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데이브 로저스가 누군데? - 2

난 25년째 파라파라나 추고 있다 - 17

by이정미

데이브 로저스는 작곡가와 프로듀서뿐만 아니라 가수로서도 재능이 뛰어나며, 데뷔 때부터 꾸준히 노래를 해 왔다. 특히 1998년 ‘이니셜 D’ 애니메이션에 유로비트가 배경음악으로 삽입되기 시작했을 때 데이브가 노래한 곡 여러 개가 선택됐다. 강렬한 음색이 이니셜 D의 레이싱 장면들과 잘 어울리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도 데이브가 노래한 곡 중 잘 알려진 곡들은 모두 이니셜 D 삽입곡이다. 대표적으로 ‘Deja Vu’와 ‘Space Boy’가 있다.


1999년 제3차 파라파라/유로비트 붐이 찾아왔을 때 데이브의 커리어도 정점을 맞이했다. 2000년 초에 Super Eurobeat 100집과 이니셜 D 사운드트랙이 일본 골드디스크를 수상했을 때는 전국에 생중계되는 시상식에서 노래를 불렀고, 2001년 초에 Super Eurobeat 110집이 다시 골드디스크를 수상했을 때는 유로비트 뮤지션들을 대표해서 트로피를 받았다. 상징성이 큰 인물일 뿐 아니라 무대에 서는 데도 익숙하고 심지어 미남형이기 때문에, 마치 유로비트를 대표하는 인물처럼 여기저기 많이 출연했다.


마찬가지로 유로비트 뮤지션이며 미인인, 데이브의 부인 도미노(Domino)가 자주 동행했다[본명은 알레산드라 미르카 가티(Alessandra Mirka Gatti)]. 두 사람의 아들도 일찌감치 음악에 소질을 보여서 몇 년 후 유로비트 뮤지션으로 데뷔하게 된다. 데이브 한 사람뿐만이 아니라 가족 전체가 유로비트를 대표한다고 할 만했다.


Dave Rodgers Domino Disney Avex.jpg2000년, 디즈니와 에이벡스가 협업해 유로비트 시리즈를 발매한 때. 아랫줄 가운데가 도미노와 데이브.


그러나 유로비트의 마지막 황금기였던 제3차 붐이 사그라들 즈음, 공교롭게도 데이브와 도미노는 별거를 거쳐 이혼하게 됐다. 개인적으로 힘든 시간을 겪던 와중에도 데이브는 유로비트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했다. 누아쥬(Nuage)와 마누엘(Manuel)을 비롯한 여러 신인을 발굴했는데, 특히 누아쥬에게 제공한 ‘Sunday’라는 곡은 제3차 붐 때의 스타일과 완전히 달라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초기 유로비트를 연상시키는 비교적 느리고 서정적인 곡이며 아직까지도 인기가 있다.


2004년 에이벡스가 제4차 붐을 선언하고 유로비트와 파라파라에 열심히 투자했을 때 가장 전면에 내세운 인물도 데이브와 누아쥬였다. 두 사람이 출연한 공연과 인터뷰 영상은 DVD에 수록되어 지금까지 남아 있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 유로비트 뮤지션들은 일본에서 크고 작은 행사에 자주 출연했지만 영상으로 기록된 것은 많지 않은데, 어쩌다 남아 있는 영상을 보면 대체로 데이브와 그 주변 뮤지션들이다.


다만 에이벡스가 인위적으로 일으킨 제4차 붐은 미지근하게 끝나 버렸고, 2000년대 중후반 유로비트에는 침체기가 찾아왔다. 이탈리아의 유로비트 레이블들은 문을 닫거나 쪼개졌다. 데이브의 레이블 A BEAT C에서도 소속 뮤지션 중 일부가 자회사의 형태로 새로운 레이블 Gogo’s Music을 세워서 반쯤 독립했다. 소수의 프로듀서가 최대한 빠르고 효율적으로 곡을 완성하던 기존의 유로비트 시스템과는 달리, 이 새 레이블에서는 곡에 참여하는 모든 뮤지션들에게 최대한의 자율성을 줬다. 유로비트에 대한 수요가 예전만큼 많지 않아서 더 이상 곡을 빨리빨리 찍어낼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으니 이런 변화도 가능했을 것이다. 데이브는 자신의 방식대로 계속 작업하는 한편으로, 독립한 뮤지션들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2010년 데이브는 기존의 레이블 A BEAT C를 정리하고, 신인 유로비트 뮤지션 푸투라(Futura)가 세운 Sun Fire로 이적했다. 이때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가 아마 데이브의 커리어뿐만이 아니라 인생에서도 가장 힘든 시기였을 것이다. 계약을 잘못하는 바람에 그동안 만든 모든 곡의 저작권을 Sun Fire 측에 빼앗겼을 뿐 아니라, 건강에 문제가 생겨 큰 수술도 받았다. 건강은 이후 회복했지만 저작권은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듯하다. 이따금씩 신곡을 내놓는 것 외에는 활동도 그다지 없었다.


2017년경 데이브는 Sun Fire를 떠나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지금까지 다시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의 유로비트 시장은 매우 작아졌지만, 인터넷 덕분에 외국 팬들은 전보다 쉽게 데이브와 소통하게 됐다. 주로 이니셜 D와 그 관련 밈을 통해 유로비트를 좋아하게 된 사람들도 새로 유입됐다. 데이브도 여기에 호응해서, 팬들의 의견을 수렴하면서 인터넷에 다양한 컨텐츠를 올리고 있다.


일본을 포함해 전 세계의 행사(주로 애니메이션 관련)에도 자주 출연하고 있으며, 심지어 한국에서도 두 번 공연했다. 옛날에 함께 일했던 여러 뮤지션들과도 다시 협업하고 있다. 신곡도 계속 만드는 한편, 저작권 문제를 우회하기 위해 자신의 곡을 리메이크해서 조금이나마 수익을 얻고 있다. 내가 작사한 ‘Deja Vu’의 한국어판도 사실 이런 우여곡절에서 나왔다.


Dave Rodgers 2025 Fuji Speedway Initial D.jpg2025년, 일본의 이니셜 D 관련 행사에서 공연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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