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이우의 땅 아래
《신의 로그》
PART 2 — 〈HLP〉
제6화 〈키이우의 땅 아래〉
2050년 9월, 우크라이나 키이우.
새벽 3시 17분.
드니프로강 너머의 검은 하늘에서 작은 불빛 하나가 움직였다.
별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빨랐다. 처음에는 점 하나에 불과했던 빛이 어둠을 가르며 빠르게 몸집을 키웠고, 몇 초 뒤 강 건너에서 시작된 낮고 묵직한 굉음이 도시의 지면을 타고 밀려왔다.
공습경보가 울렸다.
사이렌은 한곳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강 양쪽에서 거의 동시에 터져 나온 경보음이 고층 아파트와 오래된 벽돌 건물 사이를 파고들고, 텅 빈 대로를 훑어 지나간 뒤 교회의 돔과 콘크리트 외벽에 부딪혀 겹겹이 되돌아왔다.
잠들어 있던 도시가 한순간에 깨어났다.
어둡던 아파트 창문에 하나둘 불이 들어오더니 곧 한 층 전체가 밝아졌고, 그 옆 동과 맞은편 고층 건물에서도 누런 빛들이 연달아 번졌다. 잠옷 차림의 남자가 커튼을 젖혔다가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곧바로 몸을 돌렸고, 맞은편 건물에서는 여자가 잠에서 덜 깬 아이에게 외투를 입히며 현관문을 나섰다.
엘리베이터가 정지했다는 붉은 표시가 뜨자 사람들은 일제히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철문이 거칠게 열리고 닫히는 소리와 수십 명의 발소리가 좁은 콘크리트 계단을 타고 아래로 쏟아졌다.
도로에서도 차량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 멀리서 들려오던 굉음이 갑자기 커졌다.
누군가 창밖을 보며 외쳤다.
“온다!”
도시 외곽에서 요격탄 하나가 밤하늘로 솟구쳤다. 붉은 불빛이 거의 수직으로 치솟다가 검은 하늘 한가운데에서 방향을 틀었고, 거리와 창가에 서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그 궤적을 따라 움직였다.
몇 초 뒤 하늘이 번쩍였다.
폭음은 빛보다 늦게 도착했다.
유리창이 한꺼번에 흔들렸고, 공중에서 부서진 잔해가 불붙은 채 사방으로 흩어졌다. 몇 조각은 긴 불꽃을 끌며 드니프로강 쪽으로 떨어졌고, 나머지는 건물 너머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거리 곳곳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지하철역과 지하주차장, 오래전에 만들어진 대피시설과 지하 통로를 향해 뛰었다. 누구는 아이를 안고 있었고, 누구는 늙은 부모의 팔을 끌었으며, 휴대 단말 하나만 움켜쥔 채 맨발로 계단을 내려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 가운데 일부는 도시의 오래된 중심부로 향했다.
데샤티나 교회 유적을 둘러싼 특별 보호구역에는 지하주차장과 오래된 지하 통로를 연결해 만든 대피시설이 있었다. 무엇보다 사람들은 국제협약으로 보호받는 그 구역만큼은 공격에서 비켜날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사람들이 살기 위해 그 일대로 몰려든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팔백여 년 전에도 그랬다.
1240년 겨울.
그때 키이우의 밤을 뒤덮은 것은 미사일도 무인기도 아니었다. 성 밖에는 바투가 이끄는 몽골군이 있었고, 방어선이 무너지면서 전투가 골목 안으로 밀려들자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단단한 벽이 있는 곳을 찾아 도시 안쪽으로 달렸다.
아이를 품에 안고, 가족의 손을 붙잡고, 들고 갈 수 있는 것만 움켜쥔 채.
그들에게 화려한 건축도, 왕의 이름도, 훗날 역사가 무엇이라 기록할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돌벽이 있고 몸을 숨길 수 있으며 문을 닫을 수 있는 곳, 어쩌면 한 번의 밤을 더 넘길 수 있을지도 모르는 곳이면 충분했다.
데샤티나 교회의 두꺼운 돌벽도 그런 희망을 품게 한 곳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1240년의 키이우는 끝내 버텨내지 못했다. 도시는 약탈당했고 교회는 무너졌으며, 사람과 물건과 무기, 그날 누구의 것이었는지도 모를 수많은 흔적이 돌과 흙 아래 뒤섞였다.
그 위로 다시 시간이 쌓였다.
