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아 있다는 건 때로 몇 센티미터의 일이다
“아저씨!”
누군가 큰소리로 불렀다. 처음에는 나를 부르는 줄 몰랐다. 병동에서 배식하며 그렇게 불린 적이 없었다. 다른 사람을 찾는 줄 알고 식판을 옮기는데 같은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아저씨!”
고개를 돌리자 침대에 누운 환자분과 눈이 마주쳤다.
“나 좀 봅시다.”
그제야 나를 부르는 것임을 알았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목소리가 다소 거칠게 들려 무슨 불만이라도 있는가 싶었다. 배식 중에 환자가 굳은 표정으로 부르면 나도 모르게 긴장부터 한다.
다가가니 침대 앞 이름표가 눈에 들어왔다. 낯익은 이름이었다. 동명이인인가 싶어 다시 보았다. 주방에서 그 이름을 모를 수가 없었다. 반찬이 적다, 국이 싱겁다, 국을 넉넉하게 달라, 간장을 따로 달라는 요청이 여러 차례 올라왔던 분이었다
알고 보니 3병동에서 5병동으로 옮겨 오셨다. 그동안 이름만 익숙했을 뿐 얼굴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이름표 뒤의 얼굴을 보았다.
그분의 사정을 조금 들은 적은 있었다. 요구가 잦아 어떤 분인지 요양보호사에게 물었더니, 입원 당시에는 가족들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만큼 위중했지만 이후 많이 회복했다고 했다. 이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어 밥을 국에 말아 드신다는 말도 들었다. 국을 넉넉히 달라는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사정을 듣고도 내게 먼저 떠오르는 것은 따로 챙겨야 할 것이 많은 식판이었다. 이해한 만큼 태도가 바로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날 그분이 내게 부탁한 것은 반찬도 국도 아니었다.
“내가 앉으면, 베개 좀 뒤에 받쳐 주세요.”
그분은 리모컨으로 침대를 최대한 세웠다. 그래도 등이 불편한가 보다 생각했다. 베개를 등 뒤에 받쳐 드리고 다음 병실로 갔다. 그날 이후 식사 때마다 베개를 받쳐 드리는 일이 자연스럽게 내 몫이 되었다.
처음에는 번거로웠다. 배식 시간에는 식판을 하나라도 빨리 전달해야 한다. 한 병실에서 늦어지면 다음 병실에서 기다리는 시간도 길어진다. 베개 하나 받쳐 드리는 일이 어렵지는 않았지만, 예상하지 못한 일이 끼어들면 마음이 급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분이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을 처음부터 보게 되었다.
그분은 누운 상태에서 두 팔을 뻗어 머리맡의 침대 난간을 움켜쥐었다. 팔에 힘을 주어 몸을 위로 끌어올렸다. 한 번에 움직이는 거리는 몇 센티미터에 불과했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힘을 주었다.
나는 몸을 끌어올려 드리려고 다가갔다. 내가 도우면 빨리 끝날 것 같았다. 그분은 손사래를 쳤다. 스스로 하겠다는 뜻이었다.
식판을 잠시 내려놓았다. 다음 병실과 배식차에 남은 식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빨리 끝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분의 두 팔을 바라보았다.
몇 센티미터 올라가고 쉬었다가 다시 몇 센티미터. 몸을 충분히 끌어올린 뒤에야 리모컨으로 침대를 세웠다. 앞치마도 직접 둘렀다. 내가 할 일은 마지막에 베개를 등 뒤로 넣어 드리는 것이었다.
몇 번 그 모습을 지켜보고 나서 베개가 왜 필요한지도 알게 되었다. 침대를 최대한 세워도 몸은 식사하기에 조금 뒤로 기울어져 있었다. 등 뒤에 베개를 받치면 자세를 더 세울 수 있었다. 그분은 자신의 몸에 어떤 받침이 필요한지 알고 있었고, 혼자 하기 어려운 그 일만 내게 부탁한 것이었다.
나는 베개를 받쳐 드리는 짧은 시간을 번거롭게 생각했다. 정작 그 전에 그분은 온몸의 힘을 써서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내가 식판을 내려놓기 훨씬 전부터 한 끼는 시작되고 있었다.
반찬을 더 달라는 말은 들었으면서 그 반찬을 먹기 위해 애쓰는 몸은 보지 못했다. 국을 넉넉히 달라는 요청은 기억하면서도 그 국을 먹을 자세를 만드는 데 얼마나 힘이 드는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분이 손사래를 쳤던 것도 자꾸 떠올랐다. 나는 빨리 도와드리려 했지만, 그분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내게는 시간을 줄이는 일이었고 그분에게는 자기 몸을 움직이는 일이었다. 내가 대신하는 것이 언제나 더 좋은 도움은 아니었다.
그 뒤에도 배식 시간은 분주했다. 부탁을 받으면 순간적으로 번거롭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몇 번의 식사를 지켜보았다고 갑자기 너그러운 사람이 된 것은 아니다. 다만 그분 곁에 가면 먼저 식판을 잠시 내려놓게 되었다.
처음에는 베개를 받쳐 드리는 것이 내 몫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는 그분이 몸을 일으키는 시간을 재촉하지 않는 것까지 배식의 일부가 되었다.
그렇게 여러 번의 식사가 지나갔다. 언제부터인가 그분은 나를 다르게 부르기 시작했다.
"사장님!"
아저씨에서 사장님으로 승진한 셈이었다. 월급은 그대로였는데 기분은 묘하게 좋았다.
호칭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나는 그분을 국을 많이 달라는 환자로 알았고, 그분에게 나는 식판을 들고 나타난 낯선 아저씨였을 것이다. 이제는 병실에 들어서면 그분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알았다. 어디에서 기다리고 언제 손을 보태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한 끼를 앞둔 몇 분이 쌓였다. 나도 그분의 인사를 기다리게 되었다.
그날도 병실에 들어서자 그분은 침대 난간을 붙잡고 있었다. 나는 식판을 내려놓았다. 몇 센티미터씩 몸이 올라갔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움직였다.
마침내 그분이 침대를 세우고 앞치마를 둘렀다. 등 뒤에 베개를 받쳐 드린 뒤 식판을 앞에 놓았다.
그분이 말했다.
“사장님, 잘 먹을게요.”