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찻잔
2026년 8월 6일 목요일 · 스톡홀름
오늘은 노르웨이를 떠나 스웨덴으로 간다. 렌터카로 대자연을 달렸고, 오슬로에서는 박물관을 돌았다. 이제는 스톡홀름이다.
이번 여행에서 네덜란드와 노르웨이 일정은 내가 꼼꼼하게 계획했다. 렌터카 루트를 잡고 캠핑장을 예약하는 일은 대학생 조카와 딸이 할 수 없었다. 대신 스톡홀름과 핀란드 헬싱키는 큰 도시라 조카에게 맡겼다. 유럽이 처음이니 스스로 알아보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그러다 보니 스웨덴과 핀란드는 잘 알지 못한 채 왔다. 미리 공부하고 간 곳과 그러지 않은 곳은 역시 달랐다.
그래도 스톡홀름에서의 1박 2일은 알찼다. 첫날은 노벨 박물관, 다음 날은 스웨덴 왕립도서관과 바사 박물관에 갔다. 저녁에는 핀란드로 가는 크루즈를 탔다. 그중에서도 노벨 박물관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한 곳 가운데 하나였다. 간서치로서 꼭 가야 할 곳이었다.
이날은 아침 7시 16분, 오슬로 중앙역 15번 승강장에서 스톡홀름 중앙역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새벽부터 짐을 챙겨 나선 길이었다. 어쩌면 이런 기차 여행은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처음 가는 스웨덴이라 마음은 설렜다.
기차 안은 세계 곳곳에서 온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예전에 춘천 가는 기차를 타고 MT를 가던 대학생들 틈에, 나이 든 아저씨 혼자 끼어 앉은 느낌이랄까. 바로 앞자리에 앉은 스페인 젊은이들은 어찌나 신나게 떠들던지, 잠도 제대로 못 잤다.
다섯 시간 넘게 달려 스톡홀름에 도착하니 꽤 지쳤다. 그래도 호텔에 짐을 풀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술을 사는 것이었다. 노르웨이에서 한번 당하고 나니, 스웨덴에서는 도착하자마자 술 파는 곳부터 찾아보게 되었다. 역시 여기도 술은 시스템볼라겟(Systembolaget)이라는 가게에서만 따로 팔았다. 숙소에서 걸어서 5~6분 거리였다.
가게 안은 은행 창구처럼 계산대마다 번호가 떠 있었다. 번호표를 뽑고 차례를 기다려 와인과 맥주를 샀다. 맥주 한 캔이 17.5 크로나, 우리 돈으로 약 2,400원이었다. 술 한 병 사는 데도 이렇게 절차가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다음에는 시청사에 갔다. 노벨상 연회가 열리는 블루홀이 이 안에 있다. 시상식이 끝나면 수상자들이 여기 모여 저녁을 먹는다. 2024년 12월 한강도 그 자리에 앉아 있었을 것이다.
블루홀 옆에는 벽이 금빛 모자이크로 덮인 황금의 방이 있다. 이런 자리를 품고 있으면서 시청사는 지금도 시의원과 공무원들이 일하는 곳이다. 건축가 라그나르 외스트베리(Ragnar Östberg)가 설계해 1923년에 완성했고, 벽돌이 800만 장 들었다고 안내판에 적혀 있었다.
붉은 벽돌로 둘러싸인 안뜰을 지나 회랑으로 나가면 바로 물가다. 기둥 사이로 물 건너 구시가지가 내다보였다. 안뜰과 물가까지는 둘러보았지만 연회장 안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조금만 더 알고 갔더라면 내부 투어를 했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게 이날 가장 아쉽다.
시청사를 보고 나서 물을 건너 감라스탄(Gamla stan)으로 넘어갔다. 감라스탄은 스웨덴 말로 ‘옛 도시’라는 뜻으로, 스톡홀름의 구시가지다. 노란색, 주황색 건물 사이로 돌을 깐 좁은 골목이 이어졌다.
아이들은 구시가지에서 사진을 찍으며 놀았지만, 나는 노벨 박물관에 꼭 가고 싶었다. 박물관은 그 한가운데 있는 광장, 스토르토리에트(Stortorget)에 있다.
박물관 건물 위쪽에는 ‘SVENSKA AKADEMIEN’이라고 적혀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뽑는 스웨덴 한림원이 같은 건물을 쓰는 것이다. 문학상 수상자도 이 건물에서 발표하고, 한강의 수상 강연도 여기서 열렸다고 한다.
안으로 들어가면 커다란 노벨상 메달이 걸려 있다. 알프레드 노벨의 옆얼굴 옆에 태어난 해와 죽은 해가 로마 숫자로 새겨져 있다. NAT. MDCCCXXXIII, OB. MDCCCXCVI.
옆 화면에는 노벨의 일생이 연표로 펼쳐져 있었다. 1833년 스톡홀름에서 태어나 상트페테르부르크, 함부르크, 파리로 옮겨 다니며 살았다. 1867년에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했고, 1895년에 유언장을 써서 자기 재산으로 노벨상을 만들게 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896년 이탈리아 산레모에서 세상을 떠났다.
노벨상은 노벨의 유언에 따라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문학, 평화 다섯 분야로 시작했다. 첫 시상은 노벨이 죽고 5년 뒤인 1901년이었다. 1969년부터 경제학상이 더해져 지금은 여섯 분야다. 수상자는 해마다 10월 초에 발표하고, 시상식은 노벨이 세상을 떠난 날인 12월 10일에 연다.
