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하루에는 여러 표정이 있었다.

웃는 얼굴에서 시작해, 웃음을 요구하지 않기까지

bySungang

내가 골라 보고 있던 얼굴들


글을 쓰기 위해 사진을 다시 고른다. 사진을 고르는 일은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때 보지 못했던 것을 뒤늦게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분명 내가 찍은 사진인데, 다시 보면 처음 보는 듯한 얼굴이 있다. 당시에는 지나쳤던 눈길이나 작은 몸짓이 오래 시선을 붙잡기도 한다. 그래도 처음 손이 가는 것은 웃는 얼굴이다. 웃는 얼굴은 보는 나도 편안하게 만든다. 아이가 환하게 웃고 있으면 좋은 순간을 담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나는 웃는 얼굴을 '좋은 사진'으로 먼저 골랐다.
내가 좋은 사진이라고 생각하는 또 하나의 기준은 이야기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사진 앞에서 잠시 멈추게 되는지, 사진 속 주인공에게 무언가 묻고 싶어 지는지. 사진을 보는 동안 그 사람과 말없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그렇다면 충분히 좋은 사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찾는 일에는 조심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사진 속 사람이 들여주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인지, 내가 떠올린 이야기를 그 사람에게 입히고 있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을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음을 알고 싶다는 바람이 어느새 마음을 안다는 생각으로 바뀌기도 했다.
사진들을 나란히 놓았다. 환한 웃음 옆에 작은 미소가 있었다. 다른 곳을 향한 눈길과 꼭 다문 입도 있었다. 어느 하나도 같은 얼굴은 아니었다. 아이들의 하루를 충분히 담고 싶다면, 내가 좋아하는 표정 밖으로도 눈을 돌려야 했다.


웃음이 먼저 나를 불렀다.


IMG_5361.JPG아이가 자신감 넘치는 동작으로 기분 좋게 웃고 있다.

하늘을 배경으로 아이가 웃고 있다. 손가락을 관자놀이 부근에 댄 모습이 내게는 경례처럼 보였다. 햇빛 아래 드러난 얼굴과 몸짓에서 자신감이 느껴진다. 물론 사진을 바라보는 나의 인상이다. 나는 먼저 웃음이 주는 기쁨을 한껏 받아들였다. 무슨 뜻인지 묻고 답을 찾아보기 전에 나도 미소 짓게 되었다. 사진 한 장을 바라보는 동안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타인의 웃음은 왜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할까?
낯선 사람을 만나면 나도 의식적으로 웃는 얼굴을 만든다. 말이 잘 통하지 않는 곳에서는 더욱 그렇다.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함께 있어도 괜찮다는 뜻을 전하려 한다. 상대가 웃어주면 나 역시 조금 안심한다. 서로를 잘 알지 못해도 웃음이 잠시 거리를 좁혀 주는 것 같다. 아이들이 웃으며 인사했을 때, 나는 우리를 반긴다고 받아들였다. 그 웃음 앞에서 마음을 열었다. 어쩌면 우리가 이곳에 와도 괜찮다는 확인까지 얻었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이 아이의 웃음을 우리의 선물이나 봉사가 만들어 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오기 전에도 아이에게는 웃을 일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떠난 뒤에도 이 웃음은 이어질 것이다. 내가 만난 것은 그중 한순간일 뿐이었다. 그래서 더 알고 싶었다. 무엇이 이 아이를 웃게 했을까? 카메라 앞에서는 자신만의 몸짓을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일까? 그때 어떤 말이 오갔는지, 무엇을 생각했는지 사진만으로는 알 수 없지만 이 아이의 웃음은 다시 나를 웃게 만든다.
그 웃음의 이유를 내가 모두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이유를 다 알지 못해도 함께 미소 지을 수는 있었다.


웃음에도 저마다의 모양이 있었다.


파란 체크무늬 옷을 입은 아이가 고개를 조금 기울이고 미소 짓고 있다. 입가에 든 손까지 표정의 일부처럼 보인다. 앞의 소년과는 웃음의 모양도, 몸을 드러내는 방식도 다르다. 처음에는 두 사진을 모두 '웃는 아이'라고 불렀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말만으로는 놓치는 것이 많았다. 눈매와 입꼬리, 고개의 각도와 손가락의 모양을 살펴보자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웃음이 완전히 달라 보였다.

IMG_5279.JPG한 아이가 알 수 없는 손동작을 보이며 웃고 있다.

