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망을 건너온 새벽의 걸음
새벽 4시 50분, 집을 나선다.
첫 지하철을 타던 길이 어느새 자갈치역까지 걷는 길로 바뀌었다. 사십 분쯤 걸으면 첫 버스를 탈 수 있다. 한여름 새벽에도 걷는 동안에는 더위를 덜 느낀다. 신호를 기다리며 멈추면 땀이 등을 타고 흐르고, 다시 발을 옮기면 바람이 젖은 옷 사이로 들어온다.
매일 같은 길을 걸어도 같은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오늘 해야 할 일을 떠올리다가 어제 읽은 문장을 되새긴다. 마음에 걸리는 말을 혼자 다시 주고받기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발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그렇게 걷다 보면 오래전 절집으로 향하던 새벽이 떠오르는 날이 있다.
사업이 기울고 집마저 처분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지 못했다. 집에 혼자 있으면 생각이 같은 자리만 맴돌았다. 새벽이면 집을 나서 꽃마을 내원정사로 향했다. 현실을 바꿀 방법은 몰라도 절집으로 가는 길은 알고 있었다.
대적광전에서 백여덟 번 절을 올렸다. 이 위기만 벗어나게 해주시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빌었다. 관세음보살을 외우고 『반야심경』과 『천수경』, 『금강경』을 읽었다. 입은 경전을 따라가는데 마음은 빚을 따라갔다. 몸은 법당에 있어도 생각은 은행과 채권자 사이를 떠돌았다.
다음 날에도 같은 자리에 엎드렸다.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바닥에 짚었다. 이마를 낮추었다가 몸을 일으켰다. 불안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기도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도 없었다. 다만 생각이 아무리 멀리 달아나도 몸을 일으키려면 다시 바닥을 짚어야 했다. 발에 힘을 주고 허리를 펴야 다음 절을 할 수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백여덟 번의 절에는 백여덟 번 다시 일어나는 연습도 들어 있었다. 당시에는 그런 뜻을 알지 못했다. 절을 마치고도 여전히 막막했고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두려웠다.
곧장 집에 가지 않고 산으로 향하곤 했다. 가파른 깔딱고개에 이르면 먼 정상을 보지 않았다. 올려다볼수록 갈 길이 더 멀게 느껴졌다. 고개를 숙여 발을 디딜 곳을 살피고 한 걸음을 옮겼다. 숨이 차면 잠시 멈췄다가 다시 걸었다. 앞날은 보이지 않아도 지금 발을 내려놓을 땅은 보였다.
살아가는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스친 날에도 걸었다. 다시 잘 살아보겠다는 결심까지는 하지 못했다. 가만히 있는 것보다 걷는 편이 견디기 쉬웠다. 숨이 가빠지고 다리가 무거워지면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걱정이 잠시 물러났다.
산에서 내려오면 해야 할 일들이 그대로 기다리고 있었다. 절과 산행이 빚을 갚아 주지는 않았다. 다만 어느 날부터는 두려운 전화를 받기 전에 숨을 한 번 고를 수 있었다. 막막한 상태에서도 해야 할 일을 하나씩 시작할 수 있었다. 그 정도의 변화가 당시의 나에게는 작지 않았다.
문제가 풀리지 않은 날에도 하루는 지나갔다. 다음 날 아침이면 다시 몸을 일으켰다. 걷고 절하고 다시 걷는 동안, 사정이 나아질 때까지 삶을 멈춰 둘 수는 없다는 사실을 몸으로 익혔다. 당장 할 수 있는 동작 하나가 다음 동작으로 이어졌다.
