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이 바카라을 읽고 계시다면,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질문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글쓰기의 어느 순간이 가장 힘드신가요?
첫 문장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한참 고심할 때인가요? 혹은 무엇을 써야 할지 떠오르지 않을 때인가요? 아니면, 쓰고 있는 글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인가요?
사실, 글쓰는 입장에서는 하나하나 모두 힘든 순간일 것입니다. 글이 한참 써지지 않아, 깜빡이는 마우스 커서를 바라만 봐야 할 때면 짜증이 올라오기도 하고 예민해지기도 합니다.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본다고 한들, 뾰족한 수가 나오는 것도 아닌데 괜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또한 무엇을 써야 할지 자신 없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주제로 글을 쓰는 게 맞을까?”, “누가 이 주제에 관심을 가질까?”라는 자기검열의 질문들에 의기소침해집니다.
이런 어려움들보다 더 힘든 순간이 있는데요. 바로, “글을 써야 하는데”라고 며칠부터 몇 개월을 생각만 하고 있는 자신을 인지하는 순간입니다. “그래! 오늘은 글을 쓰자”하고 자리를 잡으면 되는데, 그것조차 하지 않으니까요.
이런 점에서, 글쓰기는 마치 운동과 닮았다고 느껴지곤 합니다. “하면 좋다”는 것을 알고, 막상 시작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몰입할 것을 앎에도 미룬다는 점에서요. 권투를 3년 했던 경험을 떠올려보면, 가장 힘든 순간은 체육관으로 가기 전인 것 같습니다. “오늘은 피곤해”, “내일은 가자”라며 미루는 것이죠. 운동을 하고 나면, 몸이 개운하고, “오늘도 해냈다”는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는 자신을 경험적으로 앎에도 실행에 옮기지 않는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번 미루기 시작하니, 순식간에 몇 개월이 지나 있습니다. 이렇게 미루다 보면, 글쓰기 자체가 어색하게 다가올 때도 있습니다. 왜 이렇게 글쓰기를 미루게 될까요? 역설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운동을 하면 몇 시간을 투입해야 하고, 운동하는 동안은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미루게 되듯 말이죠. 고된 작업이라는 것을,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경험적으로 알고 있으니까요.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걸까요?
마음의 기저에 '완벽주의'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완벽한 첫 문장', '완벽한 구조', '완벽한 논리'를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훌륭한 글이 나와야 한다고 믿는 것이죠. 하지만 이것은 환상입니다. 어떤 작가도 처음부터 완벽한 글을 쓸 수 없습니다. '일필휘지(一筆揮之)'하고 싶은 바람은 있을지라도 말이죠.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노인과 바다》를 200번 이상의 퇴고를 거쳐 완성했다고 합니다. 즉, 처음부터 만족할 만한 글을 쓰는 것은 욕심에 가깝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완벽주의는 시작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주저하게 만듭니다. “완벽하지 않으면 쓰지 말자”는 생각이 '아예 쓰지 않는'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죠. 백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서툰 초고를 마주하는 것보다 덜 불편한 게 사실이니까요. “써야 하는데”라는 죄바카라감은 있지만, 쓰지 않으면 그 불편함조차 피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불편함을 피하려다가 더 큰 불편함을 만나게 됩니다. 몇 개월을 미루고 있는 자신을 반복해서 깨닫는 순간 말이죠. “가만히 있으면 반 이상은 간다”는 말은 글쓰기에서만큼은 정반대입니다. 오히려 이렇게 변형됩니다.
“가만히 있으면 반 이상은 글쓰기를 포기한다”
이번 장의 제목처럼, 글쓰기에서는 정말 시작이 '반'입니다.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릅니다. 뇌는 미완성 상태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한 문장을 쓰면 다음 문장을 채우고 싶어하고, 어색한 표현을 발견하면 다듬고 싶어합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 관련된 기억이 떠오르고, 생각의 연결고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글쓰기는 말 그대로 일단 쓰는 게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절대 시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절대 시간'이란,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말합니다. 핸드폰 알림도 없는 고요함, 누군가 말을 걸어오지 않는 조용함, 다른 일을 생각하지 않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만큼은 오직 글쓰기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시간이 없어서 못 쓴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시간이 없다기보다는 '절대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글쓰기는 집중을 요구합니다. 생각을 모으고, 문장을 만들고, 흐름을 이어가려면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을 표현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더딜 수밖에 없습니다. 머릿속으로 “이렇게 글을 쓰면 되겠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생각이 고스란히 글로 표현되는 것은 아닙니다. 적합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고심하는 시간을 수반하게 되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자괴감이 들거나 포기하고 싶어질 것입니다. 그렇기에 시간 확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좌절 속에서도 글을 쓰기 위해 고심하는 시간까지 감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절대 시간을 확보하는 방법, 이미 알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일정에 글쓰기 시간을 먼저 할당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나면 쓰지”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또한 완벽한 환경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지하철에서도, 점심시간에도, 잠들기 전에도 쓸 수 있습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틈틈이 쓴 글은 '구슬을 모으는' 과정입니다. 글의 조각들을 아름아름 모으는 것입니다. 이렇게 쓴 글들은 소중합니다. 생각과 경험, 감정이나 관점 등이 투영되어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꿰는 작업'은 무엇일까요? 흩어진 구슬들을 하나의 실로 엮어 목걸이를 만드는 것처럼, 여기저기 쓴 글들을 하나의 주제로 엮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과정이 단순히 문장을 이어붙이는 작업은 아닙니다. 오히려 흩어진 생각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과정입니다. 같은 맥락임을 인지하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이런 깨달음들이 글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기억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바로, '판단을 유보'하는 일입니다. “이 문장은 별로야”, “이건 쓸모없어”라고 성급하게 결론 내리지 않는 것입니다. 얼핏 보기에 어색하거나 맥락 없어 보이는 문장도, 다른 문장이나 개념과의 조합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꿰는 작업은 새로운 글쓰기의 시작점이 되기도 합니다. 조각들을 연결하다 보면 빈틈이 보일 것입니다. 만족스럽지 않음을 느끼는 부분인 셈이죠. “자연스럽게 연결하려면 이 내용이 필요하겠네”, “이 주장을 뒷받침할 예시가 하나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때 그 부분을 채워 넣으면 됩니다. 관련 내용이나 사례를 찾아보고, 새로운 문장을 쓰는 것이죠.
이렇게 모으고 꿰고 다듬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한 편의 글이 완성되어 있습니다. 처음부터 완벽한 글을 쓰려 했다면 마주하지 못했을 그 글이, 조각조각 모아 엮으니 한 편의 글로 탄생한 것입니다.
그런데 글쓰기의 가치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완성된 글 한 편을 갖게 되는 것도 소중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쓰는 과정 자체에 있습니다.
왜 글을 써야 할까요?
단지 한 편의 글을 완성하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습니다. 하지만 글쓰기의 진짜 힘은, 쓰는 과정에서 우리가 배우고 성장한다는 데 있습니다. 글을 쓰면서 막연했던 생각이 명확해지고, 흩어졌던 지식이 연결되며, 새로운 통찰이 떠오릅니다.
또한 쓰기 전에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그저 그런 일이었음을 깨닫기도 합니다. 반대로, 별것 아니라고 여겼던 경험이 글로 쓰면서 의미 있는 사건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의미가 부여되고, 우선순위가 재배치되는 것이죠.
이처럼, 우선 글을 쓰기 시작하면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글을 쓴 만큼 남는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완성된 결과물이 남고, 쓰는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 언제든 사용할 수 있도록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