평화상을 뺀 나머지 상은 모두 스톡홀름에서 주고, 연회는 낮에 본 시청사 블루홀에서 연다. 평화상만은 같은 날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준다. 노벨이 유언장에 평화상은 노르웨이 의회가 뽑은 위원회가 정하도록 적어 두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오슬로에 노벨 평화 센터가 있었던 것이다. 미리 알았더라면 들렀을 텐데, 그날은 비가 많이 와서 그럴 정신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전시실에서는 처음에 많이 실망했다. 이렇게 해 놓고 입장료를 이만큼 받나 싶었다. 진열장에는 다 해진 소설바카라, 낡은 성경바카라 같은 것들이 놓여 있었다. 좀 허접해 보였다.
찾아보니 수상자가 박물관에 물건을 하나씩 내놓는 것이 전통이라고 한다. 그걸 알고 다시 들여다보니 달리 보였다. 다 해진 바카라은 2013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캐나다 작가 앨리스 먼로가 내놓은 체호프 소설집이었다. 물건 하나로 그 사람이 무엇을 아꼈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낡은 성경바카라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 노벨평화상을 받고 이듬해에 내놓은 것이었다. 표지에 금빛 글씨로 ‘성경전서 찬송가’라고 적혀 있다. 민주화 운동을 하며 죽을 고비와 감옥살이, 망명을 겪는 동안 이 성경이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낯선 나라 박물관에서 한글로 된 성경바카라을 보니 가슴이 뭉클했다.
한강 작가가 내놓은 것은 작은 찻잔이었다. 설명판에는 스웨덴어와 영어로 ‘찻잔(Tekopp · Tea cup)’, ‘한강, 문학 2024’라고만 적혀 있었다. 옆 화면에는 작가가 2024년에 직접 기증한 잔이라고 나와 있었다.
화면 옆에는 한강이 손으로 쓴 메모가 놓여 있었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는 동안 몇 가지 루틴을 지키려고 애썼다고 적혀 있다.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 가장 맑은 정신으로 전날까지 쓴 소설을 이어 쓰기, 당시 살던 집 근처의 천변을 하루 한 번 이상 걷기, 보통 녹차 잎을 우리는 찻주전자에 홍차 잎을 넣어 우린 다음 바카라상으로 돌아갈 때마다 이 잔에 한 잔씩만 마시기. 그리고 괄호 안에 “늘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여 놓았다.
메모의 마지막 줄은 이렇다. “그렇게 하루에 예닐곱 번, 이 작은 잔의 푸르스름한 안쪽을 들여다보는 일이 당시 내 생활의 중심이었다.” 화면의 영어 설명에는 잔 속에 생기는 작은 소용돌이를 바라볼 때, 그것이 한강의 우주가 되었다고 적혀 있었다. 잔 안쪽에는 물레 자국이 둥글게 돌아 있었다.
그 앞에서 나의 일상 루틴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새벽에 일어나 왼손 필사를 하고 바카라을 읽고 블로그에 글을 쓴다. 그런데 가끔 술이 과하면 이 루틴이 무너진다. 노벨상을 받은 작가도 날마다 지키려 애쓰다가 늘 성공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 한 줄이 참 반가웠다.
박물관 안에는 카페가 있다. 수상자들은 시상식 때 스톡홀름에 오면 이 카페에서 점심을 먹는다. 그리고 앉았던 의자를 뒤집어 바닥에 이름을 적고 간다. 노벨상 100주년이던 2001년에 박물관이 문을 열면서 시작된 전통이라고 한다.
의자 등받이에는 누가 앉았던 자리인지 알려 주는 꼬리표가 달려 있다. 그중 한 의자에 ‘한강, 노벨문학상, 2024’라고 적힌 꼬리표가 걸려 있었다. 서명은 앉아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 의자 바닥에는 2022년 아니 에르노, 2023년 욘 포세, 2024년 한강의 서명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3년 동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의자 하나에 모여 있는 셈이다. 아니 에르노는 『부끄러움』을 읽어 본 적이 있고, 욘 포세는 바로 어제 떠나온 노르웨이의 작가다. 세 명의 대작가가 앉았던 의자에 앉아 커피 한잔 하고 올 걸 그랬다.
기념품 가게에는 수상자들의 얼굴이 담긴 엽서가 한 장에 18 크로나씩 꽂혀 있었다. 이름의 알파벳 차례대로 꽂혀 있어 분야도 나라도 뒤섞여 있다. 한강의 엽서는 압둘라자크 구르나와 셰이머스 히니 사이에 있었고, 그 옆이 어니스트 헤밍웨이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엽서는 아래 칸에 있었다. 바로 옆이 마틴 루서 킹이고, 한 칸 아래에 넬슨 만델라가 있었다. 이름만 들어도 아는 사람들 사이에 우리 대통령이 나란히 꽂혀 있었다. 나는 여기서 노벨 마그넷 두 개를 샀다.
한쪽 벽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의 바카라’이라는 바카라장이 있었다. 카뮈, 베케트, 헤밍웨이, 포크너, 타고르, 네루다, 토마스 만, 솔제니친, 오에 겐자부로, 이시구로, 오르한 파묵, 도리스 레싱, 주제 사라마구, 올가 토카르추크. 익숙한 이름을 짚어 가다 보니 처음 보는 이름이 훨씬 많았다. 노벨문학상 받은 바카라 몇 권 읽었다고 으스댔던 내가, 이 바카라장 앞에서는 참 아는 것이 없구나 싶었다.
아이들은 해외 놀이동산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했다. 배를 타고 물 건너 놀이동산으로 가더니 밤늦게야 돌아왔다. 나는 혼자 바닷가를 따라 천천히 걸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호텔 앞 길가 베란다에 앉아 햄버거에 맥주를 한잔 마셨다. 스웨덴에서 보내는 하나뿐인 밤이다. 내일은 왕립도서관과 바사 박물관을 보고, 저녁에는 크루즈를 타고 핀란드 헬싱키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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