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말을 건넨다.

건네고, 기다리고, 조심스럽게 받쳐 주는 일

bySungang

얼굴에서 손으로


지난 이야기에서 함께 머무르고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 주는 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여러 모습으로 만들어지고 드러났다. 서로 마주 보기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함께 일을 하기도 하며, 때로는 아무 말 없이 곁에 머물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여정의 사진들을 다시 살펴보다가 유독 '손'이 눈에 들어왔다.
악수하는 손, 음식을 준비하는 손, 일하는 손, 물을 나르던 손, 무언가를 건네고 받는 손.
우리는 얼굴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쉽게 읽어내지만, 우리의 손 역시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 나의 손에만 집중하면 그 일의 결과가 먼저 보인다. 반면 다른 사람의 손을 따라가다 보면 그 사람의 수고와 마음, 그리고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나 자신의 태도까지 돌아보게 된다.
사실 이번 여정에서 나는 손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그 손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충분히 듣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사진 속 '손들'을 다시 바라보기로 했다.
나는 누군가에게 손을 내 밀 때, 그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얼마나 헤아리고 있었을까.


열린 손 앞에서


우리 이야기의 시작은 한 소년이 펼쳐 보인 두 손이다.

IMG_5142.JPG한 소년이 나를 보면 두 손을 펼쳐 보여주고 있다.

그 몸짓이 장난이었는지, 무언가를 보여 주려 했던 것인지, 아니면 다른 뜻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사진을 다시 보았을 때, 나에게 다가오려는 소년의 마음이 먼저 느껴졌다.
두 손을 활짝 펼친 모습은 마치 적의가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영화 속 몸짓 같았다. 나도 모르게 그 손에서 호감을 읽었다. 그런데 동시에 다른 생각도 들었다. 소년의 두 손이 비어 있었다. 나는 그 손을 보자마자 무언가를 채워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손에 무엇이라도 쥐여 주면 소년이 좋아할 것이라고 여겼다.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묻지도 않은 채 말이다.
나는 소년의 마음을 이해했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소년의 마음보다 내가 가진 생각을 먼저 들여다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비어 있는 손에는 무언가가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
내가 가진 것을 건네면 상대도 기뻐할 것이라는 기대.
지금까지의 경험을 돌아보면 내 해석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 순간에는 내가 옳다고 생각했다. 고질병 같다. 이 소년은 어쩌면 그저 나와 인사를 나누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손을 보여 주며 장난을 치고 싶었을 수도 있다. 나는 여전히 그 손짓의 정확한 의미를 알지 못했다. 다만 이제는 그 두 손을 보면서 다른 질문을 하게 된다. 비어 있는 손을 보면 무언가를 채워 주기에 앞서, 그 손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먼저 물어야 한다.


한 끼를 준비하는 손


손의 움직임을 따라가다 보니 음식을 준비하는 장면에 시선이 머물렀다.

IMG_6360.JPG현지 여성들이 공동체 구성원이 먹을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음식을 준비하는 일에는 손의 시간과 수고가 많이 필요하다. 식사 공동체는 함께 앉아 음식을 나누는 자리이다. 그러나 함께 앉기 위해서는 누군가 먼저 그 자리를 준비해야 한다.
사진 속 사람들이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손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그 손을 거쳐 한 끼의 식사가 마련된다. 음식이 준비된 것을 보면 기분이 좋다. 먹으면 더 좋고, 맛있으면 더욱 좋다. 누군가 나를 위해 정성스럽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 음식은 특별해진다.
결국 내가 누리는 한 끼 식사의 기쁨은 누군가의 수고가 있었기에 가능하다. 나는 식탁에 앉아 음식을 먹지만, 누군가는 그 식탁을 마련하기 위해 먼저 손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음식을 씻고, 다듬고, 만들고,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우리가 음식에 대해 ‘손맛’이라고 말하는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일 것이다. 손맛에는 재료와 조리법만이 아니라 그것을 준비한 사람의 시간과 정성이 담겨 있다. 간단한 음식이라도 직접 만들어 본 사람은 안다. 한 끼를 준비하는 일이 생각보다 많은 손길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말이다.
매일 반복되는 식사에 익숙해지면 그 수고마저 당연하게 여길 때가 있다. 우리는 음식의 맛과 만족에는 민감하지만, 그 음식이 내 앞에 놓이기까지의 과정에는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고 있을까. 가톨릭 신자들은 식사 전에 기도를 바친다. 음식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식재료를 길러 낸 자연과 그것을 생산하고 준비한 사람들의 수고를 기억한다. 그러나 기도를 바치는 나 역시 얼마나 자주 그 감사의 의미를 잊고 있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사진 속 분주한 손을 보면서, 내가 먹는 음식이 단순히 내 앞에 놓인 결과물이 아니라 누군가의 시간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했다. 내게는 한 끼였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한 끼를 준비하는 시간이 있었다.


