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의 질문에는, 질문 이전의 질문이 있다

질문은 문장으로 오지만, 뒤에는 늘 짐칸이 달려 있다.

by시선

내 말이 끝났을 때 본부장은 손에 든 종이를 반으로 접었다. 십오 분 동안 나는 일정과 인원과 진행률을 빠짐없이 설명한 참이었다. 그가 물었다. "그래서 이번 주에 되는 겁니까, 안 되는 겁니까."


그가 나간 뒤에도 나는 노트북을 덮지 못하고 앉아 있었다. 셀마다 색을 넣느라 점심을 거르고 한 시간을 더 썼다. 틀린 칸은 하나도 없었다.


그 종이는 그날 아침에도 그의 손에 있었다. 접힌 자국이 벌써 두 번 나 있었다.


아침에 그는 복도에서 나를 세우고 이렇게 물었다. "그거 어떻게 돼 가요?" 나는 진행 상황을 묻는 말로 들었다. 잘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후에 표를 만들어 들어갔고, 착수부터 순서대로 말했다. 자료 조사, 인원 배치, 협력사 회신이 늦어진 사흘. 그가 궁금해한 한 줄은 맨 끝에 있었고, 나는 그 한 줄까지 가는 데 십오 분을 썼다.


나는 질문에 답한 것이 아니라, 내가 답하고 싶은 질문에 답했다.


그때 나는 다 말하는 것이 성실이라고 믿었다. 빠뜨린 것이 있으면 준비가 모자란 사람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질문이 올 때마다 아는 것을 전부 펼쳤고, 펼칠수록 듣는 사람의 어깨가 조금씩 내려갔다.


같은 일이 여러 해 되풀이됐다. 업종을 옮긴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첫 회사에서 "검토해 볼게요"는 진짜로 검토한다는 뜻이었고, 옮긴 회사에서 같은 말은 오늘은 더 얘기하지 말자는 뜻이었다. 쓰는 낱말은 같은데 뜻이 달랐고, 나는 늘 성실하게 틀렸다.


한참 뒤 그와 자판기 앞에 나란히 서 있을 때, 그가 지나가듯 말했다.


"아침에 원장님한테서 전화가 왔었어요."


"나는 되는지 안 되는지만 알면 됐거든요."


그제야 아침의 복도가 다르게 보였다. 그는 나를 세운 것이 아니라, 자기 자리로 돌아가기 전에 한 가지만 들고 가려던 참이었다.


묻는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묻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알려줄 수 있었다면 그렇게 짧게 묻지도 않았다. 짧은 질문일수록 급한 자리에서 나온다.


질문은 빈손으로 오지 않는다. 뒤에 짐칸이 하나 달려 있다. 그 안에는 방금 받은 전화가 실려 있거나, 결재판에 얹을 한 줄이 실려 있거나, 부탁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부탁이 실려 있다. 우리는 질문만 받아 들고 짐칸은 열어보지 않은 채 대답을 시작한다.


질문은 문장으로 오지만, 뒤에는 늘 짐칸이 달려 있다.


짐칸에 실리는 것은 대체로 세 가지다. 오늘 안에 누군가에게 답해야 하는 걱정, 문서에 적어 넣어야 하는 확인, 아직 부탁이라고 말하지 못한 부탁. 셋은 각각 다른 말투로 도착한다. 말투를 알아듣는 일이 내용을 아는 일보다 먼저다.


짐칸을 못 보면 답의 길이가 어긋난다. 길이가 어긋나면 내용이 맞아도 틀린 답이 된다. 그날 내 표의 숫자는 하나도 틀리지 않았고, 그래서 더 두고두고 남았다.


몇 해 전, 어머니가 병원 복도에서 나에게 물으셨다. "여기 얼마나 더 있어야 하냐." 나는 남은 일정과 예상 퇴원 날짜를 알려드렸다.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고 창밖을 보셨다. 그 질문의 짐칸에 실려 있던 것은 날짜가 아니었다.


그 무렵 우리가 들은 말은 짧았고, 가족들은 그 말을 오랫동안 입에 올리지 못했다. 어머니는 지금도 잘 계신다. 나는 그것을 어머니의 의지와, 우리가 헤아리지 못하는 은혜로 받는다. 그날 복도에서 드렸어야 할 답은 날짜가 아니라 한 문장이었다. 그 문장을 나는 지금도 못 찾는다.



오늘 받은 질문 가운데, 내 답은 길었는데 상대의 표정이 짧아진 자리가 있었는가. 그 질문의 짐칸에는 무엇이 실려 있었을까.


짐칸을 여는 연습은 오늘 저녁에 혼자 해도 된다. 순서는 네 단계다.


첫째, 답을 시작하기 전에 세 박자를 센다. 말이 먼저 나가는 버릇은 침묵으로만 끊긴다. 세 박자는 상대에게 뜸으로 들리지 않는다. 숨 한 번 쉬는 길이다.


