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과 얼굴 사이에 생겨난 것

사람은 혼자 빛나는 얼굴이 아니라 서로의 곁에서 살아가는 존재였다.

bySungang

얼굴에서 얼굴 사이로


지난 화에서 나는 가까이 마주한 얼굴과 웃는 얼굴, 다른 아이를 업은 얼굴, 눈물과 미소가 함께 보이는 얼굴 앞에서 쉽게 해석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그러나 얼굴은 홀로 존재하지 않았다. 한 사람의 얼굴 가까이에는 또 다른 얼굴이 있었고, 그들 사이에는 사진 한 장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관계가 흐르고 있었다.
한 사람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자 그 곁에 있는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혼자 서 있지 않았다. 누군가와 나란히 있었고, 어깨를 맞대고 있었으며, 서로의 몸을 끌어안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우정이나 사랑이라는 익숙한 말로 곧바로 설명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의 정확한 관계와 마음을 알지는 못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사람의 얼굴은 다른 얼굴과 마주할 때 전혀 다른 표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같은 자리에 머무는 것부터


특별한 사진은 아니다. 포옹도 없고, 눈물도 없고, 사연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이 사진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IMG_5253.JPG놀이터 난간에 아이들이 붙어 서 있다. 한 아이는 난간을 잡고, 한 아이는 카메라를 향해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인다. 뒤로는 초록색 옷을 입은 아이들이 뛰어다닌다.

관계는 반드시 포옹이나 특별한 행동으로만 표현되지 않는다. 같은 공간에 머물고 같은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관계의 가장 기본적인 모습이다.
함께 있으면 혼자서는 못 하던 일을 하게 된다. 난간에 먼저 올라간 아이가 있었을 것이고, 그 모습을 보고 따라 올라간 아이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두 아이가 친구인지 형제인지 모른다. 굳이 알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서로 남남이어도, 먼저 해 보는 사람을 보고 용기를 낸 사람은 적어도 그 자리에서만큼은 친구보다 가깝다.
거창한 모험이 아니어도 우리는 그렇게 친밀해져 왔다. 나는 1970년대에 태어났다. 오징어 달구지, 다망구(다방구), 진돌(짐돌이), 숨바꼭질 등 다양한 골목놀이를 하고 자랐다. 약속을 한 적도 없는데 해가 질 때까지 같은 골목에 있었고, 그 시간이 관계가 되었다. 지금 우리는 무엇으로 그 시간을 대신하고 있을까?
이곳에 와서 알게 된 것이 있다. 극적인 도움보다 평범하게 곁에 머무는 일이 무엇인지. 어쩌면 나는 그것을 배우려고 여기까지 왔는지도 모른다. 관계는 거창한 약속이 아니라, 같은 자리에 머물며 같은 시간을 보내는 데서 시작되고 있었다.


관계는 한 사람의 빛을 지우지 않았다.

IMG_6189.JPG한 소녀가 웃고 있다. 뺨에는 작은 나무 한 그루가 붙어 있다. 우리가 나누어 준 스티커다.

아이들은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하게 머리를 땋는다. 처음 며칠 동안 나는 아이들의 얼굴을 자주 헷갈렸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사실이다. 함께 하다 보면 서로 같아진다고 자연스레 생각했다.
스티커를 붙여 주는 일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가벼운 놀이라고 생각했다. 잠깐 웃고 끝날 프로그램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스티커를 붙이고 나서 아이들이 달라졌다. 서로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누가 무엇을 골랐는지 확인하고, 거울이 없으니 친구의 표정으로 자기 얼굴을 확인했다. 이 아이는 에티오피아의 어느 소녀가 아니라, 뺨에 나무를 붙인 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스티커 한 장으로 사람의 개성을 말하는 것은 지나친 해석일지 모른다. '내가 너무 거창한가?' 그래도 나는 웃고 말았다. 관계가 사람을 획일화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사실을 뺨에 붙은 종이 한 장이 알려 주고 있었다.
사진 속 웃음으로 이 아이의 삶 전체를 알 수는 없다. 다만 이 순간만큼은 자기 자신으로 빛나고 있었다. 함께 산다는 것은 같아지는 일이 아니라, 같이 있으면서도 서로의 다름을 지켜 주는 일이다. 공동체는 한 사람의 얼굴을 감추는 곳이 아니라, 서로 다른 빛이 드러나도록 자리를 내어 주는 곳이어야 한다.


서로를 끌어안은 거리

IMG_5415.JPG두 아이가 서로를 끌어안고 카메라를 본다.

