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내가 미처 알아보지 못한 것들

bySungang

사진에 남지 않은 것들


사진을 다시 펼쳐 본다. 얼굴과 사물, 공간이 남아 있지만 그 장면을 가능하게 한 모든 과정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 그곳에 오기 전의 시간, 물건을 만든 사람의 손길, 방문자가 떠난 뒤에도 이어지는 하루는 사진밖에 있다.

나는 사진을 보며 내가 했던 일을 먼저 떠올렸다. 무엇을 준비했고, 얼마나 애썼고, 어떤 반응을 만났는지. 내가 들인 시간은 선명하게 기억난다. 준비한 것이 잘 쓰이기를 바랐고, 함께한 시간이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했다. 그 마음은 지금도 같다.

그런데 어쩌면 나는 짧은 방문 안에서 너무 많은 것을 확인하고 싶어 했다. 무엇을 했는지, 아이들이 즐거워했는지, 도움이 되었는지. 준비에 준비를 더한 만큼 그 의미도 눈에 보이기를 기대했다. 예상과 다른 반응을 만나면, 그 반응을 살피기 앞서 내가 무엇을 잘못 준비했는지부터 생각했다.

사진으로는 다 알 수 없다. 한순간의 웃음만으로 그날의 경험을 다 설명할 수 없고, 완성된 물건만으로 그것을 만든 시간을 헤아릴 수도 없다. 내가 머무는 동안 알아차리지 못한 일도, 떠난 뒤에야 의미를 갖게 된 일도 있을 것이다.

사진을 조금 더 천천히 본다. 내가 무엇을 했는지 확인하려던 시선을 잠시 멈추고, 그 장면에 함께 있었지만 미처 알아보지 못한 것들을 생각한다. 처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색색의 바람개비다. 그것을 만들던 우리의 시간을 기억한다. 이제 그 바람개비가 아이들의 손에 건너간 다음을 다시 보려 한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색색의 바람개비가 겹쳐 있다.

바람개비를 만들기 위해 재료를 한국에서 미리 준비하였다. 색종이, 나무젓가락, 압핀, 색종이는 쉽게 지져지지 않도록 코팅지까지 발랐다. 바람개비를 가지고 놀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무척 기뻤다. 에티오피아에서 준비한 재료로 리허설을 해 보니, 아이들이 쉽게 만들 수 있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회의를 한 결과 완성품을 만들어 주는 게 좋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오후에 있을 프로그램을 위해 오전부터 몇 시간 바람개비를 만들었다. 만들어 놓은 바람개비를 보며 뿌듯했다. 색색의 종이가 바람개비 모양을 가지니 더 예쁘게 보였다.
하지만 바람개비는 눈에 보이는 형태와 완성되는 과정 사이의 간격이 있었다. 방문을 준비하며 마련한 물건과 일정도 마찬가지이다. 준비는 필요하지만, 준비한 것만으로 사람 사이에서 일어날 일을 모두 정할 수는 없다. 완벽한 준비는 없다. 계속 준비에 준비를 더 해야 한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준비한 물품과 계획을 중심으로 방문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아이들의 반응이 예상과 다를 수 있기에 그것을 받아들일 여백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준비에 준비를 더하는 이유인 걸까? 혹은 그 여백이 없고, 예상과 다를까 봐 두려워 준비에 준비를 더하는 걸까? 이유야 어떻든 이런 나의 미련함이 아이들의 삶 안에서 조금이나마 빛과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솔직하다.
그래서 나는 만남을 준비하면서, 또 준비를 더하고, 그 만남의 결과까지 정해 놓고 있지는 않았지만 기대했던 것 같다. 내가 준비할 수 있는 것은 만남의 일부였다. 그다음에 일어날 일까지 내 손으로 정할 수는 없었다.


내 계획을 벗어난 자리에서


바람개비를 나눠준 순간 아이들은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봉사자들은 나름 아이들에게 질서를 부여하려고, 줄을 세우고, 앉히고, 집중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하지만 바람개비는 아이들을 바람으로 만들어버렸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아이들을 멈춰 세울 수는 없었다.

아이들이 바람개비를 들고 달리고 있다.

