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커리 주방에서 강된장비빔컵밥

생계형 언론고시생, 마냥 힘들진 않았다

by블루버드

수습기자, 정기자를 거쳐 다시 '쉬었음 청년'이 됐던 27살. 당시 나는 혼자 살며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매달 내야 하는 고지서가 있었다. 먹여 살려야 하는 식구인 나를, 공부까지 시켜야 하는 1인 가장이었다. 그래서 당장 알바를 시작했고 스터디를 하면서 각종 공채에 지원했다.


평일 일과는 보통 다음과 같았다. 아침 6시쯤 기상. 대충 채비하고 7시까지 집 인근 카페로 출근. 대학시절부터 아르바이트는 두 탕 세 탕씩 뛰며 수도 없이 해봤다. 그중 가장 많이 했던 게 카페였다. 하지만 이 카페에선 보통의 카페 알바들과 하는 일이 달랐다. 이곳은 베이커리도 판매했다. 음료를 제조하고 손님을 상대하는 게 아닌, 주방 안쪽에서 베이커리류 작업을 도맡아 하는 것이 내 일이었다. 알바라는 직바카라답게 빵을 처음부터 만드는 일을 하는 게 아니었다. 홀케이크와 조각케이크를 장식하거나 끼니 대용 거리들을 소분하거나 간단한 샌드위치를 제조해 포장해 두는 등의 일. 특히 제철 과일이 들어가는 케이크가 많아 과일 손질도 거의 하루 종일 했다. 그렇게 오후 2시까지 혼자 주방에 서서 일을 했다.

이미지: ChatGPT

사실 일하는 동안 가장 바빴던 건 귀였다. 혼자 일하는 업무시간 중 일 때문에 귀를 열어둬야 할 부분이 크게 없었다. 그래서 귀로 공부 양을 채웠다. 매일 정치시사 라디오를 들었다. 오늘 어떤 것이 이슈인지, 그중 어떤 부분이 쟁점인지, 이에 관련해 어떤 여론들이 있고 언론에선 어떤 전문가의 의견을 듣는지, 그들은 뭐라 설명하며, DJ는 어떻게 인터뷰와 프로그램을 진행해 가는지. 귀를 잘 열고 들으면 배워야 할 것 투성이었다. 손발은 바쁘니 업무에 지장은 없었다. 종종 사장님을 포함해 주방 밖에서 일하는 동료들도 궁금한 현안에 대해 어떻게 흘러가는지 물어오곤 했다.


평화로웠던 시간으로 기억된다. 혼자 하루 업무 계획을 세우고 그에 맞게 손발을 움직이고, 누군가의 피드백 없이도 척척 내 일을 해내가는 과정이 좋았다. 매일 일한 만큼 매대가 꽉 채워지는 걸 보면서 큰 성취감을 느꼈다. 혹 업무가 일찍 끝나 남는 시간이 생기면 미래의 나, 그리고 홀에서 일하는 알바들을 위해 여러 가지 전처리 작업들도 해둘 수 있었다. 회사생활에 지친 여러 온라인 게임인들이 바라는 그런 류의 일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매일 내가 얼마나 일했는지 또 얼마나 성장했는지 눈으로 볼 수 있고, 잘했으면 나와 모두의 눈에 잘한 만큼 또 성과가 드러나고, 몸을 움직여 노동하고 그만큼 수당을 받는... 무언가에 쫓기거나 누군가에게 시달리지 않는.


점심시간엔 주로 가게 창고에 비치된 전자레인지용 컵밥을 먹었다. 사장님이 알바들 식사를 위해 항상 종류별로 채워두곤 했다. 많은 종류 중 내가 가장 좋아하던 건 강된장 양념에 보리밥을 비벼 먹는 컵밥이었다. 다른 알바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어 항상 여유 있게 집어갈 수 있었다(야호). 무엇보다 그 레토르트 양념 안에는 내가 좋아하는 두부도 꽤나 들어있었고. 일하는 내내 단내를 맡아서 그런가 그 구수하고 짭짤한 컵밥이 자주 당겼다. 지금도 그때 생각에 가끔 먹어보는데 그때 그 맛이 안 난다. 그렇게 점심시간 30분간 작은 컵밥을 먹으며, 귀동냥한 지식 중 궁금했던 점을 기사들로 찾아보며 습득했다. 된장 보리밥과 함께 꿀떡꿀떡 넘어갔다.


