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인간 앞에 서다.

오래된 흔적에서 오늘의 거리까지

bySungang

내가 알고 있던 시간은 짧았다.


에티오피아에서 찍은 사진을 펼치면 내가 도착한 날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준비한 물품을 챙기고, 사람들을 만나고, 낯선 길을 걷던 날들. 사진 속 장면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머문 며칠이 이곳을 설명하는 시간의 전부인 듯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다 루시의 사진 앞에서 멈춘다. 내 방문 일정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 그 안에 있다. 나는 이곳에서 보낸 며칠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며칠을 품고 있던 시간은 얼마나 길었을까.

내가 잠시 지나온 이 땅에서, 사람들은 얼마나 오래 자신의 하루를 살아왔을까.


루시 앞에서 나의 시간이 작아졌다.


박물관에 전시된 루시의 골격을 마주한다. 남아 있는 뼈의 흔적 앞에서, 나보다 아득히 먼저 이 땅을 걸었던 존재를 생각한다.

그 유명한 루시 앞에 섰다. 유리 안에는 골격을 복원한 전시물이 놓여 있었다. 루시는 약 320만 년 전 살았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화석이다. 오래된 몸의 상당 부분이 남아 있어, 초기 인류의 몸과 두 발로 걷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 이름을 확인한 뒤에도 시선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머리에서 갈비뼈로, 골반에서 다리로 눈길을 옮겼다. 그리고 두 발을 바라보았다. 아주 오래전 이 땅을 딛고 살아간 존재의 흔적이 내 앞에 있었다. 루시가 남긴 것 가운데 사람들이 가장 오래 이야기한 것은 두 발이었다. 320만 년 전 이 땅을 두 발로 걸었다는 사실. 나는 그 설명을 읽고 유리 앞에 서 있었고, 내 두 발도 바닥을 딛고 있었다. 그 사이의 시간은 내가 세어 볼 수 없다. 다만 같은 동작이 거기 있었다.
사진을 다시 보면서 유리 밖에 서 있던 내 몸을 생각한다. 바닥에 닿아 있던 두 발, 카메라를 쥔 두 손, 전시물을 바라보던 두 눈. 루시를 바라보는 동안에는 의식하지 못했던 몸이다. 나는 이 몸으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한 물품을 준비했고, 짐을 들고 비행기를 탔으며, 낯선 길을 걸었다.

에티오피아 이야기를 쓰면서 나는 누구를 만났고 무엇을 느꼈는지, 내 생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돌아보았다. 그 이야기의 시작에는 늘 내가 도착한 날이 있었다. 그러나 루시 앞에서 생각하는 시간은 내 여행 일정으로 헤아릴 수 없었다.

내게는 처음인 땅이었지만, 이 땅의 이야기는 내가 도착하기 훨씬 전에 시작되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긴 시간이 있었고, 지금 만나는 사람들의 하루도 그 위에 놓여 있었다. 내 방문 역시 이미 이어지고 있던 이야기 안으로 잠시 들어온 일이었다.

루시의 사진을 오래 바라본다. 설명을 더 많이 아는 것과 그 앞에서 내 자리를 생각하는 것은 조금 다른 경험이었다. 나는 무엇을 보고 돌아온 것일까.


출처: Smithsonian National Museum of Natural History, Human Origins Program, “AL 288-1".


계단을 오르내렸을 사람들


나는 이런 건축물을 보면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자리가 궁금해진다. 누가 이 계단을 오르내렸을까. 무슨 일을 하러 갔고, 어떤 마음으로 돌아섰을까. 신전이었을까, 왕궁이었을까. 정확한 용도를 알지 못한 채 생각이 뻗어 나간다. 기도하러 오르는 걸음과 누군가를 만나러 오르는 걸음은 달랐을 것이다. 같은 계단에서도 사람마다 기다리는 일과 바라는 것이 달랐을 것이다. 그것은 모형에서 확인한 사실이 아니라, 계단을 보며 내가 떠올린 질문들이다.

실제 유적을 촬영한 사진이 아니라 전시된 모형이다. 계단에 초점이 모이고 주변 공간이 흐려지는 구도가 좋다.

연대와 이름으로 읽던 역사 안에 하루가 있었음을 생각한다. 이름이 기록된 사람도, 기록되지 않은 사람도 각자의 일을 하며 그 시간을 지나갔을 것이다. 내가 사는 하루처럼 그들에게도 그날 처리해야 할 일과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었을까?

사진 속 계단은 비어 있다. 그런데 그 빈 계단을 바라볼수록 건물의 크기보다 그곳을 지나갔을 사람들의 걸음이 먼저 보인다.


사람이 머무는 자리


나무 울타리 사이로 집과 마당이 보인다. 높은 지붕 옆으로 나뭇가지가 드리워지고, 울타리 한쪽에는 꽃이 피어 있다. 모형 속 공간을 생각하다가 이 사진을 보면, 시선이 다시 내가 다녀온 날의 풍경으로 돌아온다.

높은 풀지붕 아래 집 한 채가 나무와 울타리에 둘러싸여 있다. 내게는 낯선 풍경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는 집일 것이다.

낯선 집의 모양을 바라보다가, 사람이 머물 자리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안전함과 편안함, 하루를 보내고 돌아와 쉴 수 있다는 느낌. 집의 재료와 모양은 달라도 그런 바람에는 내가 아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 이 집은 언제 지어졌을까? 이 문을 열고 들어온 걸음이 몇이나 될까. 하루를 마치고 돌아온 걸음들이 이 마당을 지나 저 문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나에게 집은 쉼의 공간이다. 밖에서 하던 역할을 잠시 내려놓고 혼자 있을 수 있는 곳. 다른 사람들과 나 사이에 경계를 두고, 닳은 기운을 되찾는 곳이다. 문을 닫고 들어와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인다.

