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각자의 공간이 필요하다

다 큰 딸들과 부모가 한 집에 산다는 것

by눈설

"내가 진짜 이 집에서는 못 살겠다. 나갈 거야."


부모님과 같이 살면서 재채기처럼 내뱉는 다짐이자 푸념이다. 물론 혼자 있을 때 읊조리는 말이다.


이로 말미암아 예측할 수 있듯이, 나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일명 캥거루족이라고도 불린다.


이런 푸념을 종종 한다고 해서 정말로 나가 살기로 다짐을 했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나가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다가도 부모님과의 사이가 꽤 괜찮아지면 사그라들고, 그러다 부딪치는 일이 생기면 다시 나가고 싶어졌다.


그러다가도 계산기를 두드리며 '여기서 나가면 월세가 얼마고 보증금이 이만큼이라고?' 현실을 직시하면, 이글거리는 마음을 한숨과 함께 재빨리 내보낸다.


작년 즈음부터였다. 부모님과 따로 사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 시작한 게. 그에 따라 질문은 자연스레 "같이 살아야 하나? 나가야 하나?"에서 "나는 왜 나가 살고 싶을까?"로 바뀌었고, 이내 꾹꾹 갇혀있던 여러 생각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부모님 집에서 살면 분명한 장점이 있다. 그중 1번은 경제적인 부분. 자취하면 숨만 쉬는데도 돈이 훌렁훌렁 빠져나간다는 지인의 말마따나, 월세나 보증금은 기본이고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출혈이 생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알아차린 건, 눈에 보이지 않고 돈으로 계산되지 않지만 부모님과 살면서 지출하게 되는 비용 또한 있다는 사실이었다.


부모님 집에서 사는 대신 내가 지불하고 있는 것들이라고 하면,

생활패턴을 어느 정도 맞추는 것, 가고 싶지 않은 곳에도 따라가야 하는 것, 여러 상황에서 눈치를 보는 것, 혼자 있고 싶은 순간에도 혼자가 되지 못하는 것 등이 있다.


이 중에서 제일가는 한 가지를 꼽자면 '눈치보기'다. 어렸을 때부터 눈치를 보고 상대방의 감정에 휘둘리는 환경에서 자라기도 했고, 지금도 여러 사람들과 상황 속에서 눈치를 살피는 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치를 많이 보는 대상은 같이 사는 바로 부모님.


우선 귀가 시간과 외박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부모님의 기분이나 반응에 따라 하루가 달라지기도 한다. 내가 내리는 선택에 대한 부모님의 반응을 먼저 예상해 보거나, 반대로 부모님의 반응을 예측해 결정을 내릴 때도 많다.


무엇보다도, 언젠가부터 '우리 집' '내 집'이 아닌 '부모님 집'이라고 말하는 게 편해졌다. 여전히 집이 가장 편한 공간이긴 하지만 내 집이라는 생각은 글쎄.. 자연스레 들지 않는다.


다 같이 살고 있으니 어느 정도는 예의를 차리고 바카라임을 다해야 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로 인해 나의 일상의 많은 부분이 잠식되는 것 같다고 느끼는 걸 보면 그러려니 하고 놔둘 것만은 아님에 분명하다.


중요한 건, 나만 부모님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는 점. 부모님 역시 어느 순간부터 우리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을 것이고 그들만의 말할 수 없는 고충이 분명 있을 거라 생각한다.


어느 하나 호락호락하지 않은 딸 셋을 키우면서 없을리가 없지 암..



어렸을 때는 한 집에서 사는 게 자연스러웠다. 너무 자연스러우니까 애초에 자연스럽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부모가 많은 부분을 결정하고 우리는 따르면서 그 안에서 살아갔다. 물론 당연히 말 안 듣고 싸울 때도 있었지만 말이다.


지금은 모두가 각자만의 호불호와 생활방식을 지닌, 머리가 큰 사람들이 되었다. 머리가 큰 사람들이 한집에서 사는 지금은 과거의 그때와는 엄연히 차이가 있다. 부모님과 특별히 사이가 나빠서가 아니라, 이렇게 가까이 있는 게 이제는 서로에게 편하고 자연스러운 방식이 아닐 수도 있음을 체감한다.


나에게는 '부모님과 같이 살기'의 반대란 '부모에게서 벗어나기'보다는 '서로에게 적절한 거리를 두며 살기'에 가깝다. 그렇다면 나가고 싶다는 마음에 따라붙는 묘한 죄바카라감을 다르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가족들에게도 서로에게 더 편안한 공간, 서로의 다음 스텝을 존중하는 공간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는 그러하다.


돈: 부족함

안정적인 직업: 없음

월세: 아까움

역시 같이 사는 게 낫겠지?


덕분에 계속해서 제자리걸음이었다. 그렇다. 이 제자리걸음에는 내 욕심의 지분이 크다.


지금은 이 조건들이 나의 결정을 뒤집을 만한 힘을 가진 이유가 되진 못한다. 그저 실행 시기를 결정하는 부수적인 조건일 뿐이다. 나가고 싶다는 결론은 그대로다. 다만 언제, 어떤 조건에서 나갈 수 있을지를 곰곰이 생각한다.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나서 최대한 늦게 나가서 사는 걸 추천한다는 사람들도 많고, 반면 일단 나가서 직접 부딪히는 사람들도 종종 보인다. 둘 다 자신은 없다. 무엇보다 각자의 선택엔 타인은 헤아릴 수 없는 각자만의 어려움과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같은 집에서 자란 세 자매도 각자의 선택은 달랐다. 한 명은 해외로 훌쩍 떠났고, 나와 다른 동생은 집에 남아 또 다른 기회를 위해 준비한다.


독립을 누가 먼저 집을 나갔는지, 누가 돈을 얼마큼 더 많이 모았는지로만 보고 싶진 않다. 그보다도 각자가 원하는 삶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선택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조건이 갖춰지면 나가기를 선택했다.


이번에는 막연히 나가겠다는 푸념을 늘어놓는 대신 실제로 나가는 데에 도움이 될 조건들을 적어봤다.

월 주거비는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는지,

최소한 어느 정도의 수입이 필요한지,

어떤 형태의 집을 원하는지,

꼭 갖춰져있어야 하는 것과 이를 위해 포기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지 등.


써 내려가다 보니 그동안 말 그대로 그저 '나가고 싶다'라고 생각하기만 했구나 나 자신..


내가 그리는 다음 집이 반드시 혼자 사는 집은 아닐 수도 있다. 누군가와 함께 살 수도 있고 상황에 따라 지금은 생각지 못한 다른 형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만 중요한 건 내 삶의 거처를 내가 선택한다는 것이다.


부모님 집에 딸린 나의 작은 방에서 이 글을 쓰며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다. 그리고 언제 나갈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제 내가 목표 삼아 달릴 기본값은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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