나는 사진을 찍을 때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표정을 남기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자연스러움을 바라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웃는 모습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사진을 찍으며 흔히 건네는 '스마일'이라는 말에도 찍는 사람이 바라는 표정이 들가는 이유이다.
이 아이의 손짓은 특히 궁금했다. 손가락으로 만든 동그라미는 무슨 뜻일까? 괜찮다는 표시일까? 카메라 앞에서 해 보고 싶은 몸짓이었을까? 가볍게 돈을 뜻하는 손짓인가 하는 생각까지 스쳤다. 아이가 설명해 준 것도 아닌데, 나는 내가 아는 손짓의 의미를 하나씩 가져다 붙이고 있었다. 하나의 몸짓 앞에서 여러 이야기를 떠올렸지만, 그중 어느 것이 아이의 뜻인지는 알 수 없었다.
사진을 보는 즐거움에는 이런 궁금함도 있을 것이다. 다만 궁금함이 곧 답은 아니었다. 수줍어 보인다고 해서 수줍은 성격이라고 말할 수 없고, 장난스러워 보인다고 해서 늘 그런 아이라고 할 수도 없다. 같은 웃음이라고 불렀지만, 얼굴마다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은 달랐다. 그 차이를 조금 더 오래 바라보고 싶었다. 내가 아는 말로 서둘러 정리하지 않은 채로 말이다.


사진은 한순간만 붙잡았다.


아이의 젖은 머리와 얼굴을 따라 물방울이 흐른다. 고개를 기울인 채 카메라 쪽을 바라보고 있다. 빛을 받은 물방울과 눈길이 한순간에 멈추어 있다. 나는 이런 사진을 보면 잘 찍었다는 생각을 먼저 한다. 순간을 포착했고, 표정이 살아 있고, 물방울까지 담겼다. 좋은 사진이라는 표시를 해 두고 다음 사진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

IMG_5378.JPG얼굴을 씻던 아이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물이 흘러내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은 아이의 눈동자는 정말 깊다.

사진을 잘 찍었다는 만족과 아이를 이해하는 일 사이에는 거리가 있었다. 나는 물방울과 표정에는 관심을 기울이면서, 정작 그 아이가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었는지는 충분히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이의 삶보다 사진의 완성도를 먼저 보고 있었던 것이다.
사진을 다시 보면 아이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 아이는 왜 머리에 물을 적셨을까? 더위를 식히려 했을까? 그저 씻고 있었을까? 사진 속에 답은 없다.
웃음이 보이지 않자 또 이유를 찾게 된다. 힘든 것일까? 나에게 바라는 것이 있을까? 하지만 웃지 않는 얼굴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나 역시 하루 종일 웃고 있지는 않는다. 물을 마시거나 길을 걷거나 무언가를 바라볼 때, 내 얼굴에 어떤 표정이 떠 있는지조차 모를 때가 많다. 누군가 그 순간을 찍고 내 마음을 설명한다면, 나는 쉽게 동의하지 못할 것이다.
사진에는 앞뒤의 시간이 보이지 않는다. 이 아이를 따라가 집을 보고 하루를 함께 보냈다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고 할 수도 없었다. 설령 하루를 함께 보냈더라도 아이의 삶을 모두 알게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게 남은 것은 물방울이 흐르던 순간이다. 그 순간을 소중히 간직할 수는 있다. 다만 그 안에 담기지 않은 시간이 있다는 사실도 함께 기억해야 했다.


나를 바라보지 않는 시간


어두운 머릿수건 안으로 빛이 들어와 얼굴을 드러낸다. 아이의 시선은 아래로 향해 있다. 사진을 흑백으로 바꾸자 옷과 의자의 색보다 눈길과 얼굴의 명암이 먼저 다가왔다. 이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현장에서 많은 아이가 카메라에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인지 아래로 향한 이 눈길이 더 궁금했다. 내게는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처럼 보였다. 근심이 있는 것일까?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 것일까? 얼굴을 오래 들여다볼수록 마음속에 질문이 늘어났다.

ChatGPT 이미지 2026년 9월 24일 오후 11_29_29-1.png깊은 상념에 잠겨 있는 한 소녀를 바라본다. 그 소녀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을까? 이 소녀의 마음은 어떠한가?

근심과 걱정이라는 말은 아이에게서 들은 것이 아니었다. 내가 사진을 보며 떠올린 말이었다. 아이는 잠시 아래를 보고 있었을 뿐일 수도 있다. 조용한 얼굴을 슬픈 얼굴로 읽은 것은 나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 마음 가까이 가 보고 싶었다. 내게 시선을 주지 않아 불편해서라기보다,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다면 함께 느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처음 만난 아이가 나에게 마음을 열까? 알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어디까지 가까이 가도 되는 것일까? 어느 정도 이야기를 듣는다고 그 마음에 동감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숨어 있었을까? 도움을 주러 왔으니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이었을까? 누군가의 어려움에 필요한 사람이 될 때, 내 안의 빈자리도 채워지는 것은 아니었을까?
질문은 아이의 얼굴에서 시작했지만 어느새 내 안을 향하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이 얼굴에서 나의 마음을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혼자 생각에 잠기는 시간, 겉으로 다 드러내지 못한 마음, 누군가 알아주었으면 하면서도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 내 안에도 그런 자리가 있었기에 이 눈길을 오래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아이의 마음과 내 마음이 같다고 말할 수 없다. 내가 느낀 가까움과 아이가 실제로 느꼈을 마음은 구별되어야 했다.
궁금함을 모두 풀지 않은 채 사진 앞에 머물러 있었다. 아이가 나를 바라보지 않는 동안에도 아이의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그 시간을 내 쪽으로 돌려놓을 필요는 없었다.


