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된 보고는 결과를 전하고, 중간보고는 신뢰를 전한다.
"이걸, 왜 지금 가져오셨어요."
물음표가 붙지 않은 물음이었다. 나는 스무 장짜리 보고서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있었고, 표지가 내 쪽을 향해 있었다. 뒤늦게 돌려 잡았다.
방에 들어서며 나는 팀장 얼굴부터 살폈다. 다른 사람들의 눈은 내 손에 먼저 가 있었다. 그 회사에서 보고서는 반으로 접어 한 손에 들고 오는 물건이었다. 펼친 채 두 손으로 받쳐 든 사람은 나뿐이었다. 검은 클립 하나가 스무 장을 물고 있었다.
2주 동안 나는 그 스무 장을 혼자 만들었다. 중간에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물으러 가는 시간에 한 장이라도 더 만드는 편이 남는 장사라고 계산했다. 완성해서 한 번에 내놓으면 2주가 한꺼번에 설명될 줄 알았다.
무엇을 했는지는 지금도 또렷하다. 표지 라벨을 세 번 다시 붙였고, 도표의 선 굵기를 두 번 바꿨다. 이틀은 지하철 막차를 타고 퇴근했다. 2주가 남긴 것은 클립 하나에 물린 종이 뭉치였다.
방향은 나흘째에 이미 바뀌어 있었다. 복도에서 짧게 오간 몇 마디로 바뀌었고, 그 자리에 나는 없었다. 그 뒤 열흘 동안 나는 이미 버려진 방향으로 혼자 걸었다.
"고생하셨어요." 그 말이 먼저 왔다. 그다음에는 아무 말도 오지 않았다. 스무 장은 그날 회의에서 두어 장 넘겨지다 덮였다.
회의가 끝나고 옆자리 팀원이 종이 한 장을 내 쪽으로 밀었다. 나흘째에 정리된 한 장이었다. "이거, 못 보셨죠?" 그는 말할 틈을 찾다가 끝내 못 찾은 얼굴로 나를 봤다. 내가 묻지 않았으니 그에게도 꺼낼 틈이 없었던 것이다.
지금 돌아보면 그 회의실은 세 번 다르게 보인다. 처음에는 내 손에 들린 스무 장만 보였다. 두 번째로는 표지를 돌려 잡던 내 손이 보였다. 세 번째로 보이는 것은 그 방 사람들의 눈이다. 그 눈들은 내가 무엇을 만들었는지 보고 있지 않았다. 처음 보는 종이가 갑자기 바카라상에 올라왔을 때의 눈이었다.
억울함은 며칠 갔다. 열흘이 아까운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며칠 지나 마음에 남은 것은 열흘이 아니었다. 그 방의 누구도 내가 그 일을 붙들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는 사실이었다.
중간에 보여주지 못하는 이유를 나는 오랫동안 꼼꼼함으로 알았다. 들여다보니 겁이었다. 다림질이 안 된 셔츠를 입고 남의 집 초인종을 누르는 기분에 가깝다. 반만 된 것을 내놓으면 반만 한 사람으로 보일 것 같다. 그래서 다 되면 보여주려고 파일 하나에 넣어 둔 채 날짜만 넘긴다.
몇 해 뒤에 나는 같은 자리의 반대쪽에 앉아 봤다. 일을 맡겨 놓고 결과를 기다리는 자리다. 그 자리에서 견디기 어려운 것은 늦어지는 일이 아니었다. 지금 어디쯤인지 모르는 상태였다. 열흘 뒤에 좋은 것이 온다는 보장이 있으면 열흘은 견딘다. 보장이 없으면 사흘도 길다. 사흘째 오후에 나는 그 사람 자리 쪽으로 고개를 한 번 돌렸다.
기다리는 자리에서 내가 하던 짓은 따로 있다. 지나가며 묻는 것이다. "그거, 잘 되고 있죠." 잘 되고 있느냐는 물음은 답을 듣기 위한 물음이 아니다. 아직 살아 있는지 확인하는 손짓에 가깝다. 그 말을 세 번 하고 나면, 나는 다음 일을 맡길 사람으로 다른 이름을 떠올린다.
