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25년째 파라파라나 추고 있다 - 18
2010년대 초중반의 페이스북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친구를 맺은 사람의 게시물, 친구가 반응한 게시물, 팔로우한 페이지의 게시물 정도만 깔끔하게 보여줬다. 지금처럼 알고리즘이 멋대로 고른 게시물이 무한 스크롤로 공급되는 곳이 아니었다. 그래서 자신이 선택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조금씩 시야를 넓혀 나가기에 좋았다.
당시 나도 주로 지인들과 소식을 주고받는 용도로 페이스북을 사용했다. 그 외에는 관심 있는 주제의 페이지나 좋아하는 뮤지션들의 계정을 조금 팔로우하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그때 한창 좋아하던 데이브 로저스의 계정을 찾아보게 됐다. 영어로 운영되고 그동안의 음악 커리어와 관련된 게시물이 주로 올라온다는 점에서는 다른 유명인들의 공식 계정과 비슷했지만, 관리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관리하고 있었다. 친구 신청을 해 봤더니 받아줘서 나 혼자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게시물에 영어로 댓글을 달면 가끔 데이브가 ‘좋아요’를 눌러 주거나 댓글을 달아 줬고, 그때도 나 혼자 좋아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나는 다른 유로비트 뮤지션들과도 한 명 한 명 페이스북 친구가 되기 시작했다. 데이브 바로 다음으로 친구가 된 사람은 작곡가 겸 프로듀서, 브랫 싱클레어(본명은 안드레아 레오나르디)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Night of Fire’라는 곡으로 특히 유명하고, 그 외에도 아무로 나미에에게 제공한 곡을 포함해서 수많은 히트곡이 있다.
심지어 나를 포함한 팬들에게 먼저 친구 신청을 해 주는 뮤지션들도 있었다. 데이브의 전처이자 여러 유로비트 히트곡에 참여한 도미노, ‘Heartbeat’의 작곡가 조르다노 포글리아, ‘Gas Gas Gas’를 작곡하고 노래한 (슬프게도 지금은 고인이 된) 마누엘 등이었다. 내가 예전부터 좋아하던 음악을 만든 사람들과 직접 교류할 수 있다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 경험해 보는 즐거움이었다.
페이스북에서 활동하는 유로비트 뮤지션들은 대체로 소탈하고 친절했다. 팬들이 질문을 하면 기꺼이 대답해 줬고, 팬들의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달기도 했다. 다른 장르에서도 소셜미디어를 사용하는 뮤지션들을 많이 보기는 했지만 대체로 관리자가 따로 있는 ‘공식 계정’의 형태였고, 뮤지션이 리스너들과 대등한 위치에서 교류하는 모습은 별로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더 신선하고 즐거웠다.
유로비트 바닥은 꽤 좁다. 1980년대에 이탈로 디스코 분야에서 음악을 시작한 소수의 프로듀서들이 오랫동안 주축이 되어 장르 전체를 이끌어 왔다. 가수들의 경우도 꾸준히 활동한 사람으로 범위를 좁히면 숫자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래서 페이스북에 있던, 열 명을 좀 넘는 뮤지션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유로비트라는 장르 전체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파라파라도 잊지 않고 있던 나는 ‘파라파라 인터내셔널’이라는 페이스북 그룹에도 가입하게 됐다. 전 세계의 파라파라 팬들이 모인, 1천 명을 넘는 규모의 그룹이었다. 각자 자신이 파라파라를 춘 영상을 찍어서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리고, 그 링크를 가져와서 서로에게 보여주는 것이 회원들의 주된 활동이었다. 한동안 그 속에 있다 보니 나도 자연스럽게 참여하고 싶어졌고, 그래서 나도 파라파라 유튜브를 시작하게 됐다. 그저 그룹 회원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집에서 스마트폰으로 찍은 간단한 영상을 가벼운 마음으로 올렸다. 그래도 꾸준히 하다 보니 파라파라 채널치고는 구독자가 많아졌고(어디까지나 파라파라 채널 기준으로), 1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하고 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 나는 데이브 로저스의 팬 페이지도 운영하게 됐다. 페이스북과 그 외의 여러 곳에서 모아뒀던 자료를 다른 팬들과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데이브 본인도 내 페이지를 팔로우해 줬고, 종종 게시물을 자기 계정에 공유해 줬다. 나는 덕질을 한 번 시작하면 깊이 빠져드는 편이라 뮤지션의 팬 모임을 주도한 것이 이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뮤지션이 반응을 해준 것은 처음이었다. 유로비트 팬덤이 워낙 작은데다 전성기도 한참 지났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는데, 어쨌든 다른 덕질에서는 느껴 보지 못한 성취감이었다. 그래도 이것이 몇 년 후 데이브를 직접 만나서 함께 식사까지 하는 사건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