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Be Happy
그렇게 미움 속을 헤매며 스스로를 갉아먹던 중, 다른 팀원의 결혼 소식이 들려왔다.
근심걱정 없이 온전히 축하받을 그를 생각하자 또다시 내장이 뒤틀리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훨씬 더 오랫동안 일하고 더 많은 기여 해왔다.
왜 나는 결혼식을 앞두고 인생이 짓밟히는 아픔을 겪어야 하고
왜 그는 행복하게 모두의 축하를 받는 건지.
정리되지 않은 억울한 마음들이 솟구쳤다.
때마침 가족들과 제주도에 놀러 갔었는데,
갑자기 별일 아닌 일에 온 힘을 다해 가족들에게 화를 냈다.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는 거대한 화였다.
이때쯤 나는 무언가 조금만 안 풀리고 뜻대로 안 돼도 모든 게 팀장 때문처럼 느껴졌다.
그 여자가 나를 이렇게 형편없는 이유로 내팽개치지지만 않았어도, 내가 이럴 일은, 이럴 일은.
나에게 닥쳐오는 모든 비극과 시련이 다 그 여자가 보내는 거대한 먹구름 같았다.
아무 상관없는 작은 고통마저도 모두 그녀와 연관 지어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힘든 것만큼의 십 분의 일, 백분의 일도 아프지 않을 그녀를 떠올리면 심장이 아파왔다.
왜 나만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하고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늘 속에서 늘 엉엉 울어야 하는지 억울했다.
그녀도 고통스러워야 한다.
이런 짓을 저지른 그녀 역시도 반드시 아픈 눈물을 흘려야 한다.
나는 제주도에서 돌아오는 공항에서부터 비행 내내 울었다.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나 스스로가 불쌍해서 엉엉 울었다.
김포공항에 내려 집까지 돌아오는 길에는
서서히 눈물은 사그라들고 독기가 올랐다.
내가 아직도 이렇게 아프다는 걸 팀장이 알고는 있을까?
설마 몇 달 지났으니 이제 다 잊고 새로운 마음으로 힘차게 하루를 살아가고 있으면 어쩌지.
내 결혼식을 갈기갈기 찢어놨다는 사실을 붕어처럼 새카맣게 잊어버리고
다른 팀원의 결혼식을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있으면 어쩌지.
다 잊고 행복하게 살고 있으면 나는 정말 어떡하지.
너도 아파야 돼.
나만큼은 아니겠지만 아주 조금이라도 아파야 해.
너는 절대 온전히 행복해서는 안돼.
그런 마음으로 곧장 핸드폰을 켰다.
카지노톡은 진작에 차단해 두었다.
그녀의 프로필 사진마저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문자나 전화는 할 수 있었다.
일단 정확한 목적도, 두서도 없이 문자 앱을 켜고 문장들을 써 내려갔다.
돈도 복직도 원하지 않았다. 알량한 사과도 필요 없다.
그냥 내가 아픈 십 분의 일만, 그녀도 아팠으면 했다.
당신이 이 문자를 읽든 읽지 않든 상관없다.
오직 당신의 선택으로 인해 내가 아직까지 얼마나 힘든지 알리기 위해 문자를 보낸다.
그 일이 있고 몇 달 후인 오늘까지도 나는 메말라가고 있다.
그냥 그렇게 줄줄줄 나오는 글들을 필터 없이 쏟아냈다.
쓰다 보니 문득 이런 문장이 적혀있었다.
'나는 이 문자를 마지막으로 이제 다시 내 인생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나도 몰랐던 내 안의 진심이 고개를 내민 것이다.
이 미움의 함정 속에서 이제 그만 나오고 싶었다.
미워하는 삶은 너무 외롭고 무거워 더 이상 짊어지기 싫었다.
이 문장을 인지하고 나니 문자의 목적 또한 분명해졌다.
나는 이 문자를 마지막으로, 정말로 여기서 나오겠다.
문득 든 이 결심은 금세 힘을 얻어 굳건해지고 단단해졌다.
문자의 목적이 생기자 신기하게 마음이 차분해지고 이성이 키를 잡았다.
날 것으로 쓰인 문장들을 다시 읽고, 한 번 정제하기까지 했다.
완성된 문자를 보고 순간 굳이 부질없는 짓 할 필요가 있나? 고민이 들었다.
하지만 한 편으로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녀가 스스로가 나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영영 깨닫지 못하고 룰루랄라 살다 가는 것보다,
나에게 못할 짓을 했다는 것을 자각하고 아주 조금은 참회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녀의 전체 인생에도 더 나은 일이 아닐까?
아무 근거도 없지만 그런 생각이 들자, 주저 없이 전송 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그리고 전송이 완료되자마자 그녀의 전화번호를 차단했다.
나는 이 메시지가 일방향이길 바란다.
사과도 변명도 그 어떤 어설픈 변명도 돌려받고 싶지 않았다.
이 메시지는 다시 나아가기 위해 스스로에게 보내는 카운트다운일 뿐이었다.
이제 이 미움을 하나씩 정리해 보자.
지긋지긋한 자기 연민을 멈춰보자.
연기 그만하고 이제 진짜 이 구덩이 밖으로 나가자.
그렇게 나는 다시 인류를 사랑하기 위한 길을 떠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