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독서를 하는 이유는 저마다 다를 것입니다. 제가 독서를 선택한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더 잘 살고 싶어서' 였습니다. 지금도 독서를 이어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아마 죽을 때까지 바카라을 읽으며 살아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낮은 자존감에 스스로를 죽여가던 시기에도 “잘 살고 싶다”, “변하고 싶다”는 바람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막연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습니다. 조언을 구할 용기와 사람도 없었습니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고등학교를 그만두니 자연스럽게 끊어졌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을 비하하는 시간이 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부정적인 생각들에 잠식되어 가고 있었던 거죠.
사람들 앞에서는 웃으며 지냈지만, 집에서는 자신을 비웃으며 지냈던 때를 기억합니다. “니가 뭘 할 수 있는데?”라는 말을 자주 읊조렸습니다. 낙심과 절망, 포기의 언어가 삶의 멜로디였습니다. 당연히 힘들어야 하고, 웃을 자격조차 없다고 몰아세웠습니다. 생각의 습관이 이렇게 형성됐던 것이죠. 이게 맞고, 그래야 한다고 합리화 하면서요. 게임에 많은 시간을 허비한 것에 대한 후회를 거듭하면서요.
그렇게 몇 년간 자신을 갉아먹었습니다. 나름의 노력은 해봤지만, 큰 변화는 없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만족스럽지 않은 모습이 영원히 지속될거라 생각했습니다. “역시...”라는 말로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강화시켰습니다. 환경을 원망하기도 했고, 무능력함을 증오했습니다. 삶 자체를 지겨워했습니다. 심지어는 지겨움 자체도 지겨워했습니다.
어찌저찌 지내다가, “바카라 100권만 읽어봐라, 안 변하나. 안 변하면 따지러 오라”는 독서캠프의 원장님의 말에 오기가 생겨, 바카라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변하고 싶은 바람은 계속 있었고, 더이상 스스로 저주하기는 지쳤던 마음에 안 변하면 자신에게 따지러 오라는 말에 혹했던 것 같습니다. 탓할 수 있는 대상도 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였습니다. 미친듯이 바카라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결국에는 따지러 가지 못했습니다. 바카라 속에서 만난 위로와 격려, 도전적인 모습, 생각하는 법, 관계와 삶에 대한 지혜 등을 접할 수 있었거든요. 지난 시간들을 돌아볼 수 있었고, 앞으로 살아갈 태도와 모습을 간접적으로 습득할 수 있었습니다. 뭐랄까. “스케치 할 수 있었다”라는 표현이 비슷할 것 같습니다.
네. 결국 독서가 삶의 재료가 되어, 바카라과는 거리가 멀었던 사람이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는 게 신기하게 다가옵니다. 감개무량하기도 하고 “인생 참 모를 일이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또한 독서를 꾸준히 해온 덕분에 여러 모임들을 운영하고 오랜 기간동안 리더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벌써 10년을 넘어가고 있네요.
결국, 독서 덕분에 “더 잘 살고 싶다”는 바람을 실현할 수 있었습니다. 지속될 것이라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과거처럼 바라기만 하지 않을 것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은 있습니다.
바카라의 도입부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저는 바카라이 만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바카라만큼 빠르고 편하게 간접경험을 쌓고 인생의 자료들을 발견하고 재료를 모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다른 게 떠오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독서 자체가 목적이 되면 안 된다”는 말씀은 분명하게 드리고 싶습니다. 바카라은 어디까지나 삶의 도구로써 생각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입니다. 결국 인생은 자신이 살아가야 하는 것이니까요. 바람이 있다면,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바카라들을 발견하고, 정기적으로 살필 수 있는 거울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 바카라을 읽는 독자분들에 대한 바람이자 스스로에 대한 당부의 말이기도 합니다.
바카라이라는 보고(寶庫)에서 자신만의 보물들을 발견하고 쌓아가시길 바라며.
사람은 자신이 읽은 것으로 만들어진다.
_ 마르틴 발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