이 집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편안함은 어떤 모습일까. 내가 익숙한 시설과 배치가 없다고 해서 그들이 집에 기대는 마음까지 다르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사진 한 장을 보며 나와 똑같다고 말할 수도 없다.
나는 외형보다 삶의 자리를 오래 보려 한다. 그래도 그 삶을 생각할 때 꺼내 드는 기준은 대개 내가 살아온 집이다. 울타리 너머의 집을 바라보며 그 기준을 조금 느슨하게 해 본다.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방식 밖에도 사람이 자기 자리를 만들고 쉬는 여러 방식이 있을 것이다.


같은 거리에 서로 다른 하루가 있었다.


가게 앞에 일행이 서 있다. 채소가 진열되어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한 사람이 바닥을 청소한다. 도로에는 차가 지나간다. 한 화면 안에서 서로 다른 일들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

채소가 놓인 가게 앞을 방문자들이 지나고, 한 사람은 거리를 쓸고 있다. 내가 잠시 머문 거리에서도 사람들은 저마다의 일을 이어 가고 있었다.

내게는 여행 중 잠시 지나간 거리였다. 그런데 사진을 다시 보니, 내가 머문 그 순간에도 다른 사람들의 하루는 각자의 일로 채워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가게 앞에 서 있었고, 누군가는 빗자루를 움직였으며, 누군가는 길을 지나갔다.

돌아보면 나는 내 일은 기억하지만, 같은 시간과 공간에 있던 사람들의 일을 모두 기억하지는 못한다. 내가 누구를 만났고 어디로 갔는지는 떠올리면서도, 그 옆에서 무엇이 이루어지고 있었는지는 쉽게 지나친다. 내 기억의 중심에 내가 있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사진은 그 바깥에도 시간이 흐르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우리는 잠시 서로에게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고, 별다른 일 없이 스쳐 갔을 수도 있다. 그 만남의 크기를 따지기 전에, 각자가 자기 일을 하며 이 순간을 살고 있었다. 내 여행에 특별한 장면으로 남은 순간이 누군가에게는 익숙한 하루의 한 부분이었을 것이다.

그 한쪽에 카메라를 든 나도 서 있었다.


오늘도 이야기는 이어지고 있다.


아디스아바바의 도서관 앞, 길게 펼쳐 놓은 바카라들 사이로 사람들이 오간다. 오래된 인간의 흔적을 찾아온 여행에서, 오늘의 이야기를 읽고 쓰는 사람들을 만난다.

아디스아바바 아브르호트 도서관(Abrehot Library) 앞. 탁자 위로 바카라이 길게 늘어서 있다. 사람들은 그 사이를 걷고, 바카라을 살피고,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바카라 더미를 따라 사진 안쪽으로 눈길을 옮기면 또 다른 사람들이 보인다.

나는 에티오피아를 떠올릴 때 흙과 대지를 먼저 그렸다. 그러나 아디스아바바에서 만난 이 장면은 그 예상에 들어 있지 않았다. 도시의 건물과 유리벽, 바카라이 놓인 탁자와 그 앞에 모인 사람들. 내가 그려 두었던 에티오피아의 모습이 얼마나 한쪽으로 치우쳐 있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이곳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읽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사진 속 바카라의 내용을 읽어 본 것도 아니다. 다만 바카라을 살피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관심을 가졌던 것 밖에도 이들의 관심과 생각이 넓게 펼쳐져 있으리라는 사실을 생각한다.

루시의 오랜 시간에 감탄하던 내 시선이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돌아온다. 이곳의 이야기는 박물관에만 있지 않았다. 바카라을 고르는 손과 대화를 나누는 얼굴, 그 사이를 지나가는 걸음에도 이어지고 있었다.

내가 사진과 글로 남긴 에티오피아에는 어떤 모습이 많이 담겼을까. 무엇은 반복해서 찍었고, 무엇은 뜻밖이라고 느꼈을까. 이 사진이 예상 밖이었다는 사실은, 내가 이곳을 어떤 모습으로 생각해 왔는지 보여 준다.

사진 속 사람들은 내가 준비한 이야기의 결말을 위해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각자의 관심으로 바카라 앞에 서 있었고, 자기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들이 다음에 어떤 바카라을 펼쳤는지 나는 모른다. 이제는 그 모르는 이야기도 궁금하다.


나는 그 시간의 일부를 지나왔다.


사진을 덮으려다 바카라이 놓인 거리를 한 번 더 본다. 처음에는 에티오피아에서 내가 보고 겪은 일을 정리하려 했다. 그런데 사진을 다시 볼수록 내 경험이 미처 닿지 못한 사람들의 시간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머무는 동안에도 수많은 하루가 내 방문과 관계없이 흘렀다. 나는 그중 일부를 지나왔고, 카메라가 향했던 몇 장면을 가지고 돌아왔다.

나는 에티오피아의 삶 전체를 알게 된 것이 아니다. 그 장면에 함께 있었지만 내가 알아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루시 앞에서는 내 뒤로 길게 뻗은 시간을 보았고, 거리에서는 내 옆으로 나란히 흐르는 시간을 보았다. 나는 그 두 시간이 만나는 자리에 며칠 서 있었다.

바카라이 펼쳐진 탁자 앞에서 한 사람이 손을 뻗고 있다. 길을 걷는 사람의 발은 다음 걸음으로 옮겨가는 중이다. 나는 그 순간 셔터를 눌렀다. 사진에 남지 않은 다음 순간에도, 그들의 하루는 이어졌을 것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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