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글쓰기] 아웃풋이 최고의 인풋이다.

글쓰기

by오 영택

2-3. 아웃풋이 최고의 인풋이다.


10년 넘게 여러 독서모임과 스터디 모임을 운영해왔습니다. 동시에 교회에서는 12년간 매주 모임을 이끌고 교육방향을 기획하고 가르치는 역할을 수행해왔습니다. 잘 알려주는 것이 리더의 바카라무라는 생각에 별도로 공부도 했습니다. “배워서 남주자”는 모토로 자신의 시간을 쪼개어 가르쳐주는 형누나들의 모습을 따라 말이죠.


좋지만 잘못된 만남이었습니다. 덕분에 이 고생길을 걷고 있으니까요. 이렇게 쓰고, 가르치고, 또 공부하는 삶을 살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리더로 오랜 시간 앞서 공부하고 가르치며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교만한 마음이란 것도 잘 알지만,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생각이었습니다. “왜 매번 까먹을까?” “몇 년을 배웠는데”라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이런 염증과 회의를 몇 년 거치면서 문득 깨달은 사실이 있습니다. 교육학에서 말하는 '학습 피라미드(Learning Pyramid)'라는 개념이 떠올랐습니다. 미국 국립훈련연구소(NTL)의 연구에 따르면, “학습 방법에 따라 기억하는 비율이 크게 달라진다”는 게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그 비율은 다음과 같습니다.


강의 듣기 5%
읽기 10%
시청각 자료 시청 20%
시범 관찰 30%
토론 50%
실습 75%
가르치기 90%


가르치는 것이 가장 높은 학습 효과를 낸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뿐 아니라, 가르치기 위해서는 반복해서 바카라과 자료들을 찾아 읽었습니다. 같은 내용을 여러 번 접하니 자연스럽게 기억에 오래 남았던 것이었습니다. 또한 이론과 경험을 엮으니 지식이 더욱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가르쳐야 하는 내용에 대한 구조를 꿰고 있는 만큼, 어느 지점에서 설명을 하더라도 연결지어 알려주는 것에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능동적 학습의 강력함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수동적으로 듣기만 하는 자세에서 벗어나, 가르치기 위해 스스로 찾아 공부하는 주도성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가르치기 위해서는 한 가지가 더 필요했는데요. 바로 '설명하는 능력'이었습니다.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어도,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 설명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습니다. 막상 말로 전달하려니 뒤죽박죽이 되곤 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핵심 내용을 정리하고, 예시를 찾아 정리하여 강의안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예상외로 많은 시간이 소요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복잡한 개념을 단순하게 풀어쓰고, 추상적인 이론을 친근한 사례로 설명하는 작업이었습니다. 머릿속에서 배회하던 개념들이 한 곳에 정렬되어 갔습니다.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모양을 갖춰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강의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큰 소득은 진짜로 이해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직시할 수 있었습니다. 막연하게 “안다”고 생각했던 내용을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분명해진 것이죠.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을 안다”


'무지(無知)의 지(知)'라고도 합니다. “진정한 앎의 시작은 모르는 것을 인식하는 단계에서 비롯된다”는 의미입니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도 비슷한 얘기를 했습니다. “무언가를 진정으로 이해했는지 알고 싶다면,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보라”


하지만, 여기에서 구체적으로 더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네요.


“진정으로 이해했는지 알고 싶다면, 글로 써보라.”


말로 설명할 때는 얼버무릴 수 있습니다. 표정과 제스처로 보완할 수 있고, 상대의 반응을 보며 즉석에서 수정할 수도 있습니다. “그거 아시죠?”, “예를 들면 뭐.. 이런 거요”라며 넘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글은 냉정합니다. 글은 그 자체로 완결되어야 합니다. 모호함은 드러나고, 논리의 비약은 명백해집니다.


그렇기에 강의안을 쓰고, 핵심을 요약하는 과정은 단순히 잘 가르치고,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준비가 아니었습니다. 스스로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의 연속이었고, 동시에 더 깊이 배우는 과정이었습니다. 쓰면서 배웠고, 배운 것을 다시 글로 옮기면서요.