질서를 세우려던 노력을 포기하자, 아이들이 바람개비를 들고 잔디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각자의 손에 들린 바람개비와 몸은 정말 바람처럼 움직이는 것 같았고, 그 움직임을 모두 사진에 담을 수 없어서 아쉬웠다.
많은 사진들 중 아이들이 자기 방식으로 이 시간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무엇을 준비해 주었는지만으로 이 장면을 설명하면, 아이들의 행동과 선택은 뒤로 밀려날 것 같았다. 우리가 준비한 시간, 준비한 노력, 준비에 준비를 더한 사실을 강조하며 아이들에게 질서를 부여하려고 했다면 아이들의 자기만의 방식을, 자신들이 만들어가는 이 시간을 우리는 보지 못했을 것이다.
방문한 우리는 아이들의 좋은 반응을 보며 보람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그 반응에 해당하는 결과를 위해 아이들을 통제하려고 한다. 하지만 바람과 같은 아이들의 자기표현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의 노력과 준비에 대한 성과로 기록하려는 마음을 돌아볼 수 있었다. 내가 사진을 찍었다고 해서 그 순간의 의미까지 내 것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바람개비를 들고 있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그때의 자유로운 바람이 나에게도 불어온다.
이 바람은 내가 기대한 바람이 아닐지라도 난 이미 즐겁다. 그리고 준비와 계획을 잘했던 못했던 결과를 가늠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기대한 방식과 달라도 아이들이 만들어 가는 경험을 존중하게 된다. 아이들이 만들어 가는 시간 앞에서, 나는 그 장면을 내 성과로 설명하고 싶은 마음을 돌아보게 되었다.


가방 너머로 이어지는 삶


파랑과 노랑, 붉은색 가방들. 가까이 있는 가방에서는 바느질과 가장자리 마감이 보인다. 누군가의 수공예로 완성된 가방들. 에티오피아 현지 분위기와는 다르다. 에티오피아는 커피가 유명하다고 알려졌지, 가죽공예가 유명하지는 않다. 그렇다면 왜 가죽공예품에 집중하는가? 사실 누군가를 위한 준비, 그 준비에 준비가 더해지는 과정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가. 이 공예품들이 그 준비를 가늠하게 해 주는 것 같다.

에티오피아 구브리 공동체에서 가난한 이들을 돕기 위해 제작하는 가죽공예품

이 가방들은 앞을 볼 수 없는 가죽공예사가 만들었고, 판매 금액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사용된다.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공예사가 한 땀 한 땀 정성을 다한 바느질의 결과물이 이 가방들이다. 이 가방을 만든 사람이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 우리는 이 가방을 더 귀하게 여긴다. 그래서 하나쯤 다들 산다. 그런데 귀하게 여기는 이유가 그의 장애라면, 나는 가방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사정을 산 것이다. 각국에서 오는 봉사자들에게 판매 목적을 겸하고 있다. 수익금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사용된다.
사진 밖에는 두 방향의 시간이 있다. 하나는 가방을 완성하기까지 공예사가 들인 시간이 있었다. 또 다른 하나는 판매 금액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이후의 시간이 있었다. 나는 그 긴 과정 가운데 완성된 가방이 걸려 있는 한순간을 찍었다.
공예사의 숙련된 기술과 그 작업이 나눔으로 이어지는 관계를 다시 보게 되었다. 이제 나는 물건의 색과 모양, 가격과 함께 그것을 만든 시간은 얼마나 되는지도 살펴보게 된다. 하나의 물건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 준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우리 주변,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것들, 우리에게 찾아오는 많은 기회들은 눈에 띄지 않게 계속되는 수고의 결과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가방은 완성되어 벽에 걸려 있었지만, 그 가방을 통해 이루어지는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내가 보지 못한 수고를 생각할수록, 짧은 방문으로 무엇이 이루어졌는지 서둘러 판단하려던 마음도 잠시 멈추게 된다.


답을 서두르지 않는 시간


에티오피아 북부 아디그라트(Adigrat)의 메드하니 알렘 가톨릭 성당, 즉 Holy Saviour Cathedral

성당 안에 긴 의자들이 놓여 있고, 창과 열린 문으로 빛이 들어온다. 여기는 에티오피아 구브리 지역의 가톨릭 성당으로 기억된다. 평소의 성당 내부는 고요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빛이 성당을 온전히 채우고 있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벽화와 나무 천장, 의자와 통로를 조금씩 밝히고 있다. 성당을 빛이 채운다는 것은 빛을 통해 성당의 모습이 늘 변한다. 변화는 언제나 극적인 사건으로 오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아주 천천히,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방식으로 이미 시작된다. 앞의 가방 사진에서 다른 사람의 수고를 헤아렸다면, 여기서는 내 안의 조급함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내가 한 일이 의미 있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기도할 때에도 곧바로 답을 얻고 싶어 한다. 봉사활동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에 기도가 자연스레 더해진다. 나는 기도하면 무엇인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상황이 바뀌고, 문제가 풀리고, 마음이 편안해져야 하느님께서 일하고 계신다고 믿기 쉽다. 그러나 변화는 언제나 즉시 보이지 않는다.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곳에서 천천히 움직이고 있을 수도 있다. 상황은 그대로인데 내가 조금 달라지고 있을 수도 있고, 아직 때가 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래서 기다림이 필요하다. 내가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 피할 수 있는 바카라임까지 하느님께 맡기는 것은 신뢰가 아니다. 내가 선택해야 할 것은 선택하고, 내가 감당해야 할 것은 감당하고, 내가 건넬 수 있는 말과 행동은 건네야 한다. 이것이 준비에 준비를 더하는 나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다음이 있다. 내가 확인할 수 없는 부분, 내가 바꿀 수 없는 사람의 마음, 내가 예측할 수 없는 내일, 내 노력으로 완성할 수 없는 결과. 그곳에서 나는 멈추어야 한다. 모든 것을 알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모르면서도 맡기는 것.