무너진 건물 위에 다른 건물이 들어섰다가 사라졌고, 나라의 이름과 국경이 달라졌으며, 흙길 위로 포장도로가 놓였다. 도시가 몇 번이나 모습을 바꾸는 동안에도 땅 아래 묻힌 것들은 그 자리에 남았다.
그리고 2050년, 사람들은 다시 같은 땅 위를 달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하늘에서 불이 내려왔다.
두 번째 요격탄이 솟구쳤다.
첫 번째보다 가까웠다.
폭발한 빛이 밤을 새하얗게 밝히며 건물 벽면을 훑고 지나갔다.
“엄마!”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여자는 아이의 뒤통수를 가슴에 끌어안고 몸을 낮춘 채 달렸다.
데샤티나 교회 유적과 주변 역사문화유산 구역은 전쟁이 다시 격화된 뒤 국제협약에 따라 특별 보호구역으로 묶여 있었다. 교전 당사자들은 이곳에 군사시설을 배치하지 않고 직접적인 공격 대상으로 삼지 않기로 합의했으며, HLP와 유엔은 그 약속을 여러 차례 재확인했다.
그러나 전쟁이 길어질수록 선은 흐려졌다.
요격된 무인기의 잔해가 보호구역 안으로 떨어졌고, 인근의 폭발이 오래된 건축물과 유적 보호시설을 흔들었다. 그때마다 양측은 상대의 무기나 전자전, 좌표 오류를 탓했고, 유엔은 보호구역 주변의 군사 활동을 중단하라는 성명을 반복했다.
며칠 동안 포성이 멀어졌던 적도 있었다.
사람들은 그 침묵을 믿고 싶었다. 적어도 여기까지는 오지 않을 것이며, 전쟁에도 넘어서는 안 되는 선 하나쯤은 남아 있을 것이라고.
군중 속을 달리던 남자 하나가 갑자기 발을 멈췄다.
그의 고개가 천천히 올라갔다.
“저게 뭐야……?”
이번에는 소리가 달랐다.
더 낮은 굉음이 빠르게 가까워졌고, 건물 사이로 보이는 밤하늘에서는 작은 점 하나가 무서운 속도로 커지고 있었다. 방공망이 즉각 반응해 여러 발의 요격탄을 서로 다른 위치에서 쏘아 올렸고, 누군가 몸을 돌려 사람들을 향해 목이 터져라 외쳤다.
“엎드려!”
밤이 하얗게 변했다.
폭발이 터졌다.
충격파가 도로를 후려치면서 보호구역 입구에 세워져 있던 차량들이 들썩였고, 건물 창문과 정류장의 강화유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갔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부딪치며 바닥으로 쓰러졌으며, 돌조각과 먼지가 공중으로 솟구쳤다.
아이를 안고 있던 여자는 낮은 담장 아래 몸을 웅크렸다. 입을 벌려 무언가 소리쳤지만 자신의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았고, 귀 안에는 가느다란 이명만 남아 있었다.
먼지 속에서 사람들이 움직였다. 한 남자가 넘어진 노인을 끌어당겼고, 이마에서 피를 흘리는 여자가 벽을 짚으며 몸을 일으켰다. 아이 하나는 길바닥에 주저앉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울고 있었다.
몇 초가 지나고서야 세상의 소리가 하나씩 돌아왔다.
자동차 경보음과 공습 사이렌, 아이들의 울음, 그리고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사람들의 비명.
“여기 사람 있어요!”
“이쪽부터 들어요!”
사람들이 잔해 쪽으로 뛰었다.
먼지가 조금씩 가라앉으면서 폭발이 남긴 자리가 드러났다.
데샤티나 교회 유적의 중심부와 남아 있는 기초 유구는 직접적인 타격을 피했다. 그러나 유적 입구로 이어지는 도로 한쪽이 폭발 충격으로 크게 내려앉아 있었고, 포장면이 수십 미터에 걸쳐 갈라지면서 그 아래 묻혀 있던 여러 시대의 토층이 한꺼번에 드러났다.
아무도 그곳을 돌아보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땅 아래가 아니었다.
살아 있는 사람이 먼저였다.
구급차와 소방차가 들어왔고 구조대원들이 부상자를 옮겼다. 구조용 드론들은 잔해 위를 낮게 돌며 열화상 센서로 빈틈을 훑었다.
