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합동 송별회

Farewell Party

byHazel


결혼식을 일주일 남기고, N을 내 자리에 배치하는 작업을 끝낸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이번 해고 대상자들을 모아 합동 송별회를 열어준다고 한다.

더러운 밥 안 얻어먹어도 되니까, 썩 꺼지라고 하고 싶었지만,

몇 년간 사이좋게 지낸 팀원들과 마지막 인사의 기회도 없었기에 일단은 간다고 했다.


합동 송별회의 주인공은 총 세 명이었다.


내 자리 면접에서 N과의 경쟁에서 떨어진 다른 두 명과 나였다.

'이번 해고 대상자'들이라고 퉁쳐서 묶기는 했지만 엄연히 그 둘과 나의 상황은 달랐다.

둘은 조직개편으로 인해 안타까운 이별을 하는 것이었고

나는 안타까운 이별을 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다른 누군가를 위해 대신 희생된 것이었다.


나는 송별회에서 단 한 줄의 진심도 꺼내지 못할 예정이었다.

왜냐하면 송별회에는 나를 해고한 팀장과 내 자리를 차지한 N이 모두 참석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착하는 순간까지 고민했다.


아직 다니고 있는 팀원들은 내가 당한 참변이 자신에게도 닥칠까 봐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들은 치사해도 팀장에게 필사적으로 잘 보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스스로의 점수를 깎아먹으면서 까지, 팀장 앞에서 내 편에 서줄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우습게도 또 한 번의 순진한 마음을 먹었는데,

이런 짓을 벌인 팀장과 N도 사실은 양심의 가바카라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 짐작한 것이었다.

그들이 굳이 이 자리에 참석하는 것도, 상황이 이렇게 되어 미안하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게 아닐까? 바보 같이 그런 기대를 하며 회사 앞 익숙한 동네로 나섰다.


분위기는 예상한 대로였다.

팀원들은 자리에 함께한 팀장과 N이 불편하지 않게 눈치를 보는데 급급했다.

함께했던 순간들에 대한 위로와 아쉬움은 급하게 돌려 쓴 롤링페이퍼와 꽃다발로 손쉽게 대체되었다.

그들은 결혼식 준비는 잘 돼 가세요? 이제는 뭐 하실 거예요? 하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말투로 물어댔다.

해고된 셋은 흩어져 앉아 분위기 뭐 같다는 눈짓만 이따금씩 주고받을 뿐이었다.


물론 손을 잡아주거나, 조용히 눈물을 흘려준 동료도 있었다.

하지만 팀장이나 N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을 때 잠깐이었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송별회인지 심란한 마음으로 북경오리 껍질을 바삭바삭 씹어 삼켰다.


모두가 무언가 잘못된 자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분위기는 살짝 가라앉아 있었다.

N이 바카라임지고 텐션을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는지, 갑자기 몇 년 전 이비자 여행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술 먹고 춤추며 보낸 광란의 날들을 신나게 묘사했다.

우리는 방청객이 되어 와 이비자 재밌겠다, 저도 가보고 싶어요 하며 리액션을 했다.


상식적으로 상황에 어울리는 태도는 아니었다.

나였다면, 진짜 나였다면 저렇게는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안한 마음을 조심스레 건네거나, 그도 아니면 조용히 뒤에 앉아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에는 민망한 마음에 오버하는 거겠거니 했으나,

갈수록 이번 개편에서 본인은 생존했음에 단순히 신이 난 건가 싶기도 했다.


그렇게 모두가 마치 내일도 또 볼 사람처럼 겉도는 이야기만 하면서 시간이 흘렀다.


불편할 줄 알고 내 발로 기어 나온 자리였기에 굳이 내가 지금 얼마나 불편한지 티 낼 필요는 없었다.

다시는 안 볼 사람들 앞에서 적어도 쿨하고 멋진 동료로 기억되기 위해 준비해 온 최후의 가면을 썼다.


앞으로는 뭐를 해보려 한다, AI로 격변하는 세상에 오히려 매를 먼저 맞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진심 반, 거짓 반의 말들을 했다.

몇몇 동료들은 나의 반응에 육성으로 감탄했다.

"제가 헤이즐님이면 절대 이 자리에서 그렇게 못 웃었을 것 같아요."

맞는 말이다. 사실은 그냥 졸라게 울고 싶었다.

스스로도 나의 절제력에 놀라고 있었다.


파하는 길에 다들 얘기한다.

"저희 헤이즐님 결혼식 꼭 갈게요!"

그래요. 와서 돈이나 내고 가쇼. 그게 그대들이 나에게 전하는 마지막 위로이자 노잣돈이겠지.


한 명 한 명에게 악감정은 없다.

다만 팀장 앞에서 제대로 된 위로 한마디 건네지 못하는 조그만 인간들과 회사 밖에서도 굳이 인연을 이어나갈 가치는 못 느꼈다.


집에 가기 직전 내내 조용하던 팀장이 여전히 내 눈도 못 마주치며 말없이 나를 꼭 안아주고 도망치듯 떠났다. 미안하다는 뜻이었다.

나는 이 가련한 가해자에게 그저 떫떠름한 미소를 보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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