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을 보던 환자에게도 문어가 필요할까

- 딸기 한 알과 라면 한 그릇 사이에서

by진공

K 환자가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평소라면 식판이 도착하기 무섭게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던 분이다. 그런데 오늘은 손을 뻗지 않는다. 밥도 국도 그대로인데 시선만 창밖에 머물러 있다.


나도 그 시선을 따라 창밖을 본다. 건물과 도로, 멀리 보이는 하늘이 평소처럼 그 자리에 있다. 다시 그분을 바라본다.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외로운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창밖을 오래 바라본다는 이유만으로 마음을 알 수는 없었다. 다만 늘 식판부터 당기던 사람이 그날은 그러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래 남았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식사보다 더 마음을 붙드는 것이 있었을까.


그 모습을 떠올리다가 류시화 시인의 문어 이야기가 생각났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에 나오는 이야기다. 제주 바닷가에서 작은 문어 한 마리가 다가와 그의 발등을 건드린다. 그는 문어를 잡지 않는다. 내게 남은 것은 그 짧은 접촉이었다. 다른 생명이 다가와 몸에 닿았다가 지나가는 순간.


살다 보면 긴 설명보다 그런 작은 접촉이 마음에 오래 남을 때가 있다. 나에게는 산길에서 맞던 바람이 그랬다. 사업이 어려웠던 시절, 생각을 견디기 힘들면 산으로 갔다. 오르막에서 숨이 차고 땀이 흐르면 걱정으로 가득하던 머릿속에 잠시 다른 감각이 들어왔다. 산은 내 사정을 해결해 주지 않았다. 그래도 바람을 맞으며 숨을 고르는 동안에는 걱정 밖에도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병실에서 오래 생활하는 사람에게는 무엇이 그런 순간을 만들어 줄까. 가족의 방문일 수도 있고, 누군가 건네는 인사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준비하는 음식도 가끔은 그중 하나가 될 수 있을까.


그 질문을 떠올릴 때마다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샐러드에 딸기가 올라간 날이었다. 평소 말이 많지 않던 환자가 식판을 보자 웃으며 말했다.


“와, 딸기다.”


그 한마디에 나도 식판을 다시 보았다. 주방에서 씻고 다듬어 담을 때는 수많은 식재료 가운데 하나였다. 빠뜨리지 않고 정해진 자리에 올려놓으면 다음 식판으로 손을 옮겼다. 그런데 병실에 도착한 딸기 한 알이 누군가의 입에서 탄성을 끌어냈다.


같은 병실, 같은 침대 앞에 놓인 식판에서 그분은 반가운 것을 하나 발견했다.


조리사에게는 고명 한 가지였는데, 먹는 사람에게는 먼저 알아보고 이름을 부를 만큼 반가운 음식이었다. 내가 식판에 올려놓은 것과 그분이 식판에서 발견한 것은 조금 달랐다.


또 한 번은 두루마리 휴지에 적힌 글이 주방으로 내려왔다. 냄비에 끓인 라면이 먹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하필 냄비에 끓인 라면이었다. 그냥 라면이라고만 하지 않고 끓이는 방식까지 적어 보냈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분에게는 지금 먹고 싶은 것이 분명히 있었다.


병원에서는 환자마다 식이가 정해져 있다. 제공할 수 있는 음식에도 기준이 있다. 조리사가 먹고 싶다는 말을 들었다고 마음대로 만들어 드릴 수는 없다. 그렇다고 그 말까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주방으로 내려오는 이름표에는 무엇을 드려야 하는지가 적혀 있었다. 그날 휴지에는 무엇을 먹고 싶은지가 적혀 있었다.


밖에서 살 때는 흔히 하는 말이다. 짜장면이 먹고 싶다. 국수가 당긴다. 커피 한잔하고 싶다. 형편과 사정이 허락하면 사 먹고, 여의치 않으면 다른 것을 고른다. 저녁 메뉴 하나 정하는 데도 온 가족이 회의를 할 때가 있지만, 그 회의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특별히 생각하지는 않는다.


병원에서는 그 평범한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정해진 식사를 받는 사람에게도 좋아하는 맛이 있고, 오늘 유난히 당기는 음식이 있었다. 입맛에 맞지 않으면 싫다고 말할 수도 있고, 뜻밖의 딸기 한 알을 보고 반가워할 수도 있었다.


“와, 딸기다.”


냄비에 끓인 라면이 먹고 싶다는 글.


하나는 준비한 음식을 받아 보고 나온 말이었고, 다른 하나는 아직 식판에 없는 음식을 바라는 말이었다. 두 표현 모두 주방에서는 미처 볼 수 없던 한 사람의 취향을 알려 주었다.


나는 한동안 환자의 반응을 식사가 잘 나갔는지 확인하는 신호처럼 받아들였다. 잘 드시면 다행이고, 남기면 무엇이 문제였는지 생각했다. 딸기를 보고 반가워한 일이나 라면을 적어 보낸 일은 조금 달랐다. 우리 음식에 대한 평가보다 그 사람 자신에 관한 말에 가까웠다.


그 작은 사실을 알고 나니 식판을 받는 사람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였다. 일반식을 드시는 분, 죽을 드시는 분이라는 구분 옆에 좋아하는 음식의 이름이 하나씩 놓였다.


K 환자는 그 뒤에도 여러 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엇을 보는지는 여전히 모른다. 그날 왜 식판을 바로 당기지 않았는지도 묻지 못했다. 내가 준비한 한 끼가 그분에게 문어처럼 다가갔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그 모습을 볼 때면 식사를 건네는 일에 관해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배를 채우는 시간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반가운 맛을 만나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입맛에 맞지 않아 고개를 돌리는 날도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식판을 받는 사람에게는 자기 몫의 반응과 바람이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표현을 귀찮은 말로만 듣지 않는 것이다. 식이에 맞게 준비하는 일을 기본으로 삼되, 좋아하는 음식 앞에서 나온 탄성을 기억하는 것. 당장 해 드릴 수 없는 부탁이라도 무엇을 먹고 싶어 하는지 귀 기울이는 것. 그 정도는 내 일 안에 둘 수 있다.


문어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이제는 두 장면이 함께 따라온다. 딸기를 알아보고 웃던 얼굴과 휴지 위에 적힌 라면이라는 이름이다. 하나는 음식이 사람에게 닿은 순간이었고, 다른 하나는 사람이 주방 쪽으로 건넨 바람이었다.


오늘도 식판을 준비한다. 이름표를 확인하고 밥과 국과 반찬을 제자리에 놓는다. 완성된 식판은 차례로 배식차에 실린다.


그 가운데 어떤 음식이 누군가의 눈에 먼저 들어올까.


먹고 싶은 것이 있다는 말이 또 주방으로 내려올까.


배식차 문을 닫는다. 딸기를 보고 웃던 목소리가 잠시 떠오른다.


“와, 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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