그 상태를 나는 퇴근길 승강장에서 매일 본다. 열차가 늦으면 사람들이 선로 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터널 안쪽을 들여다보고, 고개를 빼고, 다시 전광판을 본다. 전광판에 '전역 출발'이 뜨는 순간 기울었던 몸들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열차는 아직 오지 않았다. 도착까지 2분이 남아 있다. 그런데도 승강장은 조용해진다. 누군가는 그제야 가방을 어깨에서 내린다. 기다리는 사람을 안심시키는 것은 도착이 아니라 '전역 출발' 한 줄이다. 사람들이 숨을 고르는 이유는 열차가 와서가 아니라, 열차가 어디 있는지 알아서다.
중간보고는 완성의 예고편이 아니다. 전역 출발 표시다. 기다리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내 결과물의 일부가 아니라, 내가 지금 어느 역에 있는지 알려 주는 한 줄이다. 그 한 줄이 없으면 상대는 하루의 얼마씩을 터널을 들여다보는 데 쓴다.
신뢰라는 말은 크게 들리지만 받는 쪽에서는 작은 감각이다. 이 사람 일은 물어보지 않아도 소식이 온다는 감각 하나다. 그 감각이 생기면 상대의 수첩에서 내 이름 옆의 물음표가 지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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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간보고를 지하철에서 쓴다. 두 정거장이면 끝난다.
첫 줄에 지금 어느 역인지, 둘째 줄에 다음 역이 언제인지, 셋째 줄에 내가 막힌 것 하나.
보내기 전에 소리 내어 한 번 읽는다. 혀가 걸리는 자리에는 대개 변명이 섞여 있다.
일명 '점 찍기'다. 마감일 앞에 점 세 개를 찍어 두고, 점마다 아직 덜 된 것을 들고 가는 일이다. 점을 어디에 찍을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나는 30과 60과 90에 찍는다. 완성된 것을 보여주는 자리가 아니라 아직 안 된 것을 보여주는 자리이므로, 첫 점은 늘 가장 보여주기 싫은 상태에 찍힌다. 그 상태를 그대로 들고 가는 것이 이 규칙의 전부다. 30퍼센트짜리 종이는 대개 못생겼다.
오른쪽 칸의 세 문장을 소리 내어 읽어 보면 길이가 서로 비슷하다. 일부러 그렇게 맞췄다. 길어지면 보고가 아니라 하소연이 되고, 짧아지면 통보가 된다. 나는 이 셋을 수첩 뒷장에 옮겨 적어 두었고, 새 일을 받으면 그 장을 펴서 날짜 세 개를 적는다.
90퍼센트를 마감일 아침에 보내면 그것은 중간보고가 아니라 마감이다. 하루 전 아침이어야 상대가 고칠 시간을 손에 쥔다. 그 점 하나를 하루 앞으로 옮기는 데 여러 해가 걸렸다. 지금은 마감일을 적을 때 그 앞 칸에 동그라미를 먼저 친다.
표가 익숙해지면 세 번이 두 번으로 줄어드는 날도 온다. 상대가 먼저 "60은 괜찮으니 90만 보여 줘요" 하고 말해 주는 날이다. 그 말이 나오면 점 하나를 지운다. 지운 자리에는 연필 자국만 남는다.
표를 지키려고 규칙도 다섯 개 세웠다.
첫째, 일을 받는 자리에서 보고 날짜부터 잡는다. 마감을 묻기 전에 "중간에 언제 한 번 보여 드릴까요" 하고 먼저 묻는다. 그렇게 정한 날짜는 나 혼자 찍은 점이 아니라 상대와 함께 찍은 점이 된다. 상대의 수첩에도 같은 날짜가 적힌다.
둘째, 일이 밀려도 점은 밀지 않는다. 30퍼센트에 못 미쳤으면 못 미친 채로 그날 간다. 밀렸다는 사실 자체가 그날의 보고다. "예정보다 이틀 늦습니다"가 첫 문장이 된다.
