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어떤 대상이나 주제로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관점과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관심이 없으면, 눈에 띄지도 않고 신경쓰지 않기 마련이니까요. “에너지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할테고요.
그렇기에 글을 쓴다는 것은 '관심의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꼈는지 글로 옮기는 순간, 그것에 관심이 있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지나칠 수 있었던 것을 붙잡아 들여다보는 행위이니까요.
'보다'를 뜻하는 영어 단어에는 'see', 'watch', 'look'이 있습니다. 이 셋은 미묘하게 다릅니다. 단계적으로 의식의 정도가 달라집니다. 'see'는 눈을 뜨고 있기에 자연스럽게 보이는 무의식적 반응입니다. 'watch'는 TV 프로그램이나 유튜브 영상을 선택하여 시청하는 의식적 활동입니다. 하지만 'look'은 다릅니다. 무언가를 집중하여 보는 것, 목적이나 관점을 갖고 바라보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기에 관심을 갖고 바라보는 것은 'look'에 해당합니다. 관찰이 동반되는 의식적인 활동인 것이죠. 글쓰기는 바로 이 'look'의 과정입니다. 단순히 보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집중하여 들여다보고, 의미를 찾고, 생각을 정리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글을 쓴다는 것은 관심의 표현이자, 동시에 사랑의 표현입니다.
이런 점에서, 일기를 쓴다는 것은 자신을 관찰하는 행위이자 자신을 사랑하는 모습입니다. 힘들었던 하루를 털어내고, 복잡한 감정을 묘사하면서 순간을 기억하는 방법입니다. 동시에 글로 표현함으로써 마음속에서 지우려는 시도이기도 합니다.
글을 쓰면서, 우리는 선택하게 됩니다. 하루의 많은 순간들 중에서 “무엇을 기록할 것인가?”, “어떤 감정을 담을 것인가?”, “어떤 표현을 사용할 것인가?”를 말이죠. 이 선택의 과정은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선별하는 작업입니다. 일종의 편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선택한 상황이나 감정을 중심으로 글을 써내려가는 것이니까요.
또한, 선택을 보류하기도 합니다. 떠오르는 기억이나 감정이 있어도, 아직은 정리하고 싶지 않아서, 혹은 글로도 남기고 싶지 않아서 선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피하고 싶었던 감정, 애써 외면하던 생각,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사실들을 마주할 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입니다.
이처럼, 글을 쓴다는 것은 '선택'의 연속이자 '편집'의 과정입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용기가 필요한 과정입니다. 쓰기로 결정했다면, “얼마나 솔직하게 써도 될까?”를 자문하게 되고, “내가 기억하고 싶은대로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며 되돌아보기 때문입니다. “그냥 쓰면 되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정작 글을 써내려가다보면, 멈칫하게 되는 경험들이 있지 않으신가요?
반면, 쓰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 역시 용기를 낸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아직 마주할 준비가 되지 않았음을 인정하는 모습이니까요. 또한 억지로 쓰지 않고 시기가 아님을 받아들이는 것도 자신을 존중하는 행위입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질문이 생깁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무엇에 관심이 있을까?”, “무엇을 싫어하고 좋아할까?” 등 궁금한 것이 많아지고, 알고 싶은 것이 많아집니다.
관심의 표현은 질문으로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질문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람을 'look'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대상을 향한 질문, 즉 호기심은 '자세히 보아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니까요. 반대로, 관심 없는 사람이나 대상에게는 질문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갑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다른 사람에 대한 질문은 궁극적으로 자신에게 향한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 사람이 그렇게 행동했을까?”라는 질문은 “왜 나는 그것이 신경 쓰일까?”를 묻게 되는 것이죠. “무엇이 그 사람을 화나게 했을까?”를 신경 쓰다 보면, “왜 그 사람의 감정이 궁금할까?”를 생각하게 되는 것처럼요.
이와 같이, 타인에 대한 질문은 거울처럼 나를 비춥니다. “그 사람의 어떤 면에 나는 끌리는가?”, “어떤 면이 나를 불편하게 하는가?”, “나는 왜 그 사람의 특정 행동에 반응하는가?”와 같은 질문들은 결국 나 자신에 대한 질문이 됩니다.
