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하려면
스스로 모순적인 사람이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종종 있다. 그 순간 중 하나는 바로 돈에 대해 생각할 때.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면 모르겠지만 그 생각을 툭 꺼내어내기에 아직까지 '돈'이라는 주제는 어렵고 껄끄럽게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30년 동안 살면서 돈 얘기를 입 밖으로 내뱉어본 적이 손에 꼽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돈에 대해 얘기한다' = '돈을 밝히는 사람이다'
라는 생각에 돈 비스무리한 얘기가 나올 것 같으면 자체 검열에 들어갔다.
요즘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돈 좀 없이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꼭 돈이 있어야만 행복한 건 아니잖아'가 돈에 대한 나의 주된 의견이었다. 돈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 전까지는.
여느 때처럼 돈 좀 없어도 괜찮다는 신조를 지키던 날이었다.
'내일은 동생이랑 맛집 가기로 했지? 아 맞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도 내려가기 전에 예매해둬야 하는데. 아참 그렇게 염불을 외던 스발바르 여행도 말만 가고 싶다 할 게 아니라 본격적으로 생각해봐야 하는데 여행 경비가 얼마나 든다고 했더라..'
이게 무슨 모순이람. 하고 싶은 걸 수도 없이 떠올리고 있었고 그것들을 하기 위해선 모두 돈이 필요했다. 앞에서는 돈은 중요하지 않다고 선언해 놓고서 말이다. 하고 싶은 것은 많으면서도 돈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은, 도움 될 게 없는 별난 고집이었다.
아니, 분명 돈에 별 관심 없다면서
왜 이렇게 돈으로 하고 싶은 건 많은 거지?
내가 원하는 것들을 펼쳐두고 하나씩 들여다봤다. 내가 정말로 원했던 건 돈 그 자체라기보단 돈으로 할 수 있는 것들에 가까웠다.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좋아하는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 나를 성장시켜 줄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 나는 내 생각보다 누리고 싶은 삶의 모양이 많은 사람이었다. 문제는 그 모든 것에는 기본적으로 돈이 든다는 사실이었다.
언제까지 부모님이 비용을 대신 치러줄 수는 없다.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먹고 싶은 걸 먹고,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싶다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몫까지도 내가 바카라임질 수 있어야 한다.
그제야 그동안 돈을 바라보고 있던 시선이 한 꺼풀 벗겨지기 시작했다.
나는 단순히 돈을 많이 모으고 부자가 되고 싶은 게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 다소 현실성 떨어져 보이는 생각이 오히려 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줬다.
돈을 벌고 다룬다는 건 진짜 어른이 하는 일처럼 보인다.
'아직 덜 자란 어른아이 같은 네가 그 엄청난 일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
스스로에게 묻기도 전에 이리저리 회피하기 바빴지만..
'하지만 이제는 회피할 수 없어.
넌 이제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이루고 싶은 것도 있잖아.
게다가 넌 서른이라는 사실!'
그래. 그러면 우선 내가 원하는 것들의 비용을 조금씩 스스로 바카라임져보자. 휴대폰 요금, 보험료, 교통비, 외식비, 여행비, 강의료, 취미비 등등. 이 중에서는 내가 부담해 온 것도, 자연스레 부모님이 부담하시던 것도, 그 사이인 것도 있다.
아직은 그 비율이 크게 바뀌진 않았지만, 그래서 느리지만, 천천히 그리고 하나씩 내 삶의 비용을 내 쪽으로 가져오고 있다. 무엇보다 일명 '엄카'라 불리는 엄마카드와 이별했다!
부담은 점점 늘어가고 있는데 마음만큼은 홀가분하다. 애써 보지 않으려 해도 은연중에 보게 되는 부모님 눈치, 슬롯 눈치, 어디서 오는지도 모르겠는 눈치의 무게가 조금은 덜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부모님은 이런 행동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
"이런 건 우리가 부담해도 되니 번듯한 온라인 게임 구하는 데에나 신경 써라."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부모의 입장에서 헤아릴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엄마, 나에겐 이 시간이 중요한 걸. 게다가 미안하지만 엄마 딸은 엄마가 원하는 번듯한 온라인 게임을 구해서 기쁘게 해 줄 자신이 없어. 이쯤에서 다음 화를 위해 한 가지 밝혀두자면, 현재 나의 공식적인 신분은 백수다.
내 삶의 비용을 조금씩 나의 바카라임으로 가져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앞으로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계속 좋아할 수 있고, 더 큰 선택을 나의 힘으로 해나가려면 결국 그걸 가능하게 할 돈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