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의 진로 고민은 현재 진행형

하고 싶은 일을 몰라도 해볼 수는 있으니까

by눈설


돈을 벌어야 할 이유를 찾았다.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한 비용은 내가 바카라임지고 싶다. 하지만 한 가지 걸리는 점을 고백하자면, 현재 백수라는 점. 그렇다면 이제 해야 하는 일은 당연히 돈 벌기일테다.


그런데.. 어떤 일을 해서 돈을 벌지? 그렇게 나는 서른이 되어서 또다시 진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받는 질문이 있다.


'커서 뭐가 되고 싶어?'


분명 그 질문을 받는 순간순간마다 나름 대답은 곧잘 했던 것 같다. 십 대에는 나름 고민하지 않고 전공을 선택했고, 이십 대에도 대학 졸업 후 꽤 빠르게 취업에 성공했다. 그러니 서른 즈음이 되면 적어도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갈 것인지 정도는 어렵지 않게 말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모르겠다.


그래도 다행인 건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는 아니라는 점이었다. 적지 않은 나이를 먹는 동안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기를 소홀히 하지 않은 덕분이다. 이점만큼은 과거의 나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특히 퇴사하고 떠난 캐나다에서 찾은 단서들이 퍽 도움이 되었다.


원체 머릿속도 복잡하고 생각이 어느 정도 갈무리 되어야 움직이는 편이지만 당장 답을 내리기는 어려워 보였다. 대신 그동안 긁어모은 단서들을 가지고 조합해 보면서 해보고 싶은 게 보이면, 일단 해봤다.


즐겨 쓰던 노션 페이지를 다듬어 디지털 템플릿으로 제작해 판매하기도 하고 사부작거리는 취미를 핸드메이드 브랜드를 만드는 데에 쏟아부으며 실험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생각보다 나의 관심에서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던 글쓰기와 어렸을 때부터 관심을 가졌던 외국어 공부 등에 도전했다.


그렇다면 이 중 하나가 나의 직업이 되었나? 그렇진 않다.


여전히 하나의 직업으로는 나라는 사람을 설명할 수 없다. 다만, 여러 시도와 고민을 거치고 나니 이제는 예전처럼 모든 선택지가 다 비슷비슷하게 보이진 않는다.


어떤 일은 생각보다 몰입해서 하고 전보다 눈길이 가는 일이 있는 반면, 어떤 건 '아휴 이건 안 하는 게 나에게도 상대방에게도 좋겠다' 싶은 것들도 종종 눈에 띈다. 좋아하는 일들을 관통하는, 그래서 오래도록 함께 하고 싶은 것들도 생겼다.



"그래서, 너는 무슨 일을 할 건데?"


"... 지금 꼭 하나를 정해야 해?"


지금 당장 관심 있는 일들을 명료한 직업적인 언어로 바꿔보면 작가, PM, 콘텐츠 기획자, 또는 다른 이름으로 불릴 수 있겠지만, 지금 그중에서 하나를 골라 확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관심 가는 것, 해보고 싶은 일, 이미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을 가지고 다음 선택을 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선택을 하고 그 과정에서 배우고 축적하며 계속해서 가보거나. 아니면 방향을 틀 수도.


요즘 LinkedIn에 나를 소개하는 프로필을 만들고,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보며, 관심 가는 일에 지원하고 면접도 보고 있다. 글 쓰는 플랫폼을 하나씩 늘려가고 있고, 이전에 했던 프로젝트들을 이어가 보는 중이다.


예전에는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살고 싶다'는 희망사항에서 그쳤다면, 지금은 '그래서 누가 나에게 돈을 지불할 것인가?' '나는 어떤 가치를 제공할 수 있지?' '내가 가진 경험을 어떻게 시장에서 설명할 수 있을까?'까지 다다르려 한다.


그러다 보니 확실히 이전보다 뼈아픈 순간들이 많다. 하지만 그저 낭만과 희망만 가득한 상태보단, 어느 정도 현실을 직시하고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독립은 "나는 앞으로 00이 될 거야!"라고 갈 길을 확신해서 말할 수 있는 상태보다는, 아무도 답을 알려주지 않는 상황에서도 지금의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을 가지고 다음을 선택해 볼 수 있는 데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서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나의 진로를 한 단어로 설명하지 못하겠다. 아마 당분간 그럴 예정이다. 예전 같았으면 그래서 움직이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앞으로 어떤 일을 할 것인지부터 확실히 해둬야 다음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


사실 지금도 그 관성과 고군분투 중이지만 그래도 이제는 조금 다르게 가보려고 한다. 지금의 나에게 있는 것들 중 마음이 가는 한 가지를 골라 일단 해보기. 일단 해보고 나면 그전에는 몰랐던 잘 맞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생각보다 수월한 것과 더 배우고 싶은 것들이 생길 테니까.


참고로 최근에 봤던 면접은 떨어졌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속이 꽤나 쓰리고, 담담하게 굴수록 눈물이 찔끔찔끔 난다. 그래도 이게 전부는 아니니까, 아직 해볼 게 많으니까. 눈물은 거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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