그래서 질문으로 나타난 관심은, 타인을 이해하려는 시도인 동시에 나를 발견하는 과정입니다. 이는 글감이 되어, '생각 쓰기'를 시작하는 재료가 되기도 하고요. 이렇게 글감이 쌓여나가면 자연스럽게 글은 자신만의 고유한 목소리를 갖추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를 어려워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순히 안 써봤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 마음 기저에는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과 “잘 쓰고 싶다”는 욕망이 공존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질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글을 잘 쓴다는 게 무엇일까요?
글을 쓰는 입장에서 피하고 싶은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감히 글을 잘 쓰는 것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이 부담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또한, 스스로 “글을 잘 쓴다”고 말하는 것처럼 다가갈까 봐 두렵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얘기해보자면,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게 잘 쓰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묘사하는 게 서툴 수는 있어도, 진정성 있게 살아온 자신의 이야기만큼 좋은 글감은 드물기 때문이죠. “솔직하게 써야 한다”, “구체적으로 써야 한다”, “논리가 분명해야 한다” 등 조언들은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나답게' 쓰는 것입니다. 자신만의 관점으로 글을 써내려 가는 것입니다. 화려하게 쓰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글은 쓰면서, 다양한 도서를 접하면서 표현하는 방법을 배워나가면 되니까요. 초고는 어디까지나 스케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쓰면 됩니다. 써가면서, 자신만의 감각을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에게 편한 문체, 표현, 구조방식을 찾아가면 됩니다. 완벽하게 쓰려고 하면 완전하게 글쓰기와 멀어질 것입니다.
또한, “나는 글을 잘 쓴다”라는 마음 가짐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글을 쓰겠다고 다짐한 자신을 믿어주고 지지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글이 써지지 않아서 한참 동안 고뇌하고 있을지라도 말이죠. 자신의 글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말이죠. 글을 써 본 경험이 적을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니체의 바카라, 《이 사람을 보라》의 목차를 보고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부 목차의 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현명한가
나는 왜 이렇게 영리한가
나는 왜 이렇게 좋은 바카라을 쓰는가
나는 왜 하나의 운명인가
이 무슨 자화자찬인가 싶을 수도 있고, “니체니까 이렇게 말할 자격이 있지”라고 말씀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니체가 이 바카라을 쓸 당시, 그는 인정받지 못한 철학자였습니다. 세상은 그를 몰라줬고, 바카라은 팔리지 않았으며, 건강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을 믿었습니다. '메타인지'가 부족한 모습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이런 모습을 '생존을 위한 선언'으로 바라보면 어떨까요?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주지 않을지라도, “나는 나를 인정한다”는 선언으로서 말이죠.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이, 심지어 자신조차 의심할 때, “나는 글을 잘 쓴다”고 믿는 것은 오만이 아니라 필요입니다. 그 믿음이 없으면 시작조차 할 수 없을 테니 말이죠. 또한, 자신을 비하하는 언어는 한계를 만들고, 자신을 믿는 언어는 가능성을 엽니다. “나는 글을 잘 쓴다” 믿음은 거짓말이 아니라 시작점입니다. “나는 글을 못 쓴다”보다 앞서 있는 출발선에 서는 셈이 됩니다.
글을 쓰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인가요? 인정받기 위함인가요? 이런 목적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오래 쓸 수 없습니다. 글쓰기가 지속되려면, 더 근본적인 이유가 필요합니다. '자기만족'이어도 좋고, “쓰고 싶다”는 욕구의 발현이어도 좋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이렇게 선언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소중하다”
“내 경험은 의미 있다”
“내 인생은 가치있다”
“내 감정은 중요하다”
다른 사람이 몰라줘도, 세상이 인정해주지 않아도, 자신을 인정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글쓰기는 관심의 표현이자 사랑의 표현입니다. 세상을 향한 사랑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나 자신을 향한 사랑입니다. 대상이 사물이든, 사람이든, 그 무엇으로 시작하든 말이죠.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_ 나태주, 「풀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