건네는 손

IMG_5449.JPG봉사자들이 사람들에게 빵을 나누고 있다. 어떤 이들에게 이 빵은 하루 먹을 것의 전부이다.

빵을 나누는 장면에서는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관계를 생각했다. 사실 나는 주는 자리가 더 편안했다. 사제로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건네는 일에 익숙해졌다. 미사를 봉헌할 때도 성체를 나누어 주는 자리에 서 있었다. 그래서인지 누군가에게 받는 일은 때때로 어색하다.
이 날은 오히려 내가 봉사자에게 빵을 받았다. 빵이 다른 사람의 손에서 내 손으로 건네지는 순간, 감사함과 함께 묘한 겸허함이 느껴졌다. 나는 이 빵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그 질문은 누군가에게 빵을 건넬 때보다 받을 때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어쩌면 주는 자리에 있을 때 나는 내가 가진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했던 것 같다. 반면 받는 자리에서는 내가 가진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 내어놓은 것을 바라보게 된다. 그 순간 나는 도움을 주는 사람인 동시에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생각해 보면 내가 주는 자리에만 머무르려고 한다면, 상대는 언제나 받는 사람으로 남게 된다. 그에게도 나를 돌보고, 내게 무언가를 건네고, 자신의 것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받는 사람이 될 때, 상대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역할이 바뀌는 일이 아니라 서로를 대하는 관계의 변화이다. 그날 빵을 받아 든 내 손이 내게 그런 생각을 건넸다.
나는 내가 건넬 수 있는 것만 생각하던 손을 펴고, 누군가가 건네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한 입을 먹여주는 손


수녀님의 손이 아이의 입 가까이 다가가 있었다. 손끝에는 한 입의 음식이 들려 있었다. 바닥에 놓인 접시와 그 곁에 앉은 아이들 사이에서 나는 그 작은 손의 움직임에 머물렀다.

IMG_5554.JPG수녀님이 현지 아아에게 밥을 먹여주고 있다.

누군가에게 음식을 마련해 주는 일과 먹여 주는 일 사이에는 또 다른 수고가 있었다. 가까이 몸을 기울이고, 입에 들어갈 만큼 음식을 덜고, 상대가 받아먹는 것을 살펴야 한다. 한 입을 건넨 뒤에는 다음 한 입까지 기다려야 한다.
사진을 보며 내가 도움을 주는 방식을 돌아보았다.
필요한 것을 준비해 건네면 할 일을 마쳤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내가 충분히 주었다는 사실에 마음을 놓고, 상대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는 놓치지 않았을까.
한 입을 먹여 주는 일은 상대의 속도를 생각하게 한다. 내 손은 다음 음식을 준비할 수 있어도 상대는 아직 앞의 음식을 씹고 있을 수 있다. 더 주고 싶은 마음이 앞서더라도 그가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을 살펴야 한다.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일에도 이런 세심함이 필요했다. 아이의 입 가까이에 놓인 손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 손끝에서 내가 생각한 것은 큰 도움이나 특별한 희생이 아니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한 사람에게 온 신경과 정성, 그리고 힘을 기울이는 일이었다. 그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내가 건네는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지 살피는 시간이었다.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내 시간을 조금 내어 주는 일이기도 하겠구나. 내가 정한 속도를 잠시 늦추고, 그 사람의 한 입이 끝날 때까지 곁에 있는 일이었다.
나는 무언가를 건네는 데는 익숙했지만, 건넨 뒤에도 그렇게 머무는 데는 무디어졌다.


