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탐조 활동을 즐기는 젊은 세대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새를 관찰하거나 소리만으로 종을 구별하는 활동을 탐조라고 한다.
나의 경우에는 새를 직접 관찰하기보다는 새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아파트 둘레에는 초록빛 동산이 펼쳐져 있다. 해가 떠오르기 전이면 여러 종류의 새들이 하루를 먼저 시작한다. 어떤 소리는 창문 바로 앞 나뭇가지에서 들리고, 어떤 소리는 숲 속 깊은 곳에서 바람을 타고 흘러온다. 커피 한 잔을 들고 가만히 서 있으면, 눈보다 귀가 먼저 아침을 맞는다.
새소리는 대부분 좋아하겠지만, 나에게는 조금 다른 기억도 있다. 어릴 적 내가 살던 집은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아침에 들려오는 새소리는 늦잠을 깨우는 성가신 알람이었고, 어스름이 내려앉을 무렵 숲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는 왠지 모르게 무서웠다. 산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질 때면 ‘후우욱, 후우욱’ 하고 낮게 울리는 소리가 숲을 가득 채웠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아 괜히 걸음을 재촉하며 집으로 뛰어오곤 했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였다. 탐조를 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무서운 울음소리의 주인공이 멧비둘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순간 웃음이 났다. 그렇게 겁을 먹게 만들던 소리가 고작 내 품에도 들어올 만큼 작은 새의 목소리였다니. 작은 몸에서 어떻게 그런 묵직한 울림이 나오는지 신기해서 한동안 멧비둘기의 모습과 울음소리를 번갈아 찾아보았다.
그 뒤부터는 새소리를 들을 때마다 이름을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생겼다. 아침마다 “찍, 찍, 찍” 하며 분주하게 동네를 누비던 새는 직박구리였고, 숲 속에서 맑고 고운 휘파람처럼 이어지던 노래는 되지빠귀였다. 이름을 알고 나니 같은 소리도 다르게 들렸다. 그전에는 그저 숲의 배경음이었는데, 이제는 ‘아, 직박구리가 왔네.’, ‘오늘도 되지빠귀가 먼저 노래를 시작했구나.’ 하며 반가운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숲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달라진 것은 내 귀였다. 이름을 알게 되자 소리가 들렸고, 소리가 들리자 숲은 전보다 훨씬 가까워졌다.
이제 새소리를 듣는 시간은 하루를 가장 조용하게 시작하는 나만의 취미가 되었다. 창문을 열고 귀를 기울이면 오늘도 누군가는 먼저 아침 인사를 건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