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내어 준 자리에 머물다.

바라보는 사람에서 곁에 서는 사람으로

bySungang

가까이 갔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삶 가까이 다가간 방문자로 머물 것인가, 그들이 내어 준 자리에서 한 사람으로 관계를 맺을 것인가?"

지난번 이야기에서 나는 물을 길어 나르는 사람들, 시장에서 만난 한 남성, 연기와 불이 있는 골목과 집 안의 생활공간을 바라보았다. 그 과정에서 낯선 삶을 성급하게 판단했던 나 자신의 시선을 돌아보고 반성한 것도 그 안에서였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갔다는 것만으로 그들과 가까워지지는 않는다. 나는 그들 곁으로 다가가려고 애썼지만, 그곳에서 내가 한 일은 결국 자세히 보는 일이 전부였다. 생활공간을 보았다고 해서 그곳에 사는 사람을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가까이 다가가는 것과 관계를 맺는 것은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삶 가까이로 간다는 것은 그들을 자 세히 관찰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이 내어 준 공간과 시간 안에 머물고, 눈높이를 맞추며, 그들이 이미 만들어 가는 삶에 조심스럽게 힘을 보태는 관계로 나아가는 일이어야 한다. 일정 기간 봉사하러 온 사람으로만 남는다면 그들 곁에 다다를수 없을 것 같았고, 친교를 맺겠다고 먼저 마음 먹는 것은 그것대로 교만해 보였다. 어느 쪽도 답이 되지않았다. 답을 정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었다.

IMG_6017.JPG그들이 내어 준 삶의 자리. 에티오피아 전통가옥

함께 밭일을 하고, 저녁 초대를 받아 그들의 집으로 들어섰다. 가운데 화로가 있고, 화로에는 무언가를 끓이고 있었다. 집 가운데 화로가 있다면 연기를 어떻게 하나 싶어 고개를 들어보니 삼각뿔 형태의 지붕끝에 환기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조금의 연기와 매운 냄새가 집 안에 가득했지만 연기는 자연스럽게 천정 환기구를 향해 밖으로 나갔다. 물어보니 에티오피아 전통 가옥의 형식이라고 한다. 지난 번 방문한 가정집은 사실상 개량형 현대식 가옥이었던 셈이다. 현대식 가옥도 전통 가옥의 화로를 사용하는 생활 방식은 유지했던 모양이었다.

처음 집의 문턱을 넘어섰을 때, 밝지 않고, 캄캄해서 내부를 쉽게 확인할 수 없었다. 전통식 가옥에는 창문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둠에 익숙해질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난 후, 나는 집 안을 자세히 확인 할 수 있었다. 우선 가운데 화로를 중심으로 오른쪽은 남성의 공간이었고, 왼쪽은 여성과 아이, 그리고 가축의 공간이었다. 또한 가운데를 기점으로 부엌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고, 남성 공간의 한 켠에 육류를 말리는 공간도 있었다. 남녀의 공간을 구분하는 것도 현대적 관점에서 놀라웠지만 가축이 사람이 머무는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다는 것에 더 놀랐다. 분명 그들의 삶에서 가축은 매우 중요한 자원이었으리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IMG_6025.JPG생활 공간에 함께 하는 가축과 아이들.

화로를 중심으로 한 공간에는 이미 그들의 저녁과 노동, 대화와 기다림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언어(암하라어)를 몰랐기에 통역을 해주시는 분의 도움과 바디랭귀지로 그들과 대화를 나눴다. 일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본 후 나는 별실로 가서 식사를 하였다. 외국인이 실제 그들의 생활 공간에서 식사를 하게 하지 않고 별실로 안내한 것도 우리를 위한 배려였다. 별실이라고 해서 음식이 특별했던 것은 아니었다. 실제 그들이 먹는 현지식이었는데, 우리 입맛에도 잘 맞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를 집중시킨 것은 에티오피아의 커피였다. 현장에서 커피콩을 볶는 로스팅 냄새는 빵을 굽는 냄새와 같이 구수하였다. 나는 구운콩을 먹어 볼 수 있는 지 물어보고 따뜻한 콩을 먹어 보았는데, 생각보다 맛있었다. 그리고 커피향과 맛은 정말이지 잊을 수 없을 정도로 향긋하고 달콤했다.
별실은 배려인 동시에 내가 아직 손님이라는 표시이기도 했다. 나는 그 표시를 서운해할 자격이 없었다. 그 집의 어둠에 눈이 익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했는데, 한 사람의 삶에 눈이 익는 데에는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 것인가? 나는 그곳을 관찰하기 위해 들어간 방문자였지만, 그 공간에 머물 권리가 처음부터 내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자신의 생활공간을 감추지 않고 내어 주었기에 나는 잠시 그들의 시간 가까이에 앉을 수 있었다. 관계는 내가 문턱을 넘은 데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 문턱 안에 내 자리를 허락해 준 데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나보다 훨씬 오래 그 시간 안에 머물러 온 사람이 있었다.


