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독서가 '생각 얻기'라면, 글쓰기는 '생각 쓰기'입니다. 생각을 글로 옮기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생각을 쓴다'는 말이 이상하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보통 '글을 쓴다'고 하지, '생각을 쓴다'고 표현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종이나 화면에 문자를 나열할 때, 실제로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바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표현하고 순간의 마음을 표출하는 것입니다. 글로 생각과 마음을 잠잠히 적어보기도 하고, 때로는 혼란스러운 마음이나 답답함을 여러 키보드를 마구잡이로 누르면서 표출하듯이 말이죠. 이렇게 표현하고, 표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생각과 마음이라는 것은 형체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
형체가 없기에 글로 쓰거나 여러 형태로 표출하는 행동은 묘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묘사 방법들 중 하나가 바로 글쓰기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묘사'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화가가 풍경을 그릴 때 모든 나뭇잎을 다 그릴 수 없듯이, 우리 역시 머릿속 생각을 있는 그대로 옮길 수 없습니다. 생각과 마음은 사진처럼 찍어낼 수 없습니다. 완벽한 재현은 불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여러 생각과 마음이 떠오릅니다. “이렇게 쓰는 게 맞을까?”, “반례도 존재하지 않을까?”, “아닌 경우도 존재할 수도 있지 않아?”와 같이 말이죠. 이처럼 머릿속에서는 동시에 수십 가지 생각이 떠다닐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생각과 마음을 옮기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되기 십상입니다.
물론, 자신의 마음 상태나 혼란스러운 상황을 묘사하거나 생각을 발견하는 데에는 유용합니다. 하지만 글쓰기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글쓰기는 생각을 구조화하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흩어진 생각들을 정리하고, 순서를 부여하며, 하나의 흐름으로 만드는 것이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선택하게 됩니다. 어떤 생각을 먼저 쓸지, 어떤 것은 뒤로 미룰지, 어떤 것은 아예 쓰지 않을지 결정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이렇게 쓰는 게 맞을까?”라는 의심을 글로 포함할 수도 있고, 자신감 있게 단정적으로 쓸 수도 있습니다. 또한 어떤 단어로 표현할지, 어느 정도 묘사할지, 어떻게 다음 내용으로 이어나갈지 등을 결정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순서로 배열할지도 결정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생각의 변형이 일어납니다. 무질서한 생각에 질서를 부여하고, 반복적인 생각의 흐름을 기준점으로 삼기도 하고,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구분하면서 생각은 새로운 형태를 갖추게 됩니다.
예를 들어, 막연하게 “뭔가 불편하다”고 느꼈던 감정은 문장으로 이렇게 표현될 수 있습니다. “이 회의 방식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가 될 수도 있고, “내 의견이 무시당하는 것 같아 속상하다”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같은 느낌에서 시작했지만,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내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자는 문제의 원인을 외부(회의 방식)에서 찾는 것이고, 후자는 내면의 감정(속상함)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글쓰기, 다시 말해 '생각 쓰기'는 왜 해야 하는 걸까요? 그것은 바로 생각의 주체가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생각은 바람과 같습니다. 어디에서 불어와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고 바람의 방향을 짐작할 수 있지만 이는 단편적인 포착에 불과합니다.
생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생각들 중 어떤 것이 중요하고 어떤 것이 사소한지, 어떤 생각이 진짜 내 생각이고 어떤 것이 그저 지나가는 잡념인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을 포착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전체 생각의 흐름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그리고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글쓰기는 이 보이지 않는 생각을 가시화하는 작업입니다. 흔들리는 나뭇잎을 관찰하고 기록하듯,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을 포착하여 고정시키는 것이 글쓰기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생각의 방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생각의 주체가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신의 생각을 명확히 아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느낌과 감정이 생각처럼 다가오고, 타인의 의견이 내 생각인 것처럼 느껴지며, 순간의 충동이 확고한 신념처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글로 쓰지 않으면 이 모든 것이 뒤섞여 혼란스러울 뿐입니다. 하지만 글로 쓰는 순간, 생각은 명확해집니다. 이에 대해,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생각은 행동을 통해 알 수 있지 않나요?
