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감사는 셀프입니다

Self Appreciation

byHazel


내 안의 어떤 감정이 너무 싫어서 그만 멈추고 싶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보통은 이를 꾹 누르고 현실의 다른 일에 집중한다거나

게임이나 숏츠로 정신머리를 쏙 빼놓는다거나

아니면 술을 진탕 마시고 털어버렸다 치고(?) 잠이나 자러 갈 것이다.


나도 그렇게 했다.

누군가를 그만 미워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가만히 있으면 어김없이 그 생각에 잠식당해 버렸기에

일단 무지막지하게 많은 양의 숏츠를 봤다.

오전에 2시간 오후에 2시간 다시 밤에 2시간,

거의 하루에 6시간 정도를 의미 없는 짧은 영상들로 머리를 가득가득 채웠다.

그러면 느끼기 싫은 그 감정이 끼어들 틈이 없으니까.

근데 이렇게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그 한 겹의 얇은 방패가 꺼진 순간 내가 더 망가져버린 것만 같은 참담한 기분을.


그러면 좀 더 건강하게 잊어보면 어떨까?

러닝을 하고 대청소를 했다.

좋아하는 노래나 팟캐스트를 틀어놓고 몸을 바쁘게 놀렸다.


이 방법은 소파에 하루 종일 누워있는 편보다는 효과가 있는 듯했다.

무엇보다 상쾌하다는 감각이 들어 좋았다.

이렇게만 계속 지낼 수 있다면 당장은 아니어도 시간이 흐르면 서서히 해결될 것 같았다.


하지만 슬슬 흐려질 준비를 하던 그날의 기억들을 이 글로 쓰기 위해 다시 현실로 데려왔을 때

나는 그 무엇도 해결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억이 흐려진 다고 그 감정까지 흐려진 것은 아니었다.

보듬어지지 않은 그 감정들은 그 순간을 다시 재생할 때마다 그 자리에 그대로 덩그러니 서 있었다.

감정들은 어디론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언제까지나 그곳에 남아 쓸쓸히 울고 있었다.


그 아이가 계속 거기서 울게 내버려 두는 한,

나는 마치 한쪽 끝이 말뚝에 고정된 목줄을 차고 억지로 앞으로 가는 척할 뿐이었다.

목이 꽉 조이고 숨이 막히는데 그걸 참고 앞으로 힘겹게 한 발짝 내디뎌봤자,

결국 언젠가는 다시 돌아와 그 말뚝부터 해결해야 하는 것이었다.


아찔하던 그 순간의 나를 잊어버리기 않기로 했다.

별일 아니라는 듯 스쳐 지나가지 않기로 했다.

팀장이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나를 해고했던 그 목요일 오후의 회의실에서 아직도 외롭게 떨고 있는 나를 내가 먼저 다가가 안아주기로 한다.

떠올리기만 해도 고통스럽다는 이유로 내가 먼저 나를 모른 척했다.

문득 눈물이 나고 화가 나는 건 그날의 내가 제발 이 말뚝에 나를 버리고 떠나지 말아 달라 울부짖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날의 나에게 돌아가서 모든 것이 문제없다고 말해준다.

팀장의 말을 믿어주고 사인을 한 것도, 아무렇지 않은 척 가증스러운 연기를 해야 했던 송별회와 결혼식도, 모든 것을 알아차리고 뒤늦게 보낸 장문의 문자도.

모두 그 순간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나는 어리석거나 불쌍한 게 아니라 강하고 대단한 존재였다.


그날의 나에게 필요한 건 위로가 아닌 박수였다.

진짜 잘했다.

정말 엄청난 일을 해냈다.

그 모든 험난한 산맥을 넘어 오늘까지 왔다.

무엇보다 한순간도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이기든 졌든 전쟁을 치르고 돌아온 병사에게 그 노고에 합당한 인정과 존경을 표해야 하듯,

모진 일을 당하고도 스스로를 놓지 않은 나에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감사 인사를 전하는 것이었다.

월,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