움켜쥐지 않고 받쳐 주는 손

IMG_5594.JPG손바닥 위에 강아지풀이 놓여 있다.

어린 시절 강아지풀을 손에 쥐고 움직이던 기억이 났다. 손을 움직이면 강아지풀도 움직였다. 그 모습이 마치 강아지를 부르는 손짓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손에 힘을 얼마나 주는지에 따라 풀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사진을 바라보다가 문득 내가 다른 사람을 도와주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나는 누군가를 도운 뒤 그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뀌기를 기대한 적이 많았다. 도움을 받았으니 이제는 자립해야 한다고, 이전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고, 지금보다 나아진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누군가가 자신의 삶을 회복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변하는 모습이 내가 기대한 것과 다르다면 어떨까. 나는 여전히 같은 마음으로 그를 바라볼 수 있을까. 내가 베푼 호의와 수고를 이유로 그의 변화와 선택까지 요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 손이 분주했다는 이유로 그의 삶까지 내 뜻대로 움직이기를 기대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할수록 관심과 간섭 사이의 경계가 궁금해졌다.
사실 나는 그 경계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지금도 어디까지가 관심이고 어디서부터 간섭이 시작되는지 명확하지 않다. 다만 한 가지는 조금씩 알 것 같다. 내 손이 상대를 대신해 언제까지나 분주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상대의 손이 움직여야 한다. 그가 자신의 방식으로 무언가를 붙잡고, 선택하고, 자기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때때로 상대가 자기 손을 움직이기도 전에 내 손으로 그가 가야 할 방향까지 정해 놓았던 것 같다.
사진 속 강아지풀은 손바닥 위에 가볍게 놓여 있다. 손은 그것을 꽉 움켜쥐지 않는다. 그저 조심스럽게 받쳐 주고 있다. 나는 그 모습에서 내가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다시 생각했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그를 내 손안에 붙잡아 두는 일이 아니라, 언젠가 내 손을 떠나 자기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곁을 내어 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조심스럽게 받쳐 주는 손을 보며, 내 도움을 받은 사람에게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기대해 왔는지 돌아보았다.


내 손의 태도를 돌아보다.


다섯 장의 사진을 다시 바라본다. 소년이 펼쳐 보인 두 손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음식을 준비하는 손을 지나, 빵을 건네고 받아 드는 손으로 이어졌다. 한 입을 먹여 주는 손 앞에서는 기다리는 일을 생각했고, 강아지풀을 받쳐 든 손 앞에서는 누군가를 붙잡고 있던 내 마음을 돌아보았다. 처음에는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만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질문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된다.
그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다른 사람이 건네는 것을 기꺼이 받을 수 있는가.
내가 원하는 속도가 아니라 상대의 속도에 맞추어 기다릴 수 있는가.
그리고 내가 도운 사람이 내 기대와 다른 길을 선택하더라도, 여전히 그의 삶을 존중할 수 있는가.
이번 여정에서 나는 여러 사람의 손을 만났지만, 결국 가장 오래 들여다보게 된 것은 내 손이었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건넬 것인가 보다 어떤 마음으로 손을 내밀 것인가를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손을 내미는 마음만으로 충분하지는 않았다. 그 손이 닿을 사람의 뜻을 묻고, 대답을 듣고, 때로는 기다리는 일까지 배워야 했다.
어쩌면 누군가를 진정으로 돕는 일은 내가 그의 삶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자기 손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곁에 머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직 그 방법을 배우고 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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