂혔다.
의외였다.
외모도 옷차림도 수수하던 애가 초호화 웨딩의 끝판왕, 신라호텔 결혼이라니.
“그렇게 됐어. 오실 손님들이 많아서.“
“남편이 사업이라도 하셔?“
“사업까진 거창하고.. 얼마 전에 동료들이랑 개원을 해서 초대할 사람이 많나봐.”
하긴 의사집안 따님이 의사 남편 만난 게 뭐 그리 이상한 일이라고.
대학교를 졸업할 즈음 알았다.
‘강남 8학군 출신’이 ‘Y대 출신’보다 더 강력한 스펙이라는 것을. 게다가 나의 스펙보다 부모님의 스펙이 몸값을 더 빠르게 올릴 수 있다는 것을.
위인들은 스스로 성공하는 길을 택하라고 한다. 하지만 눈앞에서 이름도 생소한 대학을 나온 동창이 화려하게 취집을 하는 걸 보자니..
거저 하는 출세가 더 탐이 난다.
청모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제는 남친과 결판을 내야 할 때가 왔다. 우리가 결혼을 할지, 아니면 각자의 길을 갈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결혼자금이 얼마나 있는지, 부모님 지원은 어디까지 가능할지.
이제는 감춰왔던 속내를 꺼낼 때가 왔다. 사랑에도 때론 계산기가 필요하다. 우리의 더 깊은 사랑과 미래를 위해서!
“신라호텔? 부잔가보네 친구가.“
“걔도 의사집안이고 남편도 그러니. 서로 수준이 맞았나 봐.”
“그렇구나.“
남얘기하듯 거드는 남친이 영 맘에 안 든다. 하긴, 남얘기가 맞긴 하다.
“오빠는 어디서 결혼하고 싶어? 홀 아니면 호텔?“
“글쎄. 갑자기 왜?”
‘갑자기’라는 단어가 쎄하게 들렸지만.. 일단 본론으로 들어가 본다.
“그야, 만약에 우리가 결혼을 한다면 취향이 맞으면 좋으니까.“
“아... 뭐 난 상관 없는데.”
“그렇구나. 우리 부모님은 웨딩홀 결혼식은 가기도 전에 싫어하시더라고. 정신 없다고.“
“난 뷔페가 뽕 뽑는 것 같고 더 좋던데.“
하여튼.. 누가 공대생 아니랄까 봐 가성비 엄청 따져댄다. 긴장한 마음을 소주로 잠시 달랜 뒤 총알을 장전해 본다. 그래.. 지금이다.
“오빠는 나랑 결혼하고 싶어?“
용기 있는 말투와는 달리 주영의 눈은 여전히 소주잔을 향해 있었다. 말은 세게 던졌지만, 주영이는 사실 자존심만 쎈 여자였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저 결혼 얘기를 꺼낸 건.. 그만큼 불안해서였다. 서른의 청첩장은 축하와 함께 설명하기 어려운 조바심까지 동봉해 오는 것 같다.
갑자기 둘 사이 벼락이 떨어졌다. 벼락 앞에서 총알은 그저 작은 구슬이 되어 깨져버렸다.
“왜?”
“당장 결혼자금도 충분하지 않고.. 부모님도 형부터 결혼하는 게 순서에 맞다고 생각하고 계셔. 내가 먼저 한다고 하면 말리진 않겠지만 나도 딱히 거스르고 싶지 않고. 아, 무엇보다 진급부터 하고 결혼 생각하고 싶어. 일도 바쁘고.. 다른데 신경 쓰고 싶지가 않다.“
주절주절....
주영은 알고 있었다.
저 긴 답장이 말하고 있는 건 결국 하나였다.
이 이상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그간 스쳐 지나갔던 X들이 떠오른다. 2년간 만났던 같은 과 선배, 1년 동안 썸만 타던 의대생, 100일도 안되어 헤어졌던 변호사 오빠.
마음의 크기나 만난 기간과는 별개로, 주영은 항상 그들과 결혼까지 생각했었다. 그녀에게 연애의 목적은 오로지 결혼이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녀만의 연애상대 커트라인이 있었다.
이런 계산적인 연애방식은 아무래도 엄마의 영향인 것 같다. 남자와는 함부로 손도 잡지 말라던 엄마는, 결혼적령기가 되니 데려오는 남자 하나 없다며 한숨을 쉬어 댄다.
이 동네 엄마들은 다 이렇다.
딸이 연애한다고 하면 불을 켜고 반대하면서 제때 조건 좋은 남자랑 결혼하기를 바란다. 연애를 잘하는 사람이 결혼도 잘하는 것이거늘. 이 당연한 이치를 부정한다.
엄마에게 배운바로,
‘사랑’은 결코 결혼의 필요조건이 아니었다. 결혼에 있어서 있으면 좋고 없어도 괜찮은 그런 하나의 요소일 뿐이었다.
그래서일까? 주영은 서른이 넘은 아직도 사랑이 낯설다. 첫사랑에 대한 영화를 봐도 눈물 한 방울 나지 않는다. 나보다 더 사랑하는 목숨 같은 사람이 있다니. 자식에게나 가질만한 감정을 타인에게 느낀다는 게 낯간지럽다.
그래도 사랑하니까 결혼하고 싶은 것 아니겠는가?
여하튼 주영은 억울했다.
‘그토록 결혼을 원하는데 모든 상대들이 나와는 결혼하고 싶지 않다니’. 하지만 억울해할 시간이 없다. 이제 곧 서른하나, 정신 차리면 서른 중반을 향해간다. 그럼 여자의 결혼 시장 가치는 빠르게 떨어진다.
결혼하지 않겠다는 남친은 빠빠이 하고 적어도 내년까지 신랑감을 찾아야만 한다.
“주영씨는 어떤 사람 만나고 싶어?”
대놓고 말하기 민망하여 빙빙 돌려 이렇게 말한다.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온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사랑 많이 받고 다정하고.. 무엇보다 존경할만한 남자요.”
여자어 번역기로 해석해 보자면
“시댁이 우리 집안보다 재산은 많았으면 해요. 적어도 1억 정도는. 직업은 전문직이면 좋고, 집안일도 함께 분담할 수 있는 남자요.“
그래도 주영 자신은 이런 여자들과는 다르다고 믿고 있었다. 무조건 의사, 판사와 같은 전문직을 바라진 않았다. 다만 진짜로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남자.
얼마나 쉬운가?
게다가 주영 자신도 SKY 출신에 연봉도 1억 언저리이다. 상당히 양심적이고 현실적인 조건 아니겠는가? 이 정도면 상향혼이라 보기에도 애매하다.
부디 다음 남자는 미래 남편이길 바라며...
주영이는 초초함을 숨긴 채 소개팅 제안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