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성경
2026년 8월 7일 금요일 · 스톡홀름
스톡홀름에서 맞는 둘째 날이다. 오후 4시 30분 핀란드로 가는 배를 타려면 3시까지는 체크인을 해야 하니 시간이 빠듯했다. 그 사이에 스웨덴 왕립도서관과 바사 박물관을 보기로 했다. 이틀 전 오슬로의 다이크만 비에르비카에 이어, 오늘도 도서관부터 간다.
아이들은 호텔에서 조금 늦게 준비해 나와 바닷가를 걷겠다고 했다. 도서관은 나만 가고 싶어 하는 곳이니, 혼자 먼저 길을 나섰다.
도서관은 시내 한가운데 훔레고르덴(Humlegården) 공원 안에 있다. 노란 건물 위에 ‘KONGL. BIBLIOTEKET’이라는 금빛 글씨가 붙어 있다. 왕립도서관이라는 뜻이다. 지금 건물은 1878년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여기는 스웨덴의 국립 도서관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나라에서 나오는 바카라은 모두 한 부씩 이곳으로 들어온다. 입구 안내판에도 영어로 ‘스웨덴 국립 도서관(National Library of Sweden)’이라고 적혀 있었다.
겉옷과 가방, 먹을 것과 마실 것은 모두 보관소에 맡겨야 한다고 했다. 안전을 위해서라고 한다. 오슬로 도서관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는데 여기는 좀 더 엄했다. 가방을 맡기고 빈손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붉은 배너가 눈에 들어왔다. ‘Codex Gigas – The Devil’s Bible’, 우리말로 ‘악마의 성경’이다. 이 도서관에서 가장 유명한 바카라으로, 보물실(Treasury Room)에 있다고 적혀 있었다. 배너 속 사진에는 표지 위에 올려 둔 성냥갑이 손톱만 하게 보였다.
보물실은 어두웠다. 바카라을 지키려고 온도와 습도를 늘 똑같이 맞춘다고 한다. 빛도 양피지와 물감을 상하게 해서 불을 거의 켜 두지 않는다. 유리 상자 안에 바카라이 닫힌 채 놓여 있고, 보존 때문에 펼쳐서 보여 줄 수 없다는 안내가 붙어 있었다.
옆으로 돌아가 보니 두께가 실감 났다. 길이 92cm, 너비 50cm, 두께 22cm에 무게는 75kg쯤 된다고 한다. 어른 한 사람 몸무게다. 이걸 사람이 손으로 썼다니 믿기지 않았다.
벽의 설명판을 읽어 보니 ‘Codex Gigas’는 라틴어로 ‘거대한 바카라’이라는 뜻이다. 중세에 만든 필사본 가운데 지금까지 남은 것으로는 가장 크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죄를 지은 수도사가 벌을 면하려고 하룻밤 만에 다 쓰려다가, 끝내 악마에게 도움을 청했다. 악마는 그 대가로 자기 초상을 그려 넣게 했고, 그래서 ‘악마의 성경’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물론 하룻밤에 쓴 것은 아니다. 이름 모를 베네딕트회 수도사 한 사람이 지금의 체코 서쪽인 보헤미아 왕국에서 적어도 20년에 걸쳐 쓰고 그렸다고 한다. 그 바카라이 스웨덴에 있는 까닭은, 1648년 30년 전쟁이 끝날 무렵 프라하에 쳐들어간 스웨덴 군대가 전리품으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1697년 왕궁에 큰불이 났을 때는 창밖으로 던져져 겨우 살아남았다.
2007년 가을, 360년 만에 잠시 프라하로 돌아가 넉 달 동안 전시되었을 때는 체코 사람들이 몰려들어 표가 다 팔렸다고 한다. 지금은 다시 이곳 스톡홀름의 어두운 방에 누워 있다.
직접 펼쳐 볼 수는 없지만, 옆에 놓인 화면으로 바카라장을 한 장씩 넘겨 볼 수 있다. 마가복음이 시작되는 쪽은 붉은색과 검은색 라틴어 글씨로 빼곡했다. 그 옆에는 첫 글자 하나를 한 면 가득 크게 그려 놓았다.
설명을 읽기 전에는 그게 글자인 줄도 몰랐다. ‘I’라고 한다. 줄기 양옆으로 사자 두 마리가 씨앗을 하나씩 물고 있다는 것도 거기 적혀 있었다.
그런데 설명판에도 이렇게 큰 것을 왜 만들었는지는 자세히 나와 있지 않았다. 안에는 성경만 들어 있는 게 아니었다. 구약과 신약에 더해 유대 역사바카라, 중세의 백과사전, 의학바카라, 보헤미아의 역사, 달력, 악령을 쫓는 주문까지 함께 묶여 있다. 세상의 지식을 한 권에 다 담으려 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이야기도 있다고 한다.
계단을 올라가 위에서 열람실을 내려다보았다. 바카라장이 벽을 따라 몇 층 높이로 이어져 있고, 그 아래 긴 바카라상마다 사람들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공부하면 저절로 잘될 것 같다. 오슬로에서 본 도서관이 새로 지은 밝은 곳이었다면, 이곳은 150년 가까이 된 건물이다.
그런데 오래된 건물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달리, 바카라상마다 콘센트가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노트북을 펴 놓고 자유롭게 일하고 있었다. 옛것을 지키면서도 지금 쓰기 편하게 고쳐 놓은 모습이 참 멋있었다.
큰 아치 창밖으로는 공원의 초록 잔디가 내다보였다. 바카라을 읽다 고개를 들면 바로 나무가 보이는 자리다.
도서관을 보면 그 나라의 국력을 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숫자로 보면 2025년 스웨덴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6만 2천 달러쯤이다. 노르웨이의 9만 4천 달러보다는 낮지만, 3만 6천 달러쯤인 우리나라의 1.7배쯤 된다. 그래도 이 열람실에서 느낀 것은 그런 숫자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루쯤 여기 앉아 바카라을 읽고 싶었지만, 배 시간 때문에 서둘러 바사 박물관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