더 흥미로운 점은, 한번 핵심 내용을 글로 정립하니 확장이 용이했다는 것입니다. 기본 골격이 확고하게 서 있으니, 거기에 새로운 사례를 덧붙이거나, 다른 관점을 추가하고, 심화 내용을 넣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튼튼한 나무에 가지가 뻗어나가듯, 핵심이 명확하니 주변 내용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마인드 맵을 그릴 때처럼, 중심 개념에서 가지가 뻗어나가는 것처럼 말이죠.


예를 들어, 어떤 주제에 관해 정리했을 때는 단순한 키워드의 나열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글로 옮기면서 문장으로 연결되니 논리가 갖춰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A4 용지 한 두장의 분량으로 정리했습니다. 하지만 강의를 거듭하고, 질문에 답하고, 다시 쓰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내용은 점점 풍성해졌습니다. 새로운 관점, 보완 자료, 경험 속 사례들이 더해진 결과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웃풋의 힘입니다. 쓰는 것 자체가 학습이었고, 그 결과물은 더 나은 학습의 토대가 되니까요. 가르치기 위해 써내려간 내용이 저를 가르쳤고, 그렇게 배운 것을 다시 글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더 명확하고 이해하기 쉬워지는 선순환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글쓰기는 기술이자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술로서의 글쓰기는 '사고의 도구'입니다.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 흩어진 개념을 모으고, 모호한 이해를 명확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을 쓰는' 행위니까요. 머릿속에서 술래잡기 하던 개념들이 문장으로 고정되는 순간, 그것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글쓰기는 성찰의 수단이기도 합니다. “왜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을까?”, “그때 판단이 옳았을까?”, “놓친 것은 없을까?”를 글을 쓰는 과정에서 자문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을 쓰면서 '자신과 대화'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대화 속에서 자신을 좀 더 알아가게 되니까요. 머릿속에 맴도는 모호한 생각들을 명료한 언어로 변환하면서, 사고가 명확해지고 정교해집니다.


그리고 예술로서의 글쓰기는 고유한 목소리를 담고 있습니다. 같은 주제를 다루어도 사람마다 쓰는 방식이 다릅니다. 어떤 단어를 선택하는지, 어떤 예시를 차용하는지, 어떤 순서로 글을 전개하는지에서 그 사람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배어납니다. 문체 속에서 그 사람을 엿볼 수 있는 것이죠.


누군가의 글을 읽다 보면, 그 사람을 알게 됩니다.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어떤 경험을 해왔는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글에 반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직접 만나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글을 통해 그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글쓰기는 생각의 주체인 자신을 알아가는 좋은 방법 중 하나입니다.


저 역시 강의안을 쓰고, 단상(斷想)들을 쓰면서 자신을 알아갈 수 있었습니다. 어떤 표현에 더 끌리는지 알게 되었고, 강조하는 내용에서 가치관의 반영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요. 글을 쓰면서 저만의 목소리를 갖추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웃풋이 최고의 인풋”이라는 의미입니다. 글쓰기를 통해서든, 가르치는 활동을 통해서든, 설명하는 과정에서든 이 모든 아웃풋의 행위는 단순히 무언가를 밖으로 쏟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글을 쓰면서 배우고, 이해가 깊어지고, 지적 성장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읽어도 기억에 남지 않던 씁쓸한 경험이, 글을 쓰는 순간 온전히 내 것으로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아무리 백 권 넘게 바카라을 읽었을지라도 정리하지 않으면, '아는 것 같은' 느낌으로만 존재합니다. 실제로 알고 있을지라도 말이죠. 하지만 한 권을 읽고 그것을 글로 정리하면, 그것은 '느낌'이 아닌, 결과물로서 '실체'가 됩니다.


꼭 강의안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짧은 메모도, 블로그 글도, SNS 게시글도 모두 아웃풋의 일종입니다. 중요한 것은 머릿속에 있는 것을 밖으로 꺼내는 활동입니다. 저도 이런 과정을 거쳐왔습니다. 이렇게 꾸준히 쓰다 보니,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강사분들이 아무런 준비 없이 술술 지식을 전달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신기하면서도 멋져 보였습니다. 하지만 가르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당연한 모습일 수밖에 없구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의 노고를 무시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매번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얼마나 떨리는 일인지, 저도 알고 있으니까요.


그저, 끊임없이 정리하고 다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되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타고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이죠.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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