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는 상대의 시간을 덜 쓰게 하는 데 있다.
"이거, 뭘 해 달라는 거예요?"
월요일 아침 9시 12분에 전화가 왔다. 금요일 밤에 내가 보낸 메일 이야기였다. 나는 그 메일을 세 시간에 걸쳐 썼다. 아홉 문단이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다. 상대는 그 메일을 인쇄해 두고 있었다. 읽기는 읽었다. 읽고도 몰랐다.
"앞부분은 봤는데요, 그래서 제가 뭘 하면 되는지가 안 보여서요."
안 보일 리가 없었다. 여섯 번째 문단에 있었다. 굵게까지 해 두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못 했다.
그 메일을 나는 잘 썼다고 생각했다. 배경을 먼저 놓고, 경위를 시간순으로 적고, 우리 쪽 사정을 설명한 다음에 부탁을 꺼냈다. 예의라고 배운 순서였다. 그 순서를 지키면 무례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요청은 늘 뒤에 있었다. 뒤에 있는 것은 읽히지 않는다.
보내기를 누른 시각은 11시 40분이었다. 나는 개운했다. 주말 내내 그 일은 끝난 일이었다. 내 쪽에서만 그랬다.
전화를 끊고 그 메일을 다시 열었다. 내가 쓴 글이 아니라 남이 보낸 글처럼 읽어 보려고 화면을 맨 위로 올렸다. 첫 화면에 보이는 것은 인사 두 줄과 날짜 하나였다. 부탁은 화면을 세 번 내려야 나왔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내가 쓴 메일을 받는 사람이 되어 읽었다.
흔히 이렇게 생각한다 - 메일은 내가 쓴 글이다.
실제로는 이렇다 - 메일은 상대가 여는 화면이다.
쓰는 시각과 여는 시각 사이에는 시차가 있다. 쓰는 사람은 다 아는 상태에서 쓰고, 읽는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연다. 우리는 그 차이를 자주 잊는다. 잊는 이유는 간단하다. 쓰는 동안 상대는 화면 안에 없다.
반대편에 서 본 적이 있다. 휴가에서 돌아온 월요일 아침이었다. 쌓인 것을 위에서부터 열다가 다섯 번째에서 손을 멈췄다. 본문이 화면 두 개 길이였다. 나는 읽지 않고 별표만 눌렀다. 나중에 보려고 눌렀고, 그 나중은 목요일이었다. 보낸 사람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는 목요일에야 알았다.
받는 사람의 월요일 아침 화면을 떠올려 본다. 거기에는 내 메일만 놓여 있지 않다. 주말 동안 쌓인 메일이 스물세 통쯤 되고, 그중 열 개는 제목만으로 무엇인지 알 수 있고, 나머지는 열어야 안다. 사람은 열어야 아는 쪽을 뒤로 미룬다. 긴 메일은 정성이 아니라, 미뤄 둔 정리다.
지난 주말에 현관 앞에 상자가 셋 놓여 있었다. 아내는 상자를 뜯기 전에 겉면부터 봤다. 손가락으로 송장 위를 훑으며 받는 사람과 내용물과 날짜를 차례로 읽었다. 그러고는 맨 아래 상자를 먼저 들었다. "이건 두면 상해."
상자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송장이 알려 준다. 뜯는 순서도 송장이 정한다. 메일에도 송장이 있다. 제목, 첫 문장, 요청, 기한. 이 네 줄은 편지가 아니라 송장이다.
지난주에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메일을 떠올려 본다. 상대가 첫 두 줄에서 멈췄다면 거기에는 무엇이 남아 있었을까. 그 두 줄을 우리는 언제 썼을까.
월요일 아침의 사람은 판단할 힘을 아껴 쓴다. 한 주가 열리는 자리에서 그가 하는 일은 읽기가 아니라 분류다. 지금 할 것, 오늘 안에 할 것, 나중에 볼 것. 세 칸으로 나누는 동안 메일 하나에 쓰는 시간은 몇 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내 메일이 받아야 하는 것은 감탄이 아니라 칸이다. 어느 칸에 들어갈지 스스로 말해 주지 않으면 대개 '나중에 볼 것'으로 간다. 그 칸은 바닥이 없다.
요청을 앞에 세우는 일이 왜 그렇게 어려운지는 나중에야 알았다. 짧게 쓰면 들인 시간이 사라진다. 3주를 붙들고 있던 일을 두 줄로 적으면, 받는 사람에게 그 3주는 없던 시간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앞쪽에 설명을 쌓는다. 부탁을 하기 전에 먼저 알아 달라고 말하는 셈이다. 알아 달라는 말과 해 달라는 말을 한 문단에 같이 넣으면 둘 다 흐려진다. 둘을 떼어 놓고 해 달라는 말을 앞에 세우면, 알아 달라는 말은 답장에 실려 돌아온다.
오늘 저녁에 해 볼 수 있는 순서가 셋 있다.
첫째, 이미 써 둔 메일을 위아래로 뒤집는다. 맨 아래에 있던 요청을 맨 위로 올리고, 맨 위에 있던 배경을 맨 아래로 내린다. 한 글자도 지우지 않는다. 자리만 바꾼다. 처음 이걸 해 보던 밤에 나는 잘라내기와 붙여넣기를 네 번 했다. 분량은 그대로인데 메일이 다른 사람이 쓴 것처럼 보였다.
