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이 따뜻하네요. 감사합니다

- 병원 주방에 도착한 삐뚤빼뚤한 감사

by진공

화장실에서 흔히 보는 두루마리 휴지에 편지가 적혀 왔다. 어느 날 2병동에서 주방으로 내려온 휴지 한 조각이었다. 반듯한 편지지도 봉투도 없었다. 평소라면 뜯어 쓰고 버렸을 종이에 삐뚤빼뚤한 글씨가 남아 있었다.

“국이 따뜻하네요. 감사합니다.”


휴지로 눈물을 닦을 일은 있어도 휴지에 적힌 글 때문에 울컥할 줄은 몰랐다. 누군가 사진을 찍어 두었다. 나는 지금도 그 사진을 가끔 본다. 짧은 문장을 읽으면 배식 직전의 마지막 10분이 떠오른다.


화장지 편지2.jpg


날이 추워지면 주방에서는 국의 온도에 더 신경을 쓴다. 솥에서 막 퍼낸 국은 뜨겁지만, 식판에 담겨 병동으로 올라가는 동안 조금씩 식는다. 뚜껑을 덮어도 처음 온도를 그대로 유지할 수는 없다. 그래서 밥과 반찬을 먼저 담아 두고 국은 되도록 늦게 뜬다.


시계를 자꾸 보게 된다. 너무 일찍 뜨면 국이 식고 너무 늦게 뜨면 배식차 출발이 늦어진다. 기다릴 수 있는 시간과 서둘러야 하는 시간이 몇 분 사이에서 갈린다.


배식 10분 전쯤 국솥 뚜껑이 열린다. 뜨거운 김이 솟고 국자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한 사람은 국을 뜨고 다른 사람은 뚜껑을 덮는다. 완성된 식판은 곧바로 배식차에 실린다. 평소에도 짧은 말이 그때는 더 짧아진다.


“여기 국.”


“뚜껑.”


“한 개 더.”


서로의 손이 다음 동작을 알고 있어야 한다. 국을 빨리 떠도 뚜껑을 덮는 손이 따라오지 못하면 식판이 쌓인다. 식판이 완성되어도 배식차에 실리지 않으면 출발할 수 없다. 혼자 서두르는 것으로는 끝나지 않는 일이다.

환자에게 따뜻한 국을 보내려다 정작 우리 등에서는 땀이 흐른다. 병원 주방의 겨울에는 난방 걱정을 할 틈이 별로 없다.


처음에는 그렇게까지 시간을 맞추어야 하나 싶기도 했다. 병동에 올라가면 어차피 식을 텐데. 환자가 언제 숟가락을 드는지까지 우리가 정할 수는 없는데. 마지막 몇 분에 모두가 몰려 움직이는 일이 지나치게 힘들게 느껴지는 날도 있었다.


몇 번의 겨울을 지나며 생각이 달라졌다. 환자가 먹는 순간까지 온도를 지킬 수는 없어도 주방을 떠나는 순간까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조금 늦게 담고, 바로 뚜껑을 덮고, 완성된 식판을 지체 없이 싣는 일이었다.


그렇게 보내고 나면 대개 결과를 알 수 없었다. 식사가 끝난 뒤 그릇은 돌아왔지만 국이 따뜻했는지 말해 주지는 않았다. 비어 있으면 잘 드셨겠거니 생각했고, 많이 남아 있으면 무슨 사정이 있었을까 짐작했다. 다음 끼니가 다가오면 그릇을 씻고 다시 준비했다.


그 익숙한 흐름을 거슬러 한 문장이 도착한 것이다.


“국이 따뜻하네요. 감사합니다.”


우리가 마지막 10분 동안 붙잡으려 했던 온기가 적어도 그 한 사람에게는 닿았다. 매일 궁금해하면서도 확인하기 어려웠던 일이 짧은 글로 돌아왔다.


국을 끓인 사람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다. 국을 퍼고, 뚜껑을 덮고, 식판을 실은 사람의 이름도 없었다. 주방에서는 여러 사람의 일이었고 환자에게는 따뜻한 국 한 그릇이었다.


식판은 병동으로 올라갔고 감사는 주방으로 내려왔다.


그것도 두루마리 휴지에 적혀서.


그분은 따뜻하게 먹었다는 말을 글로 적어 주방까지 보내 주었다. 먹고 지나갈 수도 있었던 한 끼에 답장을 해 준 셈이었다.


값비싼 종이나 긴 문장이 필요하지 않았다. 국이 따뜻했다는 말이면 그날의 수고를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일이 유난히 힘든 날이면 사진을 다시 보곤 한다. 오래 서 있어 몸이 무겁고 사소한 말에도 신경이 곤두서는 날이 있다. 글씨를 읽는다고 피로가 사라지거나 밀린 일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국솥 앞에서 함께 서두르던 사람들의 손이 떠오른다. 뚜껑을 건네고 빈자리를 채우며 식판을 실었던 순간이 생각난다. 서로의 얼굴을 볼 여유도 없이 움직였지만 그 일이 어디에 닿았는지는 이 짧은 문장에 남아 있었다.


모든 식사에 그런 답장이 오는 것은 아니다. 국의 온도를 확인하지 못한 날에도 다음 날 국을 뜨는 시간은 비슷하다. 감사가 없다고 일찍 담아 둘 수는 없다. 그래도 한 번 받은 답장은 이후의 여러 끼니를 준비하는 동안 곁에 남는다.


오늘도 밥과 반찬을 먼저 담는다. 빈 국그릇들이 줄을 맞추고 있다. 시계를 본다. 아직 조금 이르다. 다른 준비를 마치고 한 번 더 시계를 본다.


마침내 국솥 뚜껑이 열린다. 김이 솟고 국자가 들어간다.


“국 갑니다.”


또 마지막 10분이 시작된다.


그날의 국은 오래전에 식었다. 휴지에 적힌 그 한마디는 아직 우리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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