셋째, 점마다 상대에게 맡기는 일을 다르게 놓는다. 방향을 봐 달라는 자리, 둘 중 하나를 골라 달라는 자리, 고칠 데 하나만 짚어 달라는 자리. 같은 부탁을 세 번 하면 세 번째 종이는 그 사람 바카라상에서 뒤집힌 채 하루를 넘긴다.
넷째, 막힌 것을 먼저 쓴다. 잘된 것은 뒤에 붙여도 읽히고, 막힌 것은 뒤에 붙이면 읽히지 않는다. 나는 "한 가지가 걸립니다"를 셋째 줄에 고정해 두었다.
다섯째, 답이 없어도 다음 점까지 그대로 간다. 답이 없다는 것은 대개 반대가 아니다. 그날 그 사람의 바카라상에 다른 종이가 더 많았다는 뜻이다.
다섯 가지를 다 지킨 달은 아직 없다. 첫 점은 대체로 찍고, 둘째 점은 반쯤 찍고, 셋째 점은 마감에 밀려 사라진다. 그래도 첫 점 하나라도 찍힌 일과 하나도 안 찍힌 일은 끝이 달랐다. 첫 점이 찍힌 일에는 나중에 옆에 같이 앉아 줄 사람이 생겼다.
지금 붙들고 있는 일 중에서, 상대가 내 소식을 마지막으로 들은 것이 며칠 전인지 떠올려 보면 어떨까? 그 사람은 오늘 내 일이 어느 역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알면서도 되풀이하는 실수가 세 가지 있다.
첫째, "진행 중입니다"로 때우는 것. 엘리베이터 앞에서 팀장이 물었다. "그거 어때요." 나는 진행 중이라고 대답했다. 문이 닫혔다. 여섯 층을 올라가는 동안 팀장이 알게 된 것은 없었고, 나는 보고를 했다고 여겼다. 그날 오후에 팀장이 다시 왔다. "그래서 어디까지요?"
둘째, 좋은 소식만 골라 보내는 것. 인쇄소에서 색이 안 맞는다는 전화를 받은 날, 나는 그 전화를 보고에 넣지 않았다. 이틀 뒤에 넣었다. 이틀 전에 고칠 수 있던 것은 표지 한 장이었고, 이틀 뒤에 고칠 것은 300부였다. 팀장은 인쇄소 번호를 자기 수첩에 옮겨 적었다. 그날부터 그 번호는 내 것이 아니었다.
셋째, 회사 문을 나서면 잊는 것. 친구가 동창 모임 공지 문구를 사진으로 보내며 봐 달라고 했다. 나는 1시간 동안 아무 말 없이 혼자 고쳤고, 다 고친 것을 한 번에 보냈다. 친구의 답은 한 줄이었다. "고치고 있다는 말이라도 해 주지." 회사에서는 수첩을 펴고 점 세 개를 찍으면서, 수첩을 덮는 순간 나는 그 2주짜리 침묵으로 돌아가 있었다. 기다리는 쪽이 팀장이든 친구든, 터널을 들여다보는 얼굴은 같다.
모르는 시간이 제일 길다.
2주짜리 침묵을 나는 그 뒤로도 두 번 더 했다. 두 번 다 같은 물음 앞에서 끝났다. 점을 찍기 시작한 것은 그다음 일부터다.
지난달에 후배가 세 장짜리 종이를 들고 왔다. 반으로 접혀 있었고, 검은 클립 하나가 물려 있었다. 첫 줄에 지금 어디까지 왔는지가 적혀 있었고, 마지막 줄에 막힌 것 하나가 적혀 있었다. 나는 마지막 줄에만 답을 했다.
그 종이는 아직 내 바카라상 왼쪽에 있다. 클립은 그때 그 클립처럼 검다.
두 번째 사규 제11조 완성된 보고는 결과를 전하고, 중간보고는 신뢰를 전한다. 신뢰는 늘 결과보다 먼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