어쩌면 믿음은 확신의 반대가 아니라 모르는 것이 남아 있어도 걸어갈 수 있는 힘인지 모른다.


나도 돌봄을 받아 살아왔다.


에티오피아 정교회 전통의 성모자상(聖母子像)으로,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님에게 젖을 먹이는 장면을 중심으로 천사들과 천상 왕권의 상징을 배치한 작품이다.

이 그림은 동방 그리스도교 성화에서 자주 나타나는 상징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 우리의 시선을 멈추게 만들고,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아기 예수님이 성모님의 젖을 먹고 있다는 점이다. 서방 미술사에서는 이런 유형을 보통 ‘수유하는 성모’(Madonna Lactans)라고 한다. 이 장면은 단순한 모성애의 표현이 아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실제 인간의 몸을 취했다”는 강생의 신비를 매우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그림의 설명이 길었다.
신앙의 신비, 깊은 뜻은 잠시 내려놓고, 이 그림 앞에서 나 역시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 살아온 사람이라는 사실을 느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에도 나를 먹이고 안아준 한 분의 수고, 또 한 성인이 되는 과정과 그 뒤에도 내가 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수고가 내 하루를 지탱해 왔다. 나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렇다. 나 혼자 이룬 것은 없다. 나를 위한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노력과 준비에 준비를 더한 과정이 우리 삶을 지탱한다. 지금의 나에게는 나의 노력과 함께, 다른 사람들이 내어준 시간도 함께 쌓여 있다.


알아보지 못했다고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바람개비를 만들기 위해 몇 시간을 보냈는지 알고 있다. 한국에서 재료를 챙기고, 현지에서 다시 만들어 보고, 계획을 바꾸어 완성품을 준비한 과정을 기억한다. 내가 들인 시간은 이렇게 구체적이다. 그런데 나를 위해 누군가가 들인 시간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때부터 나를 먹이고 돌본 사람들, 내가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도록 미리 자리를 마련해 준 사람들. 그들에게도 준비에 준비를 더하던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완성된 가죽 가방 뒤에 공예사의 시간이 있었고, 그 가방이 팔린 뒤에는 다른 사람을 위한 도움이 이어졌다. 나는 그 긴 과정 가운데 잠깐을 보았다. 그러면서도 내가 본 것으로 충분히 알았다고 생각했다. 나의 삶을 돌아볼 때에도, 내가 애쓴 부분은 선명하게 기억하면서 다른 사람의 수고는 배경처럼 지나쳤다.

앞으로도 나는 준비에 준비를 더할 것이다.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길까 두려워 더 챙기는 마음도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준비한 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자바카라하거나 후회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한다. 아이들을 줄 세우려던 노력을 멈추자, 아이들이 자기 방식으로 바람개비를 가지고 놀던 시간이 시작되었던 것처럼.

기도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그다음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시간을 견디는 것. 당장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로 내 수고를 무의미하게 여기지 않고, 다른 사람의 반응을 재촉하지 않는 것. 하느님께 맡긴다고 말하면서도 결과를 붙들고 있는 내 손을 살펴보는 것. 아직 내게는 연습이 필요한 일이다.

성모님 그림 앞에서 생각한 것도 결국 나의 삶이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이곳에 왔다. 그런 마음을 품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데에도 내가 다 헤아리지 못한 돌봄이 있었다. 그 사실을 생각하니, 이번 방문으로 내가 무엇을 남겼는지 묻기 전에 내가 무엇을 받아 왔는지 조금 더 오래 돌아보고 싶어진다.

사진 속 아이들은 여전히 바람개비를 들고 달리고 있다. 그날의 바람은 사진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그 사진을 보고 있으면, 아이들을 멈춰 세우려던 마음을 놓았을 때의 즐거움이 돌아온다. 다음에 무언가를 준비할 때에도 이 사진을 한 번쯤 다시 보게 될 것 같다.


수정 내용) 기존에 앞을 못 보는 가죽공예사는 나의 착각이었고, 이후 현지 지인을 통해 말하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공예사로 확인하였기에 수정하였다. 그리고 가톨릭 성당은 북부가 아니기에 역시 수정하였는데, 자세한 지역과 성당 이름은 기억을 하지 못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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