관계의 시간과 기다림, 그리고 초대하는 손


IMG_5308.JPG일상의 놀이와 웃음, 그리고 수녀님

수녀님의 웃음은 우리와 같은 방문자가 도착해서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쁨이 아니었다. 수녀님이 현지에서 그들과 함께 살며 쌓아온 시간과 신뢰가 한순간에 드러난 장면이다. 아이들은 오랫동안 자신들의 곁에 머물러 온 수녀님을 향해 달려들었다. 사진 한 장에는 웃음만 담겼지만, 그 웃음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사진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날이 필요했을 것이다. 나는 이 관계에 바로 참여한 사람이 아니라 한국에서 온 방문자이며 카메라 뒤에서 이를 목격한 사람일 뿐이었다. 카메라는 나를 수녀님과 아이들 가까이 데려다주었지만, 동시에 내가 이 장면 밖에 서 있다는 경계를 분명히 알려 주기도 했다.
수녀님은 관계를 맺는 기술을 가진 분이 아니라 그 자리를 떠나지 않은 분이었다. 나는 일정 기간 머물다 떠날 사람이었고, 수녀님은 우리가 떠난 다음 날도 그곳에 있을 사람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관계는 한 번의 방문이나 몇 마디 인사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다시 느끼게 되었다. 내게 필요한 것은 기술과 방법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그러나 시간은 배워서 단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바라보며 사진에 남긴 것은 수녀님의 웃음이 아니라 그 웃음 뒤에 쌓인 시간이었다. 그러던 중 한 아이가 내게도 가까이 다가왔다.

IMG_5255.JPG손 내밀며 나를 초대해주는 아이

한 아이가 내민 손.

이 손은 나에게 아이들의 얼굴들보다 더 가까이 다가왔다. 초대는 말로 오지 않고, 한 아이의 손으로 왔다. 언어를 몰라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받은 초대는 모두 어른들에게서 온 것이었다. 함께 밭일을 하자는 부름, 저녁 식사에의 초대, 별실로 안내하던 손, 그것은 환대였고 예의였다. 환대와 예의에는 조심스러운 거리감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내민 손에는 그 거리가 없었다. 그래서 더 정확했다. 아이의 손을 기다렸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 손이 오자,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를 고민하며 여러 번 되뇌었던 마음이 필요 없어졌다. 내가 구하려던 허락을 아이가 먼저 건네준 것이다.
나는 그 아이가 내민 초대의 손을 잡기 위해 카메라를 내려놓아야 했다. 두 손으로 카메라를 들고 있는 한 나는 초대의 손을 잡을 수 없었다. 관찰자의 자리에만 머물렀다면, 참여자가 되려는 용기가 없었다면, 그리고 이 아이가 초대의 손을 내밀지 않았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순간이었다. 어른들의 초대가 문턱을 열어 주는 일이었다면, 아이의 초대는 이제 손을 잡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비로소 카메라를 내려놓고 관찰자에서 걸어 나와 만남 안으로 들어가 설 수 있었다.


바라보는 사람에서 함께하는 사람으로


이제 우리는 아이와 함께 웃고 움직이는 참여자가 되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나’에서 ‘그들과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나’로 우리의 자리가 바뀌었다. 우리의 바뀐 자리는 한 장의 사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아래 사진에는 아이의 얼굴만 보이고, 아이를 들어 올린 사람의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의 자세만으로도 두 사람 사이에 무엇이 오갔는지 알 수 있다.

