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데이브 로저스의 팬이 되다

난 25년째 파라파라나 추고 있다 - 15

by이정미

나는 2000년대 초에 유로비트와 파라파라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는 아직 엄청난 팬은 아니었다. 그저 종종 생각날 때 유로비트를 듣고, 좋아하는 파라파라 안무 몇 개를 혼자 집에서 추고, 가끔 오락실에 가서 파라파라 게임을 하는 정도였다. 그보다 더 빠져들지도 않았고, 더 깊이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 상태로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유로비트 가수 중 내가 유일하게 이름을 기억한 사람은 데이브 로저스(Dave Rodgers)였다. 내가 고등학생 때 처음으로 들은 유로비트 곡 Space Boy의 가수이기 때문이기도 했고, 목소리에 특색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무로 나미에의 ‘태양의 시즌’을 프로듀스한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곡이 대체로 내 취향이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더 깊이 알아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 단순무식하게 ‘영어로 노래하니까 아마 미국인이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그 첫인상을 수정할 기회도 없었다.


전환점이 찾아온 것은 프리랜서가 되어 집에서 일하게 된 2013년이었다. 일하면서 들을 음악을 이것저것 찾다가 유로비트에 예전보다 더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정보도 예전보다 훨씬 많았다.

그때 처음으로 유로비트는 이탈리아인들이 만드는 음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 그래서 ‘유로’비트였구나. 아, 그래서 가수들의 영어 발음이 가끔 어색했구나. 전에는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던 부분들이 그때서야 확 실감이 났다. 역시 사람은 아는 만큼만 보이나 보다.


데이브 로저스도 이탈리아인이고 본명은 지안카를로 파스퀴니(Giancarlo Pasquini)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꽤나 충격을 받았다. 영어 예명을 쓰고 영어로 노래하는 유럽 가수를 처음 본 것도 아닌데, 아마 오래 전부터 머릿속에 고정된 막연한 이미지와 너무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나처럼 유로비트를 종종 듣기는 했지만 유로비트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던 한 친구도 나와 비슷하게 반응했다.


이미지의 괴리에서 온 충격이 지나가고, 곧 그보다 훨씬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데이브 로저스는 내가 예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그냥 여러 유로비트 가수들 중 하나, 가끔 곡 제작에 참여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1980년대부터 수없이 많은 유로비트 곡을 만든 유로비트의 거장일 뿐 아니라, 아무로 나미에와 V6 등 유명한 일본 가수들의 히트곡도 만들었고, 심지어 일본 최대의 음반사 중 하나인 에이벡스의 설립에도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었다.


15초도 채 되지 않는 전주 부분만으로 초등학생 시절의 나를 사로잡았던, 아무로 나미에의 ‘태양의 시즌’에도 프로듀서로만 참여한 것이 아니었다. 작곡자이기도 했는데 저작권을 에이벡스에서 사들였기 때문에 작곡자로서는 이름이 표시되지 않은 것이었다. 그 외에 내가 예전부터 좋다고 느꼈던 여러 유로비트 곡 중에서도 데이브가 작곡자로 참여하지 않은 곡을 찾기가 더 어려웠다.


데이브의 음악은 어린아이였던 나, 십대 때의 나, 어른이 된 나를 단단하게 연결해 주는 존재였던 것이다. 한 사람의 음악에 이 정도로 취향이 딱 들어맞는다는 것은 거의 정체성이나 운명의 수준이라고 느꼈다. 결국 나는 데이브의 곡으로, 심지어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작사가 데뷔를 하게 됐으니 어떤 의미로는 운명이 맞는지도 모른다.


Dave Rodgers Amuro Namie at Velfarre 1999 2000.jpg아무로 나미에와 데이브 로저스. 1999년 또는 2000년, 에이벡스 직영 디스코텍 '벨파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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