밥알보다 큰 네모 모양 토핑들이 두부다.

퇴근하면, 피곤했다. 그래도 할 일은 해야 했다. 우선 나를 또 먹일 준비 하기. 혼자 사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큰 마트가 있었다. 거기서 간단히 장을 보곤 했는데 항상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이를테면, 마음 같아선 특등급 국산콩 두부를 사고 싶었지만 형편상 PB상품으로 나온 제일 싼 수입산 콩 두부를 사는 게 최선이었다. 신선한 파프리카가 자꾸 눈에 밟혀도 어제 들어와 가격 내려간 파프리카가 내 지갑사정에 더 맞았다. 현실에 맞게 장보기가 매번 힘들었다. 신선식품 코너를 자꾸만 뱅뱅 돌다가 결국 값싼 식재료를 몇 개 담아 장바구니를 메고 집에 돌아왔다. 매일 같은 결론이었지만 매일 혼자만의 실랑이가 길어졌다.


집에 와 끼니땐 밥을 해 먹고 나머지 보통의 시간엔 주간 스터디들 일정에 맞춰 공부했다. 에듀윌이나 박문각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시사상식 바카라 속 지식을 외웠다. 주요 언론사들의 당일 보도를 주제별로 정리하고 스터디용 자료를 만들었다. 스터디원들끼리 보는 퀴즈를 위해 키워드들을 암기했고 내가 출제자가 되는 날이면 궁리를 더 해 문제지를 만들었다. 매주 논술과 작문을 1편씩 썼고 다른 언시생들과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공채 시험이 잡히면 이것만을 바라온 사람 마냥 뒤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그러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면 쓰린 속 좀 달래고 다시 시작. 읽고, 쓰고, 외우고, 공부했다.


이 모든 걸 하는 장소나 시간은 자유자재였다. 어떤 스터디룸도 도서관도 공원도 카페도 박물관도 아무 때나 갈 수 있었다. 날씨가 좋으면 따릉이를 타고 체력 닿는 곳까지 달린 다음 그곳에서 읽고 쓰고 했다. 취준생이란 신분은 이래서 좋기도 했다. 소속과 미래가 없다는 불안이 지배적이었지만 자유와 낭만도 컸기에. 나름 호시절이란 걸 그때도 느끼고 있었다. 주머니는 가볍고 가슴은 꿈으로 가득했던 시절. 나만이 나를 불안해하고 다시 나를 믿어주고 나를 이끌어가던 시절.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길티플레저도 즐겼다. 내가 만든 독서모임에 꾸준히 나갔는데 우린 독서도 음주도 열심히 했다. 가끔 아예 날 잡고 술 마시는 날엔 밤을 새기도 했다. 안주는 주로 우리가 겪어온 사람들, 그리고 슬롯상. 주로 지나온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하며 술잔을 꺾었고, 별 거 아닌 거로 오래 낄낄거리다 술이 깼고, 우리에게 펼쳐질 미래는 이보다 나을 거라 당연히 믿으며 파했다.


이때가 가끔 그립곤 하다. 아무도 시키거나 돈을 주지 않았지만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순전히 호기심을 위해 달려가보던 때. 구경하러 가본 행사나 시위나 공판에서 정신없이 바쁜 기자들을 보면 너무나 멋있었다. 아무렇게나 털썩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던 그들의 그 길바닥 자리가 제일 부러웠다.


이제 그때의 꿈을 이루고 돈벌이를 위해 그런 곳에 나가 있는 내가, 만일 그때의 나를 마주하면 어떤 기분일까. 마찬가지로 부럽고, 한편으론 뭔가 미안할 것 같다. 과거의 믿음이란 내 맘대로 만들어 둔 거였니까. 지금은 퇴근길에 특등급 국산콩 두부를 쉽게 사서 강된장을 직접 만들어 먹을 수는 있지만.




글: 블루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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