둘째, 첫 마디를 확인으로 쓴다. "지금 필요하신 게 날짜인가요, 아니면 위험한 대목인가요." 이 한 줄에 상대가 웃으면 걱정형, 곧바로 답하면 확인형, 잠깐 뜸을 들이면 부탁형이다. 확인 한 줄이 무례하게 들릴까 봐 한참 망설였는데, 실제로는 그 한 줄을 반가워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셋째, 분류를 정한 다음 답의 길이를 먼저 정하고 입을 연다. "두 문장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소리 내어 시작해도 된다. 길이를 정하지 않고 시작하면 아는 것이 다 나온다.


넷째, 답을 마친 뒤 짐칸을 한 번 더 연다. "이것 말고 걸리시는 게 또 있으실까요." 이 문장 하나로 다음 달에 터질 일이 이번 주로 당겨져 오기도 한다. 짐칸은 보통 한 칸이 더 있다.


처음 이 순서를 지킨 날은 월요일 오전이었다. 물어놓고 나는 숨을 참았다. 상대는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날짜"라고만 했다. 그날 내 답은 여섯 자로 끝났고, 자리에 돌아와 앉으니 손이 비어 있었다.


세 분류를 가르는 것은 말의 내용이 아니라 말이 시작되는 자리다. 일에서 시작하면 걱정이거나 확인이고, 나에게서 시작하면 부탁이다. 분류는 표 한 장이면 된다. 외울 것은 분류 이름이 아니라 왼쪽 칸의 말투다.


<질문 3분류 진단표>


왼쪽 칸은 수첩 뒷장에 옮겨 적어 두면 쓸모가 있다. 말투는 사람마다 다르니, 자기 회사에서 실제로 들리는 문장으로 바꿔 채운다. 나는 한 달쯤 지나 왼쪽 칸이 반쯤 다른 문장으로 바뀌어 있는 것을 보고서야 이 표가 내 것이 됐다고 느꼈다.


글로 오는 질문도 같은 표로 읽힌다. 화면에 뜬 한 줄이 짧을수록 걱정형일 때가 많다. 물음표가 없는 짧은 문장은 확인형 쪽이고, 안부가 먼저 붙는 문장은 부탁형 쪽으로 기운다. 글에는 온도가 지워진 채 도착하니, 확인 한 줄이 말보다 더 필요하다.


같은 날 같은 말을 세 사람에게 들은 적이 있다. "그거 어떻게 돼 가요." 아침의 그것은 위층에 답해야 하는 걱정이었고, 점심 무렵의 그것은 회의록에 적을 날짜를 다시 묻는 확인이었다. 저녁에 온 그것은 자기 일을 하나 넘기고 싶은 부탁이었다. 문장은 열두 자로 똑같았다.


표를 외우고도 같은 자리에서 미끄러진다. 나는 세 군데에서 자주 미끄러졌다.


확인형에 설명을 붙이는 자리 : 엘리베이터 앞이었다. 버튼에 불이 들어와 있었고, 팀장이 "그거 몇 장이라고 했죠" 하고 물었다. 나는 그 수가 나온 경위부터 말했다. 문이 열렸고 그는 "아, 네" 하고 탔다. 그가 가져가려던 것은 숫자 하나였다.


걱정형에 근거부터 쌓는 자리 : 프린터 앞, 갓 나온 종이가 아직 따뜻했다. "이거 문제없죠?" 나는 검토 항목을 순서대로 읊었다. 종이를 집어 들며 그가 말했다. "그러니까 문제가 있다는 거네요." 근거를 앞에 깔면 상대는 그 근거를 변명으로 읽는다.


부탁형을 질문으로 받는 자리 : 금요일 여섯 시, 가방 손잡이를 이미 쥐고 있었다. "오늘 많이 바쁘죠?" 나는 "네, 좀 그렇습니다" 하고 정확하게 답했다. 그는 웃고 돌아섰다. 그 일은 월요일에 다른 자리로 갔고, 나는 그 일이 내 바카라상을 지나갔다는 것조차 몰랐다.


세 장면의 공통점은 내가 틀린 말을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장수도 맞았고, 검토 항목도 맞았고, 그날 바빴던 것도 맞았다. 맞는 말이 어긋나는 자리가 회사에는 생각보다 많다.


세 번 다 나는 상대가 무엇을 들고 왔는지 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버튼, 갓 나온 종이, 내 가방 손잡이. 그날의 사물은 다 기억나는데 그 사람의 손은 기억나지 않는다.




짐칸은 늘 뒤에 있다.


요즘은 누가 물으러 오면 손부터 본다. 결재판을 들었는지, 전화기를 쥐었는지, 빈손인지. 빈손으로 오는 질문이 대개 제일 무겁다. 그래도 지난주에 후배가 "이거 지금 봐주실 수 있으세요" 하고 물었을 때 나는 또 일정부터 꺼냈다. 그 말의 짐칸에 실려 있던 것은 일정이 아니었다.


물어보지 않고 답을 시작하는 버릇은 여태 남아 있다. 고쳐지는 대신 느려졌을 뿐이다.


지금 내 바카라상에는 오전 회의에서 받은 일정표가 놓여 있다. 접힌 자국이 벌써 두 번 나 있다.


두 번째 사규 제7조 상사의 질문은 대개 질문이 아니다. 걱정이거나, 확인이거나, 부탁이다. 어느 쪽인지 알면 답은 짧아진다.

화,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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