IMG_6095.JPG봉사자로 함께 한 신부님이 아이와 함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이는 팔을 벌린채 두 손을 허공에 마치 날개처럼 펼치고 있다. 자기를 들어 올린 사람의 어깨나 팔을 잡는 대신, 아이는 몸을 완전히 맡기고 있다. 떨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자세이다. 한 쪽에 의해 일방적으로 만들어지는 자세가 아니다. 그리고 아이를 저렇게 들어 올리려면 먼저 몸을 낮춰야 한다. 사진 속 봉사자는 아이보다 아래에 있고, 아이의 무게를 온전히 받고 있는 쪽도 그 봉사자이다. 봉사자가 아이에게 무엇을 주는 장면처럼 보이지만, 실은 아이에게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아이에게 기쁨을 주었다고 말하는 순간, 나는 다시 주는 사람의 자리에 서게 되고 아이는 받는 사람의 자리로 밀려난다. 그것은 내가 조금 전까지 벗어나려고 애쓰던 자리였다. 그날 그곳에서 있었던 일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서로의 존재를 받아들이며 함께 기뻐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관계가 멀리서 바라볼 때가 아니라 서로의 몸과 웃음이 닿을 때 시작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만 함께 웃었다고 해서 그 사람에 대해 전부 알게 된 것은 아니었다. 웃음은 문을 열어 주었을 뿐이고,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데에는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이 필요하다. 관계는 함께 움직이는 일이기도 했지만, 때로는 걸음을 멈추고 상대의 속도를 기다리는 일이기도 했다.


그들은 함께 삶의 터전을 일구고 있었다.


IMG_5969.JPG그들은 에티오피아식 농사법과 농기구를 사용하며 삶의 터전을 일구고 있었다.

여러 사람이 한 줄로 서서 긴 자루의 농기구를 함께 땅에 내리찍고 있었다. 나이 든 사람과 젊은 사람이 섞여 있었고, 무엇보다 동작의 박자가 서로 맞아 있었다. 누가 가르쳐 준 박자는 아니었을 것이다. 오랫동안 함께 일해 본 사람들 사이에서만 생기는 리듬이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한 사람의 힘으로는 열리지 않는 땅이었기에 그들은 오래전부터 그렇게 함께 일해 왔을 것이다.
나는 그 줄의 바깥에 서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사람이 나에게 도구를 넘겨주며 해보라는 손짓을 하였다. 그래서 나도 밭을 일구는 일에 참여하였다. 그들이 할 때는 가볍게 보이던 농기구가 잡는 순간 너무 무거웠다. 그리고 그들의 노동 리듬을 맞추기 위해 애를 써야 했는데, 몇 분 지나지 않아 나는 오히려 방해꾼이 되었다.
농기구를 건네 받을 때 나는 쉽게 그 자리를 채워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이 오래전부터 터득한 삶의 리듬을 한 번에 따라갈 수는 없었다. 그 순간 배움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나였다. 에티오피아로 봉사활동을 계획할 때 나는 일방적으로 그들이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상황이 뒤집힌 셈이었다. 그들은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리며 멈춰 서 있지 않았고, 서로의 힘을 모아 자신들이 살아갈 땅과 공동체의 내일을 이미 일구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그들이 도움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삶과 공동체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 주체로 바라보게 되었다.

우리는 얼마 뒤에 그곳을 떠날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 땅은 그대로 남을 것이고, 이 땅을 계속 일굴 손도 그곳에 남을 것이다. 그 사실을 생각하자 물음의 방향이 달라졌다. 그들의 곁에 선다는 것은 그들을 대신하는 일인가, 아니면 그들이 이미 함께 일구고 있는 삶에 필요한 힘을 보태는 일인가?

대신하는 사람이 아니라 곁에 서는 사람


우리의 만남을 가능하게 한 것은 나의 걸음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낯선 방문자에게 자신의 공간과 시간, 웃음과 시선을 내어 주었다. 돌이켜 보면 지금까지 내가 그곳에서 한 일은 계획된 봉사도 있었지만 대부분 무엇을 내려놓는 일에서부터 시작하였다. 어둠에 눈이 익을 때까지 기다리는 일, 카메라를 내려놓는 일, 아이가 내민 손을 잡기 위해 몸을 낮추는 일. 가까이 간다는 것은 무언가를 들고 들어가는 일이 아니라, 들고 있던 것을 내려놓아야 가능해지는 일이었다.
참된 도움은 상대의 능력과 바카라임을 빼앗지 않는 것이다. 참된 도움은 그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힘과 서로의 관계를 존중하면서, 필요한 자리에 부족한 만큼 조용히 보태는 일이어야 한다. 그것은 누군가를 구해 주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존엄을 지키며 함께 서는 관계이다.

하지만 봉사를 하다 보면 무의식적으로 대상을 도움이 필요한 나약한 존재로 인식해 버리는 잘못을 범하고 만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그 집의 문턱을 떠올린다. 문턱을 넘은 것은 내 발이었지만, 문은 안쪽에서 열렸다. 관계는 내가 문턱을 넘은 데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 문턱 안에 내 자리를 허락해 준 데서 시작되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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