유적 중심부가 직접 타격을 피했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도 위안이 되지 못했다. 폭발은 이미 사람들이 안전하리라 믿었던 구역의 입구까지 들어와 있었다.
───
날이 밝기 전 유엔의 긴급성명이 발표됐다.
교전 당사자들은 공격 바카라임을 서로에게 돌렸지만, 문화유산 보호구역 주변의 군사 활동을 즉시 중단하겠다는 발표만큼은 거의 동시에 내놓았다.
아침이 밝자 키이우에는 기묘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경보도 포성도 멎은 거리에는 깨진 창문 사이로 차가운 가을바람만 드나들었고, 건물 외벽에 반쯤 떨어져 있던 금속판 하나가 바람을 받을 때마다 일정한 소리를 냈다.
철컥.
조금 뒤 다시,
철컥.
지나가던 남자가 그 작은 소리에도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이 오히려 불안했다.
오전 11시 40분.
키이우 상공으로 HLP 기체 한 대가 들어왔다.
유적에서 떨어진 통제구역에 기체가 내려앉자 측면 문이 열렸고, 짙은 회색 현장복을 입은 노라가 가장 먼저 밖으로 나왔다. 검은 머리는 작업에 방해되지 않도록 뒤로 묶여 있었으며 가슴에는 HLP 표식이 붙어 있었다.
네 기의 조사용 안드로이드가 정밀 스캔 장비와 수습용 보존함을 들고 뒤따랐다.
노라는 하늘부터 확인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공습경보가 울리던 하늘에는 흐린 구름 몇 조각만 떠 있을 뿐이었다.
기체 하부에서 정찰 드론 세 대가 떠올랐다.
“1번과 2번 드론은 유적 중심부와 보호시설의 구조 손상부터 확인해. 3번은 도로 붕괴 지점의 지반 변위와 잔류 폭발물 반응을 먼저 살핀다.”
드론들이 각자의 조사 지점으로 갈라지자 노라는 네 기의 조사용 안드로이드에게 작업 구역을 배정했다.
“공역 경보가 올라가면 작업 단계와 상관없이 철수한다.”
“확인했습니다.”
노라는 내려앉은 도로 쪽으로 걸었다.
밤의 흔적은 아직 그대로 남아 있었다. 깨진 유리가 신발 아래에서 잘게 부서졌고, 한쪽 건물의 벽에는 불길이 훑고 지나간 검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충격파에 휘어진 난간과 부서진 차량 부품들이 도로 가장자리로 밀려나 있었다.
도로가 갈라진 곳에서 노라가 멈췄다.
드론 한 대가 균열 위로 이동해 천천히 고도를 낮췄다. 푸른 스캔선이 절단된 지면을 훑자 노라의 시야 안에 층별 영상이 겹쳐졌다.
가장 위에는 현대의 포장층이 있었고, 그 아래로 여러 시대에 걸쳐 쌓인 성토층과 도로 흔적, 건축 잔해가 이어졌다. 더 깊은 곳에서는 훨씬 오래된 퇴적층이 불규칙한 띠를 이루고 있었다.
노라는 서두르지 않았다.
“폭발로 움직인 구간부터 분리해.”
새롭게 뒤틀린 흙과 오랫동안 제자리에 눌려 있던 층이 다른 색으로 나뉘었다.
그러던 중 하나의 형상이 스캔에 걸렸다.
노라의 시선이 멈췄다.
“3번 드론, 정지.”
드론이 허공에서 그대로 멈췄다.
노라는 균열 가까이 몸을 낮췄다.
“조명.”
하얀 빛이 갈라진 지층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돌처럼 보였다. 흙 사이로 둥근 곡면 하나가 드러나 있었고, 그 아래쪽으로 일정한 간격을 가진 작은 흰 물질들이 이어져 있었다.
치아였다.
“인골 확인.”
옆에 있던 조사용 안드로이드가 물었다.
“이번 공격의 희생자일 가능성은?”
“낮아. 매장 깊이와 주변 퇴적층이 현대 지표와 맞지 않아. 정확한 연대는 수습 뒤 분석한다.”
노라는 손을 뻗지 않았다.
“유골보다 주변부터 기록해.”
드론의 스캔 범위가 넓어졌다.
두개골 일부와 어깨, 팔, 갈비뼈가 흙 속에서 차례로 형상을 드러냈다. 전신이 온전히 보존된 것은 아니었지만 성인으로 추정할 수 있을 만큼 골격의 윤곽은 남아 있었다.
