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시작은 능력을 보여주고, 말의 마무리는 사람을 보여준다.
회의실 탁자 위에 바인더 여섯 권이 나란히 서 있었다. 등마다 같은 제목이 붙어 있었고, 옆면에는 노란 탭이 빼곡했다. 넉 달을 붙들고 있던 공공 디자인 과제의 최종 납품본이었다.
발주처 회의실의 시계는 오후 4시를 막 넘기고 있었다. 종이컵 커피는 미지근하게 식어 있었다. 검수는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발주 부서의 부서장이 서명란에 이름을 적자, 우리 쪽 사람들은 그제야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한 계절이 서명 한 줄로 닫혔다.
나는 일어서며 말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외투 소매에 팔을 끼우는 중이었고, 눈은 휴대전화에 가 있었다. 다음 회의가 삼십 분 뒤였다. 인사는 내 어깨 너머로 던져졌고, 어디에 떨어졌는지는 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휴대전화 화면만 내려다봤다.
그날 저녁 사무실에 들렀을 때 팀원 한 사람이 아직 남아 있었다. 바카라상 위에 노란 탭 한 묶음과 가위가 놓여 있었다. 그는 납품본에 붙이고 남은 자투리를 하나씩 떼어 작은 통에 담고 있었다. 통 뚜껑에는 네임펜으로 '탭'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거 버려도 되잖아요." 그는 웃기만 했다. "다음에 또 쓰려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먼저 나왔다.
그 회의실을 한참 뒤에 다시 떠올렸다. 이번에는 내 자리가 아니라 탁자 위가 보였다. 바인더 여섯 권, 권마다 탭이 서른 개 남짓. 탭마다 손글씨로 항목 번호가 적혀 있었고, 몇 개에는 비뚤게 붙였다가 떼어 내고 다시 붙인 자국이 남아 있었다. 납품 전날, 그 팀원이 혼자 밤 11시까지 남아 그것을 붙였다는 이야기는 한 주가 지나서야 다른 직원에게서 들었다. 내가 어깨 너머로 던진 인사는 탭 180여 개 위를 그냥 지나갔다.
세 번째로 그 자리를 떠올린 것은 그보다 더 뒤였다. 이번에는 탁자 건너편, 서명을 마친 부서장의 손이 보였다. 그는 펜을 내려놓고 바인더 한 권을 다시 집었다. 노란 탭 하나를 골라 펼치더니 표 한 장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이 비교표, 어느 분이 만드셨어요?" 팀원이 손을 어깨 높이까지 들었다. 부서장은 그쪽을 보며 말했다. "이거 덕분에 위에 보고하기가 편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같은 말이었다. 내가 한 인사와 글자 하나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 팀원이 집에 들고 간 말은 내 것이 아니라 부서장의 말이었다. 같은 인사라도 무게는 글자가 아니라, 그 말을 하기 전에 무엇을 들여다봤느냐에서 나온다. 나는 외투를 입느라 그 장면을 절반만 봤다. 끝까지 봤더라면 무언가를 덧붙였을지도 모른다. 다만 덧붙일 것이 그때 내 손에 있었는지는 자신이 없다.
미국에 있는 딸과 카톡 영상통화를 하면 끝나는 순간이 늘 어색하다. 우리 쪽은 밤이고 딸 쪽은 아침이다. 아내가 "들어가"라고 하고 딸이 손을 흔들면, 화면은 끊기기 직전에 한 번 멈춘다. 손을 반쯤 든 채로, 입을 반쯤 연 채로.
그 멈춘 얼굴은 화면이 넘어가기 전까지 일 초쯤 남아 있다. 통화는 십 분이었는데, 잠자리에 누우면 떠오르는 것은 대개 그 일 초다. 어떤 날은 하품을 하다 멈추고, 어떤 날은 웃다가 멈춘다. 웃다가 멈춘 날은 잠이 잘 온다.
끝난 일은 마지막 화면 한 장으로 기억된다. 몇 달 동안 오간 말은 뒤섞이고, 멈춘 화면만 남는다. 그 뒤로 이어지는 장면이 없으니 덮어쓸 것도 없다. 그 팀원에게 그 과제의 마지막 화면은 부서장의 손가락이 짚은 비교표였다. 내 인사는 그 화면 바깥에 있었다.
받는 쪽에 서 있던 날도 있다. 첫 회사에서 반년을 붙들었던 작업이 끝난 날이었다. 러시아의 이미지 확대 기술을 들여와 우리 출력 프로그램에 맞게 고쳐 넣는 일이었다. 부장은 저녁 자리에서 잔을 들고 "다들 수고했다"고 했다. 그 말은 기억에 없다. 기억나는 것은 다음 날 아침 복도에서 스쳐 간 과장의 한마디다. "그 오류 목록, 자네가 정리했지? 그거 아직 내 모니터 옆에 붙어 있어." 그는 걸음을 멈추지도 않았다. 나는 그 목록을 뽑았던 종이의 색깔까지 기억한다. 연두색이었다. 오른쪽 위에는 누군가 볼펜으로 그어 놓은 체크 표시가 세 개 있었다. 그 주에 나는 목록을 한 장 더 뽑아 내 모니터 옆에도 붙였다.
회의실에서 내가 건넨 것을 이제는 빈 봉투라고 부른다. 겉에는 '수고하셨습니다'가 또박또박 적혀 있다. 받은 사람은 봉투를 열어 보고 안이 비었다는 것을 안다. 무례하지는 않다. 봉투는 봉투니까. 다만 손에 쥐고 집에 갈 것이 없다.
