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사기? 미숙한 선택
20대 중반부터 기자로 취업을 여러 번 했다. 회사를 몇 번 잘못 골랐단 이야기다. 그들이 날 잘못 뽑았든지.
가장 처음은 취업 연계형 인턴기자. 서류와 필기, 두 번의 면접 과정을 통과해 처음 이뤄낸 '취뽀'였다. 뽑힌 인턴은 나까지 세 명. 당시 사내 기자 인력이 부족하댔다. 큰 리스크가 없다면 우린 모두 정기자로 전환될 거라 했다. 처음부터 우리가 이곳의 구성원임을, 원팀임을 강조했다. 작은 조직이라 실제로 기자 부서가 한 팀만 있기도 했다. 어쨌든 사원증을 목에 걸어 기뻤고 기자 생활이 기대됐다. 내 일자리니까 최대한 좋게 보려고 늘 노력했다.
취재하고 기사 쓰는 일은 기대 이상이었다. 나를 기자라고 소개하며 취재원들을 만나고 인터뷰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짜릿했다. 회사의 전체적인 편집 방향성에도 공감됐고, 데스크들은 기사를 수정하면서 보완점을 직접 알려줬다. 지금 돌이켜보면 엄청나게 감사한 부분인데 그때도 감사함을 느꼈다. 데스크 손을 거치기 전후를 두고 기사를 보면 공부가 많이 됐다. 이렇게 내 이름에, 내가 만든 바이라인을 달고ㅡ 세상에 내 기사를 내보이는 건 상당히 보람된 일이었다. 열심히 배웠고 일을 하며 재미도 느꼈다. 여기까진 좋았던 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퇴근시간 무렵 편집장은 팀을 노포 식당으로 데려왔다.
"우리 B가 이 근방에서 제일 좋아하는 집이야, 여기가."
B 선배가 좋아한다는 그 식당은 평범한 듯한 백반집이었다. 제육볶음, 오징어볶음, 김치찌개 등 식사 메뉴가 있었다. 밑반찬으로는 중국산 배추김치, 콩자반, 맛소금을 친 시금치나물이나 콩나물이 기본 깔리는 그런 친근한 밥집. 다 같이 여기서 저녁도 많이 먹는댔다. 우리 조직에게 일종의 아지트라는 식당 중 하나였다.
"이 집 계란탕이 죽여주잖아요."
계란탕을 먹으러 온다는 B 선배. 계란탕이란 무엇인가. 계란국과 무슨 차이인지, 아, 이 집의 히든 메뉴인가 보다. 대단히 기대가 됐다. 테이블당 하나씩 시킨 계란탕은, 반찬이 깔리고 찌개들과 볶음요리들이 나온 뒤 가장 마지막에 나왔다. 많이 뜨겁다는 식당 아주머니의 주의와 함께, 다소 요란하게.
그렇게 뚝배기에 담겨 나온 계란탕은... 계란찜이었다. 그냥 노란 계란찜. 다만 촉촉하고 매끈하고, 집에선 쉽게 따라 만들기는 어려운 소위 '폭탄 계란찜'. 뚝배기 위로 봉긋 솟아오른 노란 계란찜에서는 김이 무럭무럭 났다. 그러다 김이 다 빠지면 계란찜도 뚝배기 밑으로 푹 꺼져버렸다. 그러니 뜨거울 때 푹 퍼서 후후 불어 먹으면, 부드럽고 고소하고, 그리고 위에 한 바퀴 둘러준 참기름 향, 이런 걸 느끼며 먹는 것이었다.
과연 계란탕은 시킴직한 메뉴가 맞았다. 하지만 계란탕이 아니고 계란찜인데.
편집장과 팀장이 유독 아끼던 B 선배. 이 셋의 공통점은 도통 집엘 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길다고 푸념하면서도 자꾸만 개인 용품을 회사에 들이며 자기 바카라상 공간을 안락하게 꾸며가는 이들이었다. 지면 마감을 했으니까, 구내식당 저녁 메뉴가 맘에 드니까, 집에 가기 귀찮으니까(?) 등등 다 같이 저녁 먹자는 얘기도 너무나 숱하게 했다. 2차, 3차 가자는 얘기도. 신입사원 주제에 매번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걸핏 시작되던 저녁 술자리는 끝날 때까지 괜히 엄숙했고 우린 토하고 와서도 폭탄주를 마셔야 했다.