지금도 새벽이면 집을 나선다. 목적지는 병원이다. 자갈치역까지 걸어 버스를 타고, 내려서 다시 일터로 향한다. 생각이 많아 발걸음이 무거운 날도 있고 별다른 고민 없이 도착하는 날도 있다. 어느 쪽이든 주방 문을 열면 그날 맡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
화구는 달아올라 있고 커다란 솥에서는 죽과 국이 끓는다. 한여름이면 걸어오는 동안 겨우 피했던 더위가 나보다 먼저 출근해 있다. 조리복으로 갈아입고 작업대 앞에 서면 몸은 걷던 리듬을 벗어나 일하는 리듬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밥을 담는 손과 반찬을 놓는 손이 오간다. 나는 이름표를 읽고 그릇에 국을 담는다. 식판이 줄지어 있어도 국자는 한 번에 그릇 하나로 향한다. 지금 담을 양을 살피고 다음 그릇으로 옮긴다. 빠뜨린 것이 없는지 확인한 식판이 배식차에 오르면 빈자리로 다음 식판이 들어온다.
일이 밀릴 때에는 아직 남은 수량부터 눈에 들어온다. 손은 바빠지고 마음은 벌써 다음 작업으로 달려간다. 그럴수록 지금 읽는 이름표와 지금 담는 그릇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서두르는 마음 때문에 확인을 건너뛰면 오히려 일을 되돌려야 한다.
그럴 때 가끔 산길에서 발밑을 보던 일이 떠오른다. 정상이 멀다고 눈앞의 돌을 건너뛸 수는 없었다. 주방에서도 많은 식사를 바카라임지는 일은 지금 손에 든 한 그릇을 제대로 놓는 데서 시작된다. 다음 일은 생각하되 지금 하는 일을 끝내야 한다.
마음이 앞서 달려갈 때 몸이 하고 있는 일로 돌아오는 습관은 주방에서도 도움이 된다. 법당에서는 두 손이 닿은 바닥이 있었고, 산길에서는 발을 디딜 땅이 있었다. 지금은 내 앞에 놓인 그릇이 있다.
예전에는 절을 마치면 기도가 끝난다고 생각했다. 법당에서 가다듬은 마음을 집까지 가져오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문을 나서자마자 다시 두려워지는 자신이 답답했다. 지금도 출근길에 마음을 정리했다고 해서 하루 종일 평온하게 일하는 것은 아니다. 일이 몰리면 조급해지고 말이 짧아진다.
그래서 수행이라는 말이 조금 달라졌다. 흔들리지 않는 상태에 도착하는 일보다, 흔들리는 중에 내가 해야 할 일로 돌아오는 일이 더 가까워졌다. 화가 난 채로도 이름표는 정확히 읽어야 하고 마음이 어수선해도 국의 양은 살펴야 한다. 내 기분과 상관없이 식사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오래전 법당에서는 나를 살려 달라고 빌었다. 그때 일으켜 세우던 몸으로 지금은 출근하고, 그때 바닥을 짚던 손으로 밥을 짓는다. 나를 붙들기 위해 되풀이했던 동작들이 이렇게 쓰이게 될 줄은 몰랐다.
그렇다고 실패가 내게 필요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가족이 겪은 고통과 잃어버린 것들을 배움이라는 말로 대신할 수는 없다. 그 시절에 내가 했던 일은 걸을 수 있을 때 걷고, 일어날 수 있을 때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렇게 이어 온 시간이 지금의 출근길에 닿아 있다.
나는 이 길을 순례길이라고 부른다. 매일 특별한 깨달음을 얻어서가 아니다. 오래전에는 길 끝에서 내 괴로움이 사라지기를 바랐다. 지금은 괴로운 마음이 남아 있는 날에도 일터에 도착해 내가 맡은 일을 시작한다. 이 길을 걷고 나면 내 사정만으로 채워져 있던 새벽에 다른 사람의 끼니가 들어온다.
주방 조명 아래에서 배식차가 조금씩 채워진다. 집을 나설 때 붙들고 있던 생각이 무엇이었는지 잠시 잊는다. 국자를 기다리는 그릇이 앞에 놓여 있다.
나는 다음 이름표를 읽고 국자를 다시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