그리고 몸의 오른쪽, 갈비뼈에서 조금 떨어진 흙 속에서 또 다른 물체가 잡혔다.
길고 좁은 금속성 반응이었다.
“금속 유물.”
노라가 시선을 옮겼다.
“확대.”
검게 부식된 물체의 윤곽이 화면 위에서 커졌다. 손잡이처럼 보이는 부분 아래로 짧은 날이 이어지자 조사용 안드로이드가 무기류로 추정된다고 보고했다.
노라는 형상을 한동안 살폈다.
“단검일 가능성이 높아.”
유골과 단검 사이에는 약간의 흙이 끼어 있었고 날은 뼈를 향하지 않았다. 두 물체가 같은 매몰층에 놓여 있다는 것 외에는 아직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다.
“사인과 연결하지 마. 유골과 금속 유물의 상대 위치만 기록해.”
“확인했습니다.”
노라는 유골과 단검을 둘러싼 토층의 범위를 살폈다.
“둘의 위치 관계를 유지한다. 개별 수습하지 말고 주변 토층까지 포함해서 블록으로 가져가.”
좌표망이 지면 위에 투사됐다.
조사용 안드로이드들이 유골과 단검을 둘러싼 토양의 범위를 정하고, 무너지기 쉬운 부분을 고정하면서 하나의 매몰 단위로 분리하기 시작했다. 누구도 단검을 뽑거나 뼈를 먼저 들어 올리지 않았다.
어느 시대의 사람이었는지, 왜 죽었으며 단검이 어째서 그 곁에 놓였는지 지금은 알 수 없었다. 그 질문에 답해줄 단서는 물건 하나하나뿐 아니라 서로의 거리와 방향, 그리고 그 주위를 감싸고 있는 흙에도 남아 있었다.
노라는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단검의 표면 영상을 살폈다.
그때 손잡이 아래쪽에서 시선이 멈췄다. 녹과 흙이 두껍게 달라붙은 표면 사이로 가느다란 홈 몇 개가 희미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조명 각도 낮춰.”
빛이 비스듬히 표면을 스치자 움푹 파인 부분에 얇은 그림자가 생겼다. 하나의 선은 이어지다가 부식층 아래로 숨어버렸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또 다른 흔적이 나타났다.
조사용 안드로이드가 물었다.
“문자입니까?”
노라는 대답하기 전에 한 번 더 확대했다.
“아직 판단하지 마. 발견 당시 표면 상태와 토양 성분, 위치 좌표부터 원본으로 남기고 부식층은 건드리지 않는다.”
“확인했습니다.”
영상과 위치 정보가 저장되는 동안에도 토층을 분리하는 작업은 계속됐다. 고정재가 가장자리를 감싸고 지지판이 아래로 들어가자 유골과 단검을 품은 흙덩이가 주변 지층에서 조금씩 떨어져 나왔다.
“토층 블록 분리 완료. 이송 준비됐습니다.”
보고가 들어오는 순간 노라가 고개를 들었다.
시야 가장자리에 공역 위협 단계가 올라갔다는 붉은 경고가 떠올랐고, 거의 동시에 기체에서도 철수 신호가 들어왔다. 몇 초 뒤에는 아득히 먼 곳에서 발생한 둔탁한 폭음까지 대기를 타고 밀려왔다.
“현장 조사 종료. 전 기체 철수한다.”
흩어져 있던 조사용 안드로이드들이 일제히 작업을 멈췄다.
고정된 토층 블록이 특수 보존함의 충격 흡수 장치 위에 안착했고, 좌표와 깊이, 수습 시각, 현장 온도와 습도, 주변 토양 정보가 함께 저장됐다.
덮개가 내려왔다.
철컥.
거의 동시에 공습경보가 다시 울렸다.
드론들이 기체로 돌아왔고 조사용 안드로이드들은 장비와 보존함을 싣고 탑승했다.
노라는 마지막으로 갈라진 도로를 바라봤다. 밤새 만들어진 폭발의 상처 아래에서 오래전에 묻힌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지만, 그가 누구였고 어떤 전쟁을 겪었으며 무엇을 남기고 죽었는지는 아직 흙 속에 있었다.
잠시 뒤 HLP 기체가 키이우 상공으로 떠올랐다.
창 아래로 데샤티나 교회 유적과 갈라진 도로, 깨진 건물들이 빠르게 작아졌다. 몇 시간 전의 전쟁이 그 위에 새로운 상처를 남겼고, 그 상처가 더 오래된 흔적 하나를 다시 세상 밖으로 밀어냈다.
노라는 말없이 아래를 바라봤다.
도시는 곧 구름 아래로 사라졌다.
화물칸에는 보존함 하나가 고정되어 있었다. 그 안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한 사람의 뼈와, 그 곁에서 발견된 단검 한 자루가 흙째로 함께 실려 있었다.
───
사흘 뒤.
튀르키예 이스탄불.
보스포루스 해협 위로 아침 햇빛이 부서지고 있었다. 여객선 한 척이 물살을 가르며 지나갔고, 갈매기 몇 마리가 배 뒤의 포말을 따라 낮게 날았다.
키이우에서 공습경보가 울리던 새벽과 같은 세계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이스탄불의 아침은 평온했다.
노라와 보존함은 키이우를 빠져나온 뒤 현지의 안전한 임시 거점에서 대기했다. 토층 블록의 상태를 점검하고 국외 이송 절차를 마친 뒤에야 이스탄불로 향할 수 있었다.
이송 기체가 HLP 본부 옥상의 드론 승강장에 내려앉았다.
측면 문이 열리자 노라가 먼저 내려섰고, 뒤이어 키이우에서 가져온 보존함이 무진동 자동 운반대에 실린 채 천천히 기체 밖으로 나왔다. 운반대는 승강장을 가로질러 화물용 승강기로 향했다.
봉인 번호와 이송 기록이 중앙 시스템과 대조됐고, 이동 과정에서 충격이나 온도 변화가 있었는지까지 확인된 뒤에야 보존함은 보존 구역으로 넘어갔다.
보존실 입구에는 현승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른손에는 종이컵이 들려 있었다.
노라가 다가오자 그가 그녀의 현장복에 남아 있는 흙자국부터 훑어봤다.
“고생했어.”
“피로를 느끼지는 않습니다.”
“알아. 이런 건 그냥 받는 거야.”
노라가 잠시 그를 바라봤다.
“알겠습니다. 다음부터는 받겠습니다.”
“그것도 좀 이상한데.”
현승이 웃으며 시선을 보존함 쪽으로 돌렸다.
“그래서?”
“인간 유골 한 구와 철제 단검 한 자루입니다.”
현승은 보존함 옆으로 걸었다.
“연대는?”
“아직 모릅니다.”
“누군지는?”
“모릅니다.”
“사인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현승이 걸음을 멈추고 노라를 돌아봤다.
“너 키이우까지 갔다 온 거 맞지?”
“확실합니다.”
“아는 게 너무 없는데.”
“확인할 수 없는 것을 채워 넣지 않았으니까요.”
현승은 잠깐 노라를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그래. 그게 맞지.”
종이컵을 입에 댄 채 다시 보존함을 따라 걸었다.
“그래도 뭐 하나쯤은 있겠지.”
“발견 당시 유골과 단검은 같은 매몰층에 있었고, 위치 관계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현대의 매장물은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단검이 죽인 건 아니고?”
“현재 확인된 위치에서는 그렇게 판단할 근거가 없습니다.”
“좋아.”
현승의 눈이 조금 밝아졌다.
“그게 더 재미있네.”
보존함이 격리실 앞에서 멈췄다.
현승이 물었다.
“현장에서 걸린 건 그것뿐이야?”
노라가 걸음을 멈췄다.
“단검 손잡이에 몇 개의 홈이 있습니다.”
현승의 시선이 즉시 돌아왔다.
“홈?”
“인위적으로 새긴 것인지 부식과 손상으로 생긴 것인지는 아직 분석하지 않았습니다.”
“영상 있어?”
“전부 있습니다.”
현승이 손을 내밀었다.
“보자.”
노라는 손을 내미는 현승을 한 번 보고는 보존실 문 쪽으로 걸었다.
“안에서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왜?”
노라가 보안 패널에 손을 올렸다.
격리문이 양쪽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문틈으로 사람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현승이 안쪽을 바라봤다.
“누가 왔어?”
“다들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들?”
문이 완전히 열렸다.
밝은 보존용 조명 아래 몇 사람이 이미 긴 작업대 주변에 모여 있었다.
노라가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현승은 종이컵에 남아 있던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그녀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등 뒤에서 두꺼운 문이 닫혔다.
철컥.
제6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