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 Employee
다행히 결혼식을 무사히 치렀다.
나는 갑작스러운 실직자 신세임을 하객들로부터 훌륭하게 숨기고, 행복한 신부로 완벽한 하루를 보냈다.
누군가를 위한 미움도 하루 동안은 접어두었다.
오늘 같은 날엔 미움이 낄 자리는 없어야 했다.
송별회에서 말한 대로, 전 온라인 게임 동료들도 많이 참석했다.
대부분은 오늘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안 볼 예정이었기에 더 반갑게 맞아주었다.
팀장은 오지 않았다.
대신 축의금으로 30만 원을 보냈다.
누군가의 결혼식을 아사리판으로 만들 뻔한 대가 치고는 저렴한 금액이었다.
그녀가 느끼는 죄바카라감의 무게가 그리 무겁지는 않았던 것 같다.
사실 또 하나의 축하할 일이 있었다.
내 자리를 차지한 N이 임신 5개월 차에 접어든 것이다.
참으로 축하할 만한 일이었지만, 어찌 됐건 그녀는 곧 출산휴가를 떠나야 했다.
팀장은 이를 알고도 나를 킬하고 그녀를 킵했다.
전력으로 일 할 수 있는 내가 아닌, 곧 1년간 자리를 떠나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을 택한 것이다.
말하자면, 감독이 부상으로 벤치에 앉아만 있어야 하는 선수를 지키기 위해 열심히 뛰고 있는 선발 선수 한 명을 내보낸 것이다.
참으로 기묘한 선택이었다.
결혼식으로부터 두 달 후 그녀의 출산휴가를 대체할 계약직을 채용한다는 공고가 떴다.
어처구니없는 채용 공고 앞에 나는 또 한 번 참담해졌다.
내가 하던 일은 계약직이 몇 달 트레이닝받는다고 바로 해낼 수 있는 종류의 일이 아니었다.
일에 익숙해지는 데까지 6개월은 족히 걸리고, 그리고 일 인분을 하려고 치면 일 년은 끝나있을 터였다.
그러니까 내 자리를 제대로 대체하는 사람은 앞으로 1년간 계속 없을 예정이었고,
남은 사람들만 내 몫을 나누어 플러스 알파의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상태였다.
그러던 중 다른 팀 사람으로부터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듣게 되었다.
N이 내 자리로 직무전환이 된 지 두 달이 넘는 기간 동안 그 어디에도 이 사실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은 것이다.
같은 팀 내부에만 캐주얼하게 공유되었고, 다른 직원들은 N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내 업무는 다양한 부서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필수적이었다.
이 말인 즉, N은 내 자리에 앉아 내 일은 전혀 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었다.
알게 된 사실의 전말은 이렇다.
나는 해고 통보받는 즉시 직무가 정지되었지만, 약 세 달간 고용을 유지하고 월급을 받는 조건으로 퇴직서에 서명을 했다.
내 결혼식이 끝난 후 두 달까지는 여전히 회사 시스템상 그 직무는 내가 수행 중인 상태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의 자리에 나와 N, 두 명이 이중 고용된 상황이었다.
이런 리스크를 최대한 숨겨야 했기에, 팀장은 다른 팀에 그녀의 직무 전환 사실 자체를 은폐하면서 그녀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쯤 되니, 팀장의 무리한 행동들이 점점 내 이해의 지평선 밖으로 밀려났다.
그녀가 N을 지키기 위해 감당한 리스크들은 아래와 같다.
- 전사적인 인력 감축 일주일 전 멀쩡한 직원 당일 해고 통보
- 세 달간 하나의 자리에 두 명을 불법적으로 이중고용
- 이중고용을 들키지 않기 위해 사실을 비밀로 하고, N을 세 달간 업무에서 면제
- 이중고용 기간이 끝날 때쯤, N은 1년간 출산휴가
- N의 출산휴가 동안 허울뿐인 계약직 채용
- 나를 해고한 시점으로부터 1년 3개월간 제대로 된 대체 인력 없이 남은 인력들이 업무 부담
- N은 3개월 업무 면제 + 1년 출산휴가 = 도합 1년 3개월 공짜 월급
- 나의 갑작스러운 해고로 인해 남은 팀원들 모두 고용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는 분위기 형성
정리하고 나니 더 대단하다.
팀장은 이 모든 것을 짊어지고 N을 지켜낸 것이다.
그녀는 오직 N의 출산 휴가를 보장하기 위해, 내 인생과 결혼식을 망치려들었다.
아무도 N이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 채
그렇게 그녀는 1년 3개월 동안 시스템 속 유령이 되어 꼬박 꼬박 공짜 월급을 받으면서 쉬게 된 것이다.
나는 합리적 의심으로 사실 팀장과 N이 친척인 게 아닐까 생각했다.
사실 팀장이 곧 태어날 아이의 이모인게 아닐까?
조카가 크는데 엄마가 실직자이면 안되니까 이렇게까지 무리하는 것 아닐까?
그들의 사정 따윈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온갖 상상이 끊임없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나보다 내 일을 더 잘할 사람에게 내 자리를 내주었다면 깔끔하게 잊고 나아갔을 텐데.
누군가 일 안 하고 돈 받으면서 쉬게 하기 위한 희생이었던 것을 알고 나니, 복장이 터지고 온몸과 영혼이 증오로 가득 찼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한테 이런 짓을 할 수가 있지?
그것도 매일 얼굴보고 밥먹고 힘든 일 함께 이겨내고 하던 사이에?
팀장 머리끄덩이를 잡아 바닥에 내팽개치는 상상을 하고 어떻게 그녀가 응당한 대가를 받게 할지 매일 고민했다.
이렇게 한 사람을 향한, 인류를 향한 나의 미움이 완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