웃지 않아도 괜찮았다.


아이가 고개를 들어 카메라를 바라본다. 눈에는 빛이 맺혀 있고 입은 다물고 있다. 웃음은 없지만 얼굴은 오래 시선을 붙잡는다. 이 표정을 만든 마음도 궁금해진다. 이 아이의 표정은 왜 이렇까? 낯선 사람이 가까이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ChatGPT 이미지 2026년 9월 24일 오후 11_29_31-2.png귀여운 얼굴, 알 수 없는 입모양, 호기심 가득한 얼굴의 아이가 나를 바라보았다.

사진을 대할 때 나는 공감보다 분석과 해석이 앞설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저 표정은 무슨 뜻일까?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해하고 싶어서 시작한 생각인데, 어느 순간 상대의 반응을 계산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였다. 이 사진 앞에서도 비슷했다.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그 마음을 읽으려 했다. 정작 아이는 아무 설명 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데, 나는 그 눈길에 이름을 붙이고 싶어 했다. 상대가 내 기대와 다른 표정을 지을 때도 같은 마음으로 대할 수 있을까? 웃음이나 감사의 반응이 없으면 만남이 잘못되었다고 느끼지는 않을까? 상대를 위한다고 하면서, 나를 안심시켜 줄 반응까지 바라는 것은 아닐까?
그러다 문득 내 얼굴을 생각했다. 나는 사람들 앞에서 있는 그대로의 표정을 보여 주고 있었을까? 언제부터인가 사람을 만나기 전에 얼굴을 준비하는 것 같다. 상대가 편안하도록 웃고, 좋은 인상을 주려고 표정을 살핀다. 그런 웃음에는 배려도 있다. 그러나 언제나 내 마음까지 편안했던 것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상대를 안심시키기 위한 표정, 일명 포커페이스였으니 솔직한 얼굴은 아니었다. 마음이 복잡한 날에도 웃어야 할 때가 있었다. 내 표정 때문에 상대가 불편해할까 봐, 무슨 일이 있느냐는 질문에 답하기 어려워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지내려 했던 때도 있었다. 그렇게 웃는 얼굴에 익숙해진 나는 다른 사람에게도 비슷한 표정을 기대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이 아이는 사진을 보기 좋게 만들기 위해 웃어야 할 이유가 없다. 낯선 방문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자기 얼굴을 바꿀 필요도 없다.
사진을 다시 보았다. 아이는 웃지 않고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얼굴에 무엇인가 더해져야 한다고 생각한 쪽은 나였는지도 모른다. 더할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


내가 기억하고 싶은 모습 너머로


처음 사진을 고를 때는 웃는 얼굴에 먼저 손이 갔다. 그 얼굴을 보면 나도 기분이 좋았고, 좋은 시간을 보내고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을 다시 살펴보면서 작은 미소와 아래로 향한 눈길, 다문 입에도 머물게 되었다. 그렇다고 이제 아이들의 마음을 더 잘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조금 더 분명해졌다.
좋은 사진에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은 같다. 다만 그 이야기를 내가 모두 찾아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사진은 답을 주기보다 질문을 남긴다. 그 질문을 오래 품고 있는 것도 사진 속 사람을 만나는 한 가지 방식이다. 아이들의 하루를 기억한다는 것은 내게 좋은 느낌을 주는 순간만 남기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 표정, 내게 향하지 않은 시선도 그 하루에 함께 있었다.
사진을 고르던 일은 어느새 내 곁의 사람들을 생각하는 일이 되었다. 누군가 조용하면 이유를 묻고, 표정이 굳어 있으면 나와 관련된 일인지 살피고, 웃어 주면 비로소 안심했던 순간들. 관심이라고 생각했던 마음 안에 나의 기대도 섞여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늘 웃는 얼굴로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으면 좋겠다.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 때는 잠시 조용해지고, 웃음이 나오지 않는 날에는 억지로 표정을 만들지 않아도 되는 관계. 내가 그런 자리를 바란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그만큼의 자리를 내어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아이들의 하루에는 여러 표정이 있었다.
나는 내 곁의 사람들에게도, 내가 편안해지는 표정을 기대하고 있지는 않을까.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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