가족처럼 지내던 선배들. 인턴에겐 가족 같은 분위기가 절대 아니었다. 선배들이 어떤 이유에서라도 회사에 남아있다면 아무도 집에 가질 못했다. 그게 사풍이었다. 원래 퇴근 시간인 저녁 6시가 되면 우리에겐 남은 일이 있지 않았고 선배들이 본인 일을 도우라며 일을 추가로 주지도 않았지만, 그냥 우린 원팀이니까. 집에 못 갔다. 그러다... 너무 늦어지면 팀장이 마지못해 먼저 가보라고 했다. 이미 시간은 저녁 8시를 훌쩍 넘긴 때가 많았다. 그래서 인턴들은 매일 6시부터 달리 할 일도 없이 기분 잡치며 자리 지키고 있었다. 나의 엄마는 언제 집에 올지, 밥을 먹고 와야 할지도 모르는 나를 기다리며 항상 저녁밥을 해놓았다. 그러니 그들만의 화합이 상당히 부담스러웠고 반감이 드는 것도 금방이었다.
일하는 동안 '계란탕'을 파는 그 식당엔 과연 자주 갔다. 먹을수록 어떤 날은 짜고, 심지어 쓰기까지 했다. 속엣말이 늘었다. 이 정도 먹을 거면 그냥 집에 가서 가족들이랑 저녁밥 드시면 될 것 같은데? 그게 더 몸에 좋고 맛도 좋고. 왜 꼭 여기서 회사 사람들과 밥을 먹으며 제일 좋아하는 밥집이 되기까지 했나. 꼭 계란탕이라고 부르던 선배들, 나는 그 계란찜에서 그들이 느끼는 추억과 애정만큼의 매력을 똑같이 느낄 순 없었다. 감자튀김이 맛있다던 그들의 단골 치킨집에서도, 양장피가 유독 술도둑이라던 그들의 참새방앗간 중국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인턴생활이 모두 끝나고 정식으로 취업하라고 정중히 제의 주셨다. 정중히 거절했다. 음, 내 일이 끝나면 집에 돌아가 먹고 싶은 밥을 먹고 싶었다. 신입이라고 해서 그들이 이미 구축해 둔 여러 추억과 문화에 애써 애써 끼어들기가 벅찼다. 그리고, 아직 방송기자의 꿈을 버리지 못했었다. 한 줌 팀이 아닌 큰 언론사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도 마찬가지였다. 언론고시생으로 돌아갔다.
이듬해. 다시 취업을 했다. 큰 언론사의 계열사였다. 나름의 방송을 하는 언론사로 보였고 조직도 꽤 커 보였다. 나에게 이런저런 역할을 줄 수 있다 했고 규모도 이렇게 저렇게 더 키울 거라고 했다. 언론인으로서의 꿈을 달성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 꿈으로 가는 길목이 될 수 있다 생각했고, 때마침 밀려든 생활고를 해소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입사했다.
두 계절이 지나고 나서 어떤 결심을 다시 하게 됐다. 그곳은 입사 제의를 했을 때의 국장의 달콤한 말처럼 발전해 가기는커녕 고인물들의 익숙한 하루하루 만이 계속되고 있었다. 처음 내게 보여줬던 청사진처럼 진행되고 있는 일은 없었다. 앞으로 일어날 가능성도 없었다. 이곳에 계속 있다간 어디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그저 가로막히리라.
그리고 기본적인 맞춤법조차 모르는 한 상사에게 업무적 괴롭힘을 수개월간 당했다. 화도 났지만 대개 가소로웠다. 난 그저 순응하는 사람이 아니구나. 이곳 역시 계란탕이 아닌 푹 꺼진 계란찜이었다. 빈손으로 후련하게 나왔다.
처음엔 취업 사기를 당한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다들 슬롯 초년생에게 이렇게 해도 되나. 더 어른이고 인생 선배면서, 젊은이들에게 이래도 돼? 싶었지만. 내가 원하는 환경의 일자리를 얻기 위해선 확실한 기준과 선이 있어야 함을 배운 시간들이었다. 정보력 부족이기도 했고 직접 겪어야만 알 수 있었던, 결정력이란 걸 기르는 과정들이었다. 아무리 취업이 급해도 회사를 가리고 골라서 줄 알아야 한다는.
돌이켜보면 돈벌이가 급했던 내게 이곳 '계란찜'들로의 입사는 필연이었다. 경제적 궁핍은 여유로운 선택마저 사치로 만드니까.
글: 블루버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