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25년째 파라파라나 추고 있다 - 16
데이브 로저스(Dave Rodgers)라는 인물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유로비트의 제왕’이다. 1980년대부터 무려 2천 곡이 넘는 유로비트의 작곡과 프로듀싱에 참여했고, 직접 노래한 곡 중에도 명곡으로 손꼽히는 곡이 여러 개 있으며, 일본 가요계에서 한 시대를 풍미한 곡들도 만들었다. 지금은 일본 최대 음반사 중 하나가 된 에이벡스, 그리고 세계 최장수 유로비트 컴필레이션인 Super Eurobeat 시리즈의 태동기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탈리아산 유로비트의 역사가 곧 데이브의 인생 전체에 반영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명은 지안카를로 파스퀴니(Giancarlo Pasquini). 1963년 이탈리아 북부의 소도시 만토바에서 태어났다. 전자음악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수많은 예명을 사용했고 데이브 로저스는 그중 가장 유명한 예명이다.
그 다음으로 잘 알려진 예명으로는 알레프(Aleph)가 있다. 원래는 1981년에 3인조 이탈로 디스코 밴드로 데뷔했을 때 이 밴드의 이름이었다. 그런데 나머지 두 멤버가 오래지 않아 탈퇴했고 알레프는 솔로 프로젝트가 됐다. 2020년대 현재에도 남미와 동유럽을 중심으로 80년대 디스코의 팬이 꽤 있는데, 그중 아직도 알레프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
데이브는 80년대 전체에 걸쳐 알레프 외에도 다양한 예명을 사용하며 수많은 이탈로 디스코 곡을 작곡하고 노래했다. 80년대 후반에는 이탈로 디스코와 하이 에너지가 서로 비슷해지면서 데이브의 음악도 하이 에너지에 가까워졌다. 당시는 하이 에너지와 유로비트가 사실상 동의어였기 때문에 이때 데이브도 자연스럽게 유로비트 뮤지션이 됐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다른 유로비트 뮤지션들과 마찬가지로 일본에 곡을 수출하는 데 집중하게 된다.
1990년에 데이브는 A Beat C라는 유로비트 레이블을 설립했다. 그리고 일본의 소규모 음반 수입상이었던 Beat Freak에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음반사를 세워라. 그러면 내 레이블에서 만든 곡을 독점 공급하겠다.’ Beat Freak의 창업자였던 마츠우라 마사토는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 이 음반사가 바로 에이벡스다.
Super Eurobeat 시리즈는 원래 8집까지 Beat Freak이 이탈리아의 음반사에 주문해서 제작한 후 일본에 수입하는 형태였다. 그러다가 에이벡스가 설립되면서 9집부터는 일본 내에서 제작되는 형태로 바뀌었다. 유로비트의 유일한 소비 시장으로 남은 일본에 에이벡스가 Super Eurobeat를 가져와서 꾸준히 투자한 것은, 시리즈 자체뿐만이 아니라 유로비트라는 장르 전체에 큰 원동력이 됐을 것이다. 그리고 데이브의 제안이 없었다면 이런 일련의 흐름도 없었을 것이다.
에이벡스는 설립 후 몇 년간 디스코텍 음악에 주력했고 그중에서도 유로비트는 핵심 장르였다. 1992년 에이벡스는 당시 떠오르는 작곡가였던 코무로 테츠야의 곡들을 영어 유로비트로 리메이크한 앨범 ‘TMN Song Meets Disco Style’을 제작한다. 데이브는 이 앨범 전곡의 리메이크 편곡을 맡았고 여러 트랙의 노래도 직접 불렀다. 이후 J-팝의 전설이 된 코무로 테츠야와 에이벡스의 첫 협업이었으며, 영어 유로비트 앨범으로서는 이례적으로 10만 장이 팔렸다.
1995년, 데이브가 작곡하고 프로듀싱한 Try Me라는 곡을 일본의 한 무명 가수가 번안한다. 이 무명 가수의 이름은 바로 아무로 나미에였다. 아무로는 데뷔할 때 3년 내로 성공하지 못하면 고향으로 돌아오겠다고 어머니에게 약속했다고 한다. 그 3년의 기한이 다가오던 시점에서 발표한 싱글이 Try Me였다. 그리고 이 싱글은 73만장이 팔리며 아무로 나미에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다. 데이브는 단순히 원곡을 제공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번안곡도 직접 편곡했다.
아무로의 다음 싱글은 마찬가지로 데이브가 작곡하고 프로듀싱한 곡을 번안한 ‘태양의 시즌’이었으며 이것도 61만장이 팔린 히트작이 된다. 인기 가수의 궤도에 오른 아무로는 처음으로 정규 앨범을 발표했다. 이 앨범은 앞의 두 싱글 외에도 데이브가 참여한 유로비트 곡들을 수록했고 186만 장이 팔렸다. 90년대 후반에 아무로 나미에는 단순한 유명인을 넘어 하나의 슬롯 현상이 되는데, 그 첫 도약에 데이브가 함께했던 것이다.
당시는 제2차 유로비트/파라파라 붐에 해당하는 시기였고, 데이브는 아무로 외의 가수들에게도 곡을 제공했다. 아무로의 댄서였다가 따로 그룹으로 데뷔하게 된 MAX는 네 번째 싱글로 'Seventies'를 번안했다. 데이브가 혼자서 작곡하고 프로듀싱한 곡이었으며, 이 곡이 수록된 정규 1집은 100만 장이 팔렸다. 쟈니스의 신인 그룹이었던 V6의 데뷔 싱글 'Music for the People'은 데이브가 프로듀싱했으며 다른 뮤지션들과 함께 작곡했다. 이 싱글은 V6가 데뷔에서 해체까지 발표한 모든 싱글 중 두 번째로 많이 팔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