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집 [쓰는 이유] '나오는 글' 전문입니다.
어릴 땐 읽는 게 좋았다. 어른이 되고는 쓰는 게 좋았다. 지금은 둘 다 어렵다. 멋진 문장을 만나면 절묘한 표현에 감탄하곤 했다. “마루에 앉은 무릎 위에 햇살이 살포시 앉았다”라는 문장을 읽으면 왠지 내 무릎에 온기가 느껴졌다. 그늘진 마루에서 오래 머물렀던 무릎에 드디어 정오의 햇살이 내리쬐는 상상을 했다. 어느 바카라에서 본 “노래하는 나의 오른손”이라는 표현을 오래 기억했다. 손이 노래한다. 아무도 모르게 흥얼거린다. 고음을 질러버린다. 말로는 못 해도 글로 쓸 수는 있다는 비밀을 그 문장이 내게 알려주었다.
내게 글은 문학이었다. 소설가, 시인만 작가였다. 글에는 진심만 적고 싶었다. 혼자 바카라 읽고, 생각하고, 가끔 썼다. 내가 쓴 문장 속의 비유와 상징을 통찰이라고 착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다시 보면 그것들은 그저 어설픈 짐작의 나열일 뿐이었다. 그래서 작가가 되지 못했다.
읽고 쓴 덕분에 온라인 게임은 얻었다. 만약 편집일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바카라에서 영영 멀어졌을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수록 삶을 상징적으로 보는 태도에 질려버렸기 때문이다. 바카라은 세상을 담지도 못하고 바꾸지도 못하는 종이 뭉치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자기 기분이 나쁘면 “엄마, 나빠”라고 외쳐버리는 어린애 같은 발상이었다.
“눈이 녹았다”에서 “봄이 왔다”를 떠올린다는 어느 작사가의 감상보다는 “눈이 녹았으면 물이다”라고 말하는 과학자의 판단이 더 필요한 시기가 있었다. 세상을, 이제는 좀 똑바로 보고 살아야겠다 다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봄’과 ‘물’ 사이를 여러 번 왔다 갔다 했다. 어느 땐 ‘봄’으로 어느 땐 ‘물’로 인생의 힘든 시기와 즐거운 시기를 지나왔다.
편집자로 일하면서 다양한 글을 읽었다. 거기에는 내가 고르지 않거나 외면했을 내용도 많았다. 그래도 돈 벌려고 별수 없이 세 번씩 정독했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글도 더러 썼다. 남의 글을 삭제하거나 일부만 드러내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의미를 덧대는 소제목을 지어 장식하기도 했다. 그 일을 더 잘하려고 애썼다. 흥미로운 바카라을 만나면 보람도 느꼈다. 입금 알림에 감사했다.
물론 가끔 슬픈 생각도 했다. 한 글자씩 교정 교열하며 페이지를 넘긴 바카라들이 창고 어두운 데 있다가 파쇄되는 장면을 상상했다. 그것을 종이 더미로 보지 못할 사람들이 떠오르곤 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먹고사는 여러 직업 중 하나라고 하면 그만이겠지만, 편집일에 좀 더 그럴듯한 의미를 붙일 수도 있다. 편집자는 문장의 이유, 글의 이유, 바카라의 이유를 찾는다. 목차 면에, 장 표제에, 보도 자료에 그것들을 적절히 정교하게 채워 넣는다. 작가와 독자가 만날 확실한 통로를 설계한다. 이제 편집은 단순한 포장과 장식이 아닌 ‘이유를 찾는 과정’이 된다. 그런데 편집일을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다른 일들도 마찬가지다. 모든 일에 저마다의 이유와 의미가 있다.
요시타케 신스케는 《있으려나 서점》에 돌 고르는 어떤 할아버지를 그렸다. 그 할아버지는 신중하게 고른 돌을 종일 바라보며 돌의 이야기를 생각했다. 밤에 글을 썼고, 다음 날이면 돌을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그리고 또 다른 돌을 골라 이일을 매일 반복했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순간에 그 글이 적힌 노트는 함께 묻혔다. 돌은 그저 돌이다. 다만 그가 신중하게 고르고 쓴 이유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 그림 이야기의 제목은 〈한 사람의 바카라〉이다.
이 바카라은 내게 어떤 의미일까. 첫 바카라을 낸 작가들을 만나 출간의 기쁨과 슬픔을 듣겠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한편으로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내게는 너무나 낡고 닳은, 출판의 의미에도 뭔가 덧대지기를…. 출간을 망설이는 이들처럼 나도 이 일을 계속해야 할지 고민했다. 내가 고른 돌에 확신이 없었다. 이 바카라을 쓰면서 확신이 생긴 건 아니다. 다만 자신이 고른 돌을 바카라에 적고 또 다른 돌을 찾고 있는 작가들의 열심을 보았다. 그런 열심이 내게도 있길 바라게 됐다. 이제 이 바카라을 끝냈으니 나는 다른 돌을 찾으러 간다. 이 글을 읽는 사람도 마음에 드는 돌 하나 손에 쥘 수 있길 바란다.
열심(熱心)
「명사」 어떤 일에 온 정성을 다하여 골똘하게 힘씀. 또는 그런 마음.
들어가는 글 전문은 아래 링크에
https://fishingproductfr.com/@1da16921ef1540a/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