부서장의 봉투에는 표 한 장이 들어 있었다. 그는 이름을 몰랐지만, 손가락이 한 사람을 가리켰다. 첫 회사 복도의 그 과장이 건넨 봉투에는 연두색 종이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끝인사의 무게는 말이 아니라, 봉투 안에 넣은 것이 정한다.
빈 봉투 — 겉봉의 인사는 반듯한데, 받은 사람이 꺼낼 것이 아무것도 없는 마무리
부서장의 말을 나중에 수첩에 옮겨 적어 봤다. 짧은 두 문장 안에 세 가지가 들어 있었다. 첫째는 손가락으로 짚을 수 있는 물건이다. 부서장에게는 '이 비교표'였다. 둘째는 그것을 만든 사람이다. 이름은 몰랐지만 "어느 분이 만드셨어요?" 하고 그 사람을 찾았다. 셋째는 그 물건 덕분에 달라진 일이다. "위에 보고하기가 편했습니다." 세 가지를 다 담는 데 두 문장이면 충분했다. 길게 늘인 인사가 아니라, 한 사람과 한 가지 일로 좁힌 인사였다. 나는 수첩의 그 장 귀퉁이를 접어 두었다.
그 아래에 첫 회사 과장의 한마디도 적어 봤다. 적고 나서야 알았다. 거기에는 '수고'라는 말이 한 글자도 없었다. 그런데 세 가지는 다 있었다. 물건은 오류 목록, 사람은 '자네', 달라진 일은 그 목록이 아직 모니터 옆에 붙어 있다는 것. 겉봉에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는데, 나는 그 봉투를 이십오 년 동안 들고 다녔다. 인사말이 없어도 봉투는 찬다. 겉봉을 채우는 것은 말이고, 안을 채우는 것은 들여다본 흔적이다.
지난달 끝난 일에서 우리가 마지막으로 건넨 봉투에는 무엇이 들어 있었을까. 받은 사람은 그것을 집까지 들고 갔을까.
셋 가운데 가장 자주 빠지는 것은 물건이다. 물건을 넣으려면 그 일을 들여다봤어야 한다. 납품 날 내 손에는 짚을 표가 없었다. 탭 180여 개 가운데 내가 펼쳐 본 쪽은 하나도 없었다. 봉투를 채우는 일은 끝나는 날 시작되지 않는다. 일하는 내내 조금씩 담아 두어야 마지막 날 꺼낼 것이 생긴다.
좁은 인사가 망설여지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한 사람을 짚으면 나머지가 남는다. 그 회의실에는 우리 쪽 사람이 여섯 있었다. 부서장이 비교표를 짚는 동안 나머지 다섯은 각자 자기 바인더 모서리만 보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다들'이라는 말 뒤로 숨는다. '다들'은 모두를 덮지만 아무에게도 닿지 않는다.
봉투 여섯 장을 한자리에서 한꺼번에 건넬 필요는 없다. 다음 날 커피를 가지러 가는 길에 한 장, 점심 줄에서 한 장. 그 뒤로 나는 끝난 일의 봉투를 이틀에 나눠 건네려고 애쓴다. 절반쯤은 성공한다.
마지막 인사가 과제에만 붙는 것은 아니다. 어느 봄, 회사를 떠나는 직원의 마지막 날에 롤링페이퍼가 돌았다. 그가 받아 든 종이에는 '그동안 수고 많았어요'가 열한 번 적혀 있었다. 그 사이에 한 줄이 섞여 있었다. '탕비실 정수기에 생수통 꽂을 때마다 네 생각 날 거다.' 빈 통을 빼고 20리터짜리 새 통을 들어 올려 거꾸로 꽂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그 한 줄 덕분에 모두가 알게 됐다. 그 직원은 종이를 접으며 그 줄만 소리 내어 읽었다.
지난 금요일에도 나는 봉투를 비워서 건넸다. 주간 회의가 끝나고 의자들이 뒤로 밀리는 소리가 날 때, 노트북을 덮으며 "이번 주 다들 고생 많았어요"라고 했다. 덮은 노트북 위에 휴대전화를 올리는 손이 말보다 빨랐다. 고를 틈이 없었다고 하면 핑계가 된다. 틈은 있었다. 고르는 일이 귀찮았을 뿐이고, 나는 아직 그 순서를 고치지 못하고 있다.
- 지난주에 끝난 일 하나를 떠올릴 때, 내가 한 마지막 말이 기억나는가
- 그 말 안에 손가락으로 짚을 물건이 하나 들어 있었는가
- 그 말을 들은 사람의 이름을 불렀는가
그 납품이 있고 두 달 뒤, 다음 과제의 중간 보고서가 내 바카라상에 올라왔다. 노란 탭이 딱 하나 붙어 있었다. 그날 밤 통에 담던 자투리 가운데 하나로 보였다. 탭이 붙은 쪽을 펼치자 공정마다 다른 색으로 칠한 일정표가 나왔다. 칸 아래 여백에 작은 글씨로 '검토 부탁드립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퇴근 시각이 가까웠고, 휴대전화가 바카라상 위에서 한 번 떨었다.
나는 외투를 벗어 의자에 걸었다. 그리고 그 표를 손가락으로 짚은 채 그의 이름을 불렀다.
두 번째 사규 제9조 말의 시작은 능력을 보여주고, 말의 마무리는 사람을 보여준다. 끝인사에 이름 하나를 넣는 데는 삼 초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