키가 큰 아이가 작은 아이의 어깨를 감쌌고, 작은 아이는 그 품에 기대어 있다. 나는 큰 아이가 작은 아이를 보호하고 있다고 쓰려다가 멈추었다. 이 사진에서는 누가 강하고 누가 약한지 알 수 없다.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몸을 열고 있다는 사실만 보인다.
나는 사진을 보면서 나에게 물었다. 나는 누구의 어깨에 팔을 두를 수 있는가? 내 어깨를 내어 준 사람은 누구인가? 몸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신뢰한다는 뜻이다. 아이들은 아무에게나 기대지 않는다. 어깨를 맞댄 가까움은 서로를 더 깊이 받아들이는 자세이다. 마주 보지 않고 같은 곳을 보고, 붙잡는 것도 아니고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닌 상태이다. 어깨동무는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일방적으로 지탱하는 자세가 아니다. 팔을 두른 쪽도 상대에게 몸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두 아이의 어깨가 맞닿은 자리에는 누가 누구를 돕는지 구분할 수 없는 가까움이 있었다.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오랫동안 누군가를 품으려면 내 품이 넓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여유가 있어야 하고, 내 문제가 정리되어야 한다고. 내 코가 석 자인데 누굴 안아 주겠느냐는 식의 생각.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여기서 알게 되었다. 이처럼 누군가의 곁에 선다는 것은 같은 높이에서 어깨를 내어 주는 일이다. 그리고 포옹은 상대의 삶을 대신 짊어지는 일이 아니라, 그 삶이 혼자 놓여 있지 않도록 자신의 품을 내어 주는 일이다.


한 사람의 곁이 공동체가 되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 시작된 가까움은 더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다른 모양이 되었다.

IMG_5405.JPG한 봉사자를 여러 아이가 에워싸고 강강술래를 하는 듯 어울리고 있다.

나는 처음에 이 장면을 한 사람이 아이들에게 다가간 것으로 보았다. 도움을 주러 온 사람과 도움을 받는 아이들. 익숙한 구도다. 그러나 그 어른은 아이들의 구원자가 아니고, 아이들도 도움을 요청하려고 그 곁에 선 것이 아니었다.
원은 한 사람이 만들 수 없다. 손을 내민 사람이 있으면 잡아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그 옆 사람도 잡아야 원이 닫힌다. 한쪽이 일방적이었다면 이런 모양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누가 먼저 다가갔는지보다, 서로가 어떤 자리를 내어 주었는지가 원의 모양을 만든다.
만남은 한 사람의 선행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만든 사건이었다. 한 사람이 아이들에게 다가갔다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면 아이들도 그 사람을 자기들의 원 안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한 끼의 자리를 나누는 일


운동장의 원은 저녁이 되자 밥상의 원이 되었다.

IMG_6021.JPG아이들이 둘러앉아 음식을 먹고 있다.

어떤 아이는 음식을 입으로 가져가고 있고, 어떤 아이는 카메라 쪽을 바라본다.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것을 먹으면서도 표정과 몸짓은 저마다 달랐다. 사진을 바라보며 나는 누군가와 가까워진 순간들을 떠올렸다. 특별한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도 있었지만, 별다른 말 없이 마주 앉아 밥을 먹었던 시간도 있었다. 무엇을 해 주어야 할지 몰라도 함께 먹을 수는 있었다. 대답을 찾지 못한 이야기가 남아 있어도 식사는 이어졌다.
자리를 조금 옮겨 옆에 앉을 공간을 만들고, 음식을 건네고, 상대가 먹는 동안 함께 머무는 일. 관계를 이어 주는 것은 그렇게 작고 반복되는 행동이었다.
포옹은 사건이지만 끼니는 반복이다. 포옹이 끝난 뒤에도, 함께 웃던 순간이 지나간 뒤에도, 우리는 다시 먹고 살아가야 한다. 어깨를 내어 주는 마음과 서로를 품는 마음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아마 이 평범한 자리에서 드러날 것이다. 물론 한 장의 사진으로 이 아이들이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 모두 알 수는 없다.
어깨를 내어 주는 마음과 서로를 품는 마음은 이런 일상에서도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포옹이 끝난 뒤에도, 함께 웃던 순간이 지나간 뒤에도, 우리는 다시 먹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누군가의 삶을 얼마나 바꾸었는지 먼저 묻곤 했다. 이제는 다른 질문을 해보고 싶다. 내 하루에는 누군가와 함께 앉을자리가 있는가. 나는 그 사람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만 생각하다가, 함께할 수 있는 평범한 시간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얼굴과 얼굴 사이에 생겨난 관계는 그렇게 한 끼의 자리에서도 이어지고 있었다.


곁은 서로에게 내어주는 자리였다.


사람들은 혼자 서 있지 않았다. 누군가와 같은 자리에 머물렀고, 어깨를 맞댔으며, 서로를 품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서로 같은 사람이 된 것은 아니었다. 각자의 얼굴은 관계 안에서도 고유한 표정과 빛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의 곁은 한쪽이 베풀고 다른 쪽이 받는 자리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몸을 기울였고, 자신의 어깨와 품을 내어 주었다. 누가 누구를 지탱하는지 분명하게 나눌 수 없었다.
어쩌면 공동체란 같은 생각과 같은 삶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 아닐 것이다. 서로 다른 얼굴들이 한 사람도 혼자 남지 않도록 자리를 내어 주는 관계일 것이다. 곁은 누군가를 내 쪽으로 끌어오는 자리가 아니라, 그 사람이 자기 모습으로 머물 수 있도록 내어 주는 자리였다.
그들은 서로의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았지만,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서로의 곁이 되어 주고 있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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