굳이 글로 쓸 필요가 있나요?”
실제로 우리는 “행동이 생각을 대변한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알 수 있듯, 행동을 보면 그 사람의 생각과 존재됨을 알 수 있다고 말이죠. 하지만 이는 절반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행동은 생각의 결과일 뿐, 그 과정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회의에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면,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을까요? 동의하기에 말할 필요를 못 느꼈을 수도 있고, 반대하지만 말하기 두려웠을 수도 있으며, 관심 자체가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같은 행동이지만 내면의 동기는 알 수 없습니다. 단지, 행동을 보고 추측과 해석만 난무할 뿐이지요.
잊지 말아야 할 점은 '행동은 이미 일어난 일'이라는 데 있습니다. 돌이킬 수도 없고, 수정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행동의 결과에 반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글쓰기는 행동하기 전에 생각과 마음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생각하지?”, “이 선택이 정말 옳은 걸까?”, “다른 가능성은 없을까?”를 쓰면서 스스로에게 물을 수 있습니다. 자신과의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쓰고, 지우고, 다시 쓰면서 생각을 다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글쓰기는 생각의 단계에서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줍니다. 행동하기 전에도, 행동한 후에도 말이지요.
우리는 이것을 '성찰'이라고 합니다. 글을 쓰면서 “왜 그때 그렇게 행동했을까?”, “그 선택이 정말 최선이었을까?”, “다음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돌아봅니다. 행동으로 드러나기 전의 생각을 점검하고, 이미 지나간 일에서 교훈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자 나아가기 위한 애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찰하며 쓴 글에는 흥미로운 특징이 있습니다. '의견'과 '주장'이 함께 담겨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모든 글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의견과 주장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의견과 주장은 비슷해 보이지만 차이가 있습니다. 의견은 “이 영화가 좋다”, “이 정바카라에는 문제가 있다”처럼 자신의 관점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반면, 주장은 “이 영화가 좋다. 왜냐하면 탄탄한 스토리와 뛰어난 연기, 인상적인 촬영 기법이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처럼 생각을 뒷받침할 근거를 함께 제시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글쓰기를 어렵게 만드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둘을 명확히 구별해야 한다는 부담일 것입니다. “근거가 없으면 의견일 뿐이다”, “주장하려면 제대로 된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글쓰기를 망설이게 됩니다. 혹시라도 근거가 부족하면 어쩌나, 논리가 빈약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흥미롭게도, 의견과 주장을 완전히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자신의 경험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주장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자신의 느낌과 생각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사실이니까요. “나는 이렇게 느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는 그 자체로 하나의 주장이 되는 것입니다. 철학자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고 느낀다는 사실 자체는 의심할 수 없다”는 의미니까요.
그렇다면 모든 의견이 주장이 되는 걸까요? 적어도 자신의 내면에 대해서는 그렇습니다. “나는 이렇게 느꼈다”는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진술입니다. 다른 사람은 직접 경험할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외부 세계에 대해 묘사할 때는 다릅니다. 의견과 주장의 구분이 중요해집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멈춰 섭니다. “제대로 된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이렇게 써도 될까?”라는 걱정이 앞서는 것이죠. 완벽한 글을 쓰려는 욕심이 시작을 가로막는 것입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건, 일단 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글을 쓰면서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답해나가다 보면, 막연했던 생각이 구체화됩니다. 막연했던 느낌이 명확한 이유로 바뀌는 것이죠. 완벽한 논증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우선은 자신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결국 '생각 쓰기'는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입니다. 내가 무엇을 느끼고, 왜 그렇게 생각하며,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발견해나가는 것이죠. 그리고 이 여정은 첫 문장을 쓰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니 “완벽하게 써야 한다”는 부담보다는 “쓰면서 완성시켜 나가자”는 마음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문장이 만족스럽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써 내려가며 수정하면 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