둘째, 제목을 다시 쓴다. 제목에 동사와 날짜가 없으면 제목이 아니라 서류철 이름이다. 「협조 요청의 건」은 서류철이고, 「정산표 두 칸 확인 — 수요일까지」는 제목이다. 나는 제목을 본문보다 나중에 쓴다. 본문을 다 써야 무엇을 부탁하고 있는지 내 입으로 말할 수 있다.
셋째, 보낼 시각을 정한다. 쓴 시각과 보낼 시각을 같은 것으로 두지 않는다. 받는 사람이 그것을 여는 아침을 먼저 정하고, 그 아침에 도착하게 둔다. 목요일 밤에 쓴 메일은 금요일 아침에 열려야 그 주 안에 답이 온다.
팀장의 자리에 앉아 본다. 월요일 아침 8시 50분, 커피는 아직 뜨겁고 화면 왼쪽에는 읽지 않은 메일이 세로로 쌓여 있다. 그 화면에서 내 메일에 주어진 자리는 두 줄뿐이다. 제목 한 줄, 미리보기 한 줄. 손가락이 내려가는 속도는 한 줄에 반 초쯤 된다. 제목에서 무슨 일인지와 언제까지인지가 보여야 하고, 미리보기에서 상대가 할 일이 보여야 한다. 나머지 두 줄, 요청과 기한은 메일을 연 첫 화면 안에서 끝나야 한다.
<다시 쓰기 전>
제목: 정산 관련 협조 요청의 건
안녕하십니까. 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지난달부터 진행해 온 정산 건과 관련하여 말씀드립니다. 당초 일정은 이러이러했으나 중간에 변경이 있었고, 저희 쪽에서도 여러 차례 확인을 거쳤습니다. 그 과정에서 몇 가지 숫자가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이 발견되었습니다. 바쁘시겠지만 확인 부탁드리며, 빠른 시일 내에 회신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시 쓰기 후>
제목: 9월 정산표 숫자 확인 — 수요일 오후 3시까지
팀장님이 확인해 주실 것은 한 가지입니다. 첨부한 정산표에서 붉게 칠한 두 칸의 숫자가 맞는지 봐 주십시오. 맞으면 "맞음" 한 마디, 다르면 회신에 숫자만 적어 주시면 됩니다. 수요일 오후 3시까지 주시면 목요일 발송에 맞습니다. 그동안의 경위는 아래에 적어 두었습니다.
✏️
첫 줄은 맨 마지막에 쓴다. 본문을 다 써 봐야 상대가 할 일이 한 문장으로 보인다.
보내기 전에 제목만 따로 읽는다. 동사가 없으면 제목이 아니라 서류철 이름이다.
밤에 쓴 메일은 예약 발송으로 돌린다. 보내는 시각은 상대의 출근 삼십 분 뒤.
같은 순서는 화면 밖에서도 통한다. 지난달, 복사기 앞에서 본부장을 붙잡았다. 그는 용지함을 열어 종이를 채우는 중이었고, 서랍이 닫히면 대화도 끝날 참이었다. 나는 배경부터 꺼냈다가 서랍 닫히는 소리에 말이 잘렸다. 며칠 뒤 같은 자리에서 순서를 바꿨다. "정하실 건 하나입니다. 월요일이냐 수요일이냐." 서랍이 닫히기 전에 답이 나왔다. 수요일이었다. 사정 설명은 자리에 돌아와 두 줄짜리 메일로 보냈다. 답장은 오지 않았고, 일은 수요일에 시작됐다.
순서를 바꾸고도 자주 넘어지는 데가 세 군데 있다.
하나. 금요일 밤에 보낸다. 한 번은 토요일 아침 여덟 시에 답장이 왔다. "확인했습니다"라는 여섯 글자였다. 나는 고마운 대신 미안했다. 내 금요일 밤이 남의 토요일 아침을 데려갔다.
둘. 참조란에 사람을 늘린다. 참조에 넷을 넣은 적이 있다. 사흘이 지나도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나중에 한 사람이 지나가며 말했다. "저 말고도 다들 보셨길래요." 받는 사람이 넷이면 바카라임은 넷으로 나뉘지 않는다. 아무에게도 가지 않는다.
셋. 감사 인사로 앞 세 줄을 쓴다. 내 초안의 첫머리는 오랫동안 같은 문장이었다. "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로 시작해 "번거롭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로 넘어가고 "바쁘시겠지만"으로 이어졌다. 그 세 줄은 상대의 화면에서 제일 먼저 밀려나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예의는 앞 세 줄에 있지 않다. 예의는 상대의 시간을 덜 쓰게 하는 데 있다.
나는 지금도 밤에 쓴 메일을 그 밤에 보낸다. 예약 발송을 어디서 누르는지 알면서 누르지 않는다. 다 쓰고 나면 그 자리에서 치우고 싶어진다. 개운함을 하루 미루는 일이 나에게는 아직 어렵다.
한 달쯤 지난 월요일, 나는 아침부터 전화기 쪽을 보고 있었다. 9시 12분이 지나갔다. 전화는 오지 않았다. 열한 시쯤 답장이 왔다. 한 줄이었다.
"수요일 오후 3시까지 보내겠습니다."
나는 그 한 줄을 두 번 읽었다.
두 번째 사규 제8조 메일은 쓴 시간이 아니라 열리는 시간에 도착한다. 받는 사람의 월요일 아침을 상상하고 쓰면 절반은 성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