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 대신 믿을 구석

나를 알아간다는 건

by눈설

나는 자타공인 결정을 어려워하는 사람이다.

최근에 겪었던 결정 이슈들이 떠오른다.


1. 새벽 일찍 일어나 아침형 인간이 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 영상을 봤다. 그런데 지난번 나의 사주를 봐준 사람은 나에게는 자정 넘어 새벽시간이 가장 활동하기 좋은 시간이라고 강력 추천했다.


2. 누군가는 프리랜서라는 형태를 통해 다양한 일을 넘나들며 자유로이 일하고 있다며, 프리랜서가 되는 길을 적극 소개했다. 반면 유튜브에서 본 한 댓글에서는 프리랜서로 일하면 하루하루가 불안하니 할 수 있는 한 회사에 붙어있으란다. 둘 다 너무 폭력적이다..


3. 이 외에도 '이걸 살까 저걸 살까' '집에 있을까 나갈까' 등 하루 동안에도 수없이 이루어지는 선택의 기로의 연속..


아침형 인간이 될 것인가 올빼미족이 될 것인가.

프리랜서를 할 것인가 취업 준비를 할 것인가.

이걸 살 것인가 저걸 살 것인가.

집에 있을 것인가 나갈 것인가.


답은 간단하다.

"네가 원하는 걸 선택해!"


나도 알고 있어. 내가 원하는 걸 선택하면 되는 거. 그러면 되는데..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독립이라는 것도 결국 이런 선택들을 더 자주, 더 많이 스스로 해내야 하는 거 아닌가? 잠시만, 만약 독립하게 되면 내가 삶의 주체가 되어 결정해야 할 텐데 나 잘할 수 있을까..?


독립은 결국 선택하고 그 선택에 바카라임지는 일로 귀결된다. 인생의 큼직큼직한 이슈로는 이 회사를 계속 다닐지 이직할지 혹은 내 일을 만들지, 집을 월세로 살지 전세로 살지 같은 것들이 있다. 더 쪼개보면, 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얼마큼 보장되어야 하는지, 인간관계를 어느 시점에 맺고 끊을지, 이 물건을 집에 들일지 말지 등등 셀 수 없다..!


이중에서는 상대적으로 선택하기 쉬운 것도 있지만 햄릿증후군 석사 과정을 밟은 사람에게는 선택하기 어려운 것들 투성이다. 독립하는 데 있어서 경제적인 부분이 두드러지긴 하지만, 눈에 띄지 않고 사소해 보이더라도 나에게 맞는 결정을 내릴 줄 아는 것도 독립의 필수 요소이지 않을까 싶다.


나에게 맞는 게 무엇인지 고민해 보고, 그 고민이 선택까지 가닿아 무언가를 들이고, 선택에 바카라임지는 일련의 과정은 마치 근육을 기르는 것 같다. 귀찮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미루거나 타인의 손에 선택권을 쥐여줘 버리면 근손실이 올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선택할 때마다 완전히 맨땅에 헤딩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맞는 쪽을 가늠할 때 참고할 만한 믿을 구석은 만들 수 있으니까. 그 믿을 구석은 바로, 내 인생의 모든 결정을 내릴 나라는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독립하는 데 나를 아는 일이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




한동안 '나를 알아간다는 것'에 극도로 몰두했던 적이 있다. 왜 그렇게까지 나를 알고 싶었을까?


나를 안다고 했을 때 오는 선명함이 매력적이었다. 불확실하고 모호한 것들 투성이인 세상 속에서 작더라도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그 선명함이란!


나를 알아갈수록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줄 알았는데 웬걸, 알아가려 할수록 더 모르겠다.


언제부턴가는 지친 나머지, '나를 안다는 게 뭘까?' '꼭 이렇게까지 나를 알아야만 하나' 하는 일종의 반항심 같은 생각들이 삐죽삐죽 솟아났다.


나를 안다는 건 뭘까. 확실한 건 나를 소개하기 위한 한 마디의 멋진 문장을 만드는 건 아니라는 점.


왠지 멋진 답이 나와야 할 것 같고 나를 한 마디로 딱 설명할 줄 알아야 할 것 같은 부담이 계속해서 올라왔다. 어쩌면 스스로를 정말로 이해하기보단 누군가에게 나를 잘 설명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뭔지, 두드러지는 성향은 무엇인지, 어떤 메시지를 품고 살고 싶은지, 무엇을 할 때 힘이 나는지, 어떤 환경에서 편안한지,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무엇인지 아는 것이었다. 거창하고 그럴싸할 필요는 없다.


이전에는 '나는 어떤 사람이지?'라는 질문에 하나의 답을 찾으려 했던 것 같다. 지금은 나를 안다는 것은 선명한 답을 찾기보단, 나에 대한 작은 단서들을 모아가는 것에 가까워졌다. 언제든지 믿고 참고할 수 있는 나에 대한 자료를 충분히 갖고 있는 것.


단서들을 모으기 위해서 멀리 떠나거나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할 필요는 없다. 지금 내 자리에서 모을 수 있는 걸 모아보고 해 볼 수 있는 건 직접 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모은 단서 중 반복해서 나타나고 이전에 모았던 것들과 같은 파도를 타는 단서들은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메시지가 되었고, 그 외의 것들은 비록 메시지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차곡차곡 수집되었다. 이를테면 취향, 일, 가치관, 공간과 환경 같은 것들. 좋아하고 잘 맞는 것뿐만 아니라 잘 맞지 않는 것들도 적어보고 있다. 웬만하면 피할 수 있도록!


나를 바카라임지기 위해 나에 대한 모든 답을 알 필요는 없다. 어차피 알 수도 없다. 내가 닥터스트레인지도 아닌데 어떻게 그 수많은 변수들을 다 파악할 수 있을까. 다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 계속 살피고 나에 대한 작은 단서들을 모아둘 수는 있다. 독립은 아마 이런 단서들을 조금씩 손에 쥔 채, 정답이 없어 보이는 순간마다 내 쪽에 더 가까운 선택을 하는 일이지 않을까.



p.s. 결정 이슈 두 가지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았다.


1. 아침형 인간이 될 것인가 올빼미족이 될 것인가: 아침형 인간도 올빼미형도 썩 맞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어 결국 기존의 루틴대로 잠들고 일어난다.


2. 프리랜서를 할 것인가 취업 준비를 할 것인가: 조직에 소속되어 일할 준비도 하면서 동시에 개인 단위로도 시도해 볼 수 있는